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궁지에 몰리면 힘없는 쥐도 고양이의 앞발을 무는 법

by 제이티

유지민



궁지에 몰리면 힘없는 쥐도 고양이의 앞발을 무는 법이다. 삼국지 속 한 씬은 홍건적들에게 나갈 출구를 마련해 주지 않고 사방을 국사로 도배하여 나갈 길을 막은 것이다. 이 때 빨간 두건을 두른 홍건적들, 어차피 죽을 목숨인 것을 안 그들은 과연 이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였을까. 이는 간단하다. 그저 죽음을 더이상 두려워 하지 않고 온몸 힘껏 싸우는 수 밖에. 그렇게 한순간에 이 전투의 흐름은 바뀌게 된다. 고양이를 이기는 쥐의 이야기이다.

호랑이 아래 목소리를 내는 자는 없다. 만일 이 호랑이가 전 세계를 발 밑으로 하고 있다면 더더욱 말이다. 그렇게 호랑이의 횡포에도 나머지, 힘에 없는 동물 들은 비위를 맞추는 것, 이 것 뿐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호랑이는 마구 잡이로 희생양들을 잡아 야만스럽게 입안에 수셔 넣는다. 호랑이의 저녁이 되지 않기 위해서 다람쥐는 그 동안 묵어 두었던 도토리를 몽땅 털어 그의 탐욕 스러운 털들을 마사지 해주었고, 당나귀들은 넷이고 다섯이고 모여 그에게 손질된 최고급 고기들을 끌고 왔다. 상을 업어버리고 싶어도 그의 손엔 나의 온 가족들의 안정이 걸려 있으니까.

숏폼 유트브 영상을 내리다가 나는 우연히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하여 '악수 컬랙션' 을 발견하였다. 당황스러웠다. 익숙한 그의 얼굴은 뻔뻔함이 그대로 묻어 있었으며 그의 포스에서 부터 풍겨오는 여유는 핸드폰 화면을 뚫고 생생히 풍겨져 왔다. 그는 만나는 고위 정치인, 무역인, 총리들, 왕과 왕자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뭐고 꼽주듯이 흘낏 처다 보다가도 갑자기 상대의 손을 잡더니 앞 뒤로 흔들기 시작했다. 그렇나 볼드모트의 한마디에 무릎을 꿇고 벌벌 떨며 애원하는, 모든 마법사들 처럼 이들은 호랑이 앞 토끼의 처지, 굴욕을 함 웅큼 목구멍 뒤로 삼킬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발톱이 책임질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슬리데린 밖에 없는 호그와트, 군대 마냥 발 맞추어 한 사람을 향해 찬양하도록 교육하는 세계, 만일 볼드모트의 생이 계속 되었다면 일어났을 일이다. 이 '만일' 의 세계 속에서 더이상 해리와 말포이의 시시덕 거리는 유치한 십대들의 싸움 따위는 없다. 갈등에서 부터 해방 되었거늘, 독재, 절대적 권력 아래 세계를 과연 우린 진정한 평화라고 이름할 수 있는 것인가.

위기가 닥쳐 오자 덤블도어도, 낡아빠진 호그와트의 기숙사 배정 모자도 노래를 부르며 계속하여 '연대' 를 강조 한다. 그렇나 이는 말처럼 쉽지 못하다. 전쟁이 다가오는 것을 알 면서도 한 배에 타지 못한 기사단과 마법부, 그렇게 우리의 현실 또한 그다지 다르지 못하다. 칸트는 우리에게 말한다. "함께" 터뜨리는 폭죽 소리로 울려 퍼지는 밤, 총소리 속 밤에 비하면 이는 그저 고요한 자장가와도 같다고.

어쩌면 많은 사람들의 최애 장면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의 끝 무렵 볼드모트는 말한다. 이마에는 피가 애처롭게 흐르며 옷은 군데 군데 찢겨 멀쩡한 구석이 없는, 동료를 잃은 슬픔에 죄책감으로 흠뻑 젓은 한발자국 한 발자국을 내디는, 100 명도 되지 않을 호그와트의 남은 전사들에게, 온 하늘이 다 들을 높고도 선명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들에게 해리의 죽은 시신을 보란 듯이 내민다. 한 사람이 절둑거리며 군중을 빠져나온다. 비록 폭죽의 소리는 아니랄지도 네빌이 죽인 네기니의 목이 떨어지는 소리는 이보다도 치명적이였으니. 그렇다. 잃을 게 없음을 알게 된다는 것, 주머니에는 한푼의 돈도, 희망도, 무엇도 남지 않았지만 그들은 달려든다. '테러' 라는 단어, 이 단어가 불러오는 잔인함은 과연 어디에서 왔단 말인가. 쥐에게 물린 고양이의 앞발은 그렇게 총소리로 울려 퍼지는 밤을 향해 아픔을 포효 했으니.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내가 나를 아는 건 유일하게 이름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