김민하
''그들은 아무도 따라가지 않아. 열차 안에서 잠이나 자고 하품이나 할 걸. 어린이들만 창문에 코를 박고 밖을 보겠지.''
''자기가 원하는 걸 알고 있는 건 아이들뿐이에요. 아이들은 인형에 시간을 들여요. 그럼 인형은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가 되죠. 그래서 인형을 뺏기면 울음을 터트리는 거예요.''
''아이들은 운이 좋구나.''
선로변경원이 말했다. -어린왕자
다들 어렸을 때는 엄청 좋아하고 살아있다고 여겼던 인형이 학교에 들어간 이후로 점점 멀어져, 결국에는 먼지만 쌓인 채 어딘가에 파묻히게 된 경우가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인형이 가장 중요했고, 소중한 존재였다. 잠을 잘 때면 늘 갖고 놀던 인형을 머리맡에 두고 잤다가 그 다음 날 인형이 어디 갔는지 찾지를 못해서 울쌍이기 일쑤였다. 하버마스는 인간이 인격체로서 존엄성을 갖게 되는 경계는 없다고 말했다. 인간은 언제부터 인간이라고 규정해야 할지에 대해 아리송하다는 것이다. 나는 인간이 인격체가 되는 순간이 자신이 아꼈던 걸 기억하는 순간부터 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또한 경계선이 흐리멍텅한 건 맞다.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아이들이 언제부터를 기억하는 지도 모를 테니까. 내 기억의 파편이 조금이라도 존재하는 시점은 4살 때 부터 시작된다. 그 전의 기억은 엄마, 아빠가 어디로 데리고 갔다, 어디로 놀러갔다, 라고 얘기를 하는 것만 듣지 실질적으로는 지워진 기억이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3살 전 아이들은 전생을 기억한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실제로 3살 전에 아이에게 물으면 뱃 속의 모습과 엄마 아빠가 했던 말들, 그 전의 전생과 같은 걸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난 태아의 삶은 두 개로 나뉜다고 본다. 한 살에서 세 살 때 까지 아이는 엄마가 사주는 옷을 입고, 엄마가 제공하는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그러나 사람마다 다른 특정한 시점이 되는 순간부터 아이는 자기 의사가 생긴다. 어느 순간 부터 시크릿 쥬쥬를 안 보여주면 떼를 쓰고 울고, 어느 순간 부터 공주 옷을 입고 요술봉을 든 채로 마법 부리는 흉내를 낸다. 그리고 어느 순간 부터 마트에서 떼를 부리기 시작한다. 아이는 그 때 부터 롤모델이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하며 그 전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다. 태아와 인간이 됨의 구분을 굳이 나누자면 아이가 자신의 롤모델을 기억하는 순간 부터가 아닐까?
알파메일과 배타메일은 우두머리 사자가 우월한 세포를 널리 퍼뜨리기 위해 여러 마리의 암사자들을 상대로 자손을 만드는 행동에서 부터 시작된 말이다. 그러나 현재의 알파메일과 배타메일은 동물 세계에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대상으로 쓰인다. 우리나라 최고의 남자와 여자를 뽑으라면 누구를 뽑을 것인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의 기준에 적합한 차은우와 장원영, 카리나와 같은 사람들을 뽑을 것이다. 알파메일과 배타메일을 보면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못생기게 태어난 사람도 원한다면 성형을 하는 데, 유전자 조작 그거 하나가 도입된다면 더욱 효율적이고, 완벽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완전한 행복은 없듯이, 인간은 완벽하지 않을 수록 인간다움이 넘친다. 만약 태어날 때 부터 레벨 100인 사람과 태어나보니 레벨 1부터인 사람이 있다고 쳐보자. 그럼 100인 사람은 더 이상 노력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존재 자체만으로도 완벽할 것이다. 반면, 레벨 1인 사람은 여러 고난과 시련을 겪은 후에 자신의 경험으로 더욱 현명한 선택을 하며 레벨을 쌓아갈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을 바꾸면 레벨 100은 아무것도 안해도 되고, 레벨 1은 오지게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 될 수 있다. 영화 가타카에서도 유전자 조작을 한 무기력한 형과 유전자 조작을 안 했지만 의지로 형을 따라잡은 동생이 나온다. 이로써 적극적 우생학과 체세포 우생학의 문제점이 나온다. 두 우생학이 현실에 적용될 시 완벽하지만 무기력한 사람을 제조하는 로봇식 공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다.
나는 체새포 우생학과 적극적 우생학이 도입될 시 우생학 시리즈물은 계속 발전한 형태로 추가 출판 될 것 같다. 쉽게 말해, 유전자 조작은 또 다른 비교를 낳는 다는 것이다. 만약 앞서 말했던 두 사람의 레벨 치가 100이 됬다고 쳐보자. 그 게임 회사는 또 다른 게임을 만들어낼 것이다. 레벨이 100이 됬는데 신규 개정판이 나오면서 또 다른 레벨을 쌓아야 하는 것이다. 현재 유전자 조작은 성형과 같은 외모 부분에서만 적용된다. 그런데 모두의 외모가 다 똑같아 져버리면 어떨까? 모든 부모들이 아이들이 가장 우수하고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아이를 가지는 사람들이 모두 우수한 유전자로 조작해버린 것이다. 그럼 우리 사회의 개성이 없어질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비교가 생기게 된다. 예를 들면, 누가 더 부유한지, 누가 더 가난한지와 같은 비교 말이다. 그럼 다음 세대의 부모들은 아이들의 외모 뿐만 아니라 능력치도 100으로 올린다. 그럼 또 다시 부자라는 개념이 사라져버린다. 그럼 다음 세대의 부모들은 이번에 성격이 얼마나 착한지, 나쁜지를 보게 된다. 이렇듯 무한히 유전자 조작이 반복되다보면 그 기준점은 사라질 것이고, 결국 모든 사람이 개성을 잃은 채 더욱 완벽한 로봇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과연 개조를 통한 인간의 평균 맞추기는 의미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