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윤
로또 명당은 터가 좋아서 명당이 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에 명당이 된다. 잘하는 학원도 마찬가지다. 그 학원이 특별히 잘 가르쳐서 성적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잘하는 학생들이 모이기 때문에 ‘잘하는 학원’이 된다. 학원에 가면 레벨 테스트를 보고 반이 나뉘는데, 상위 반 아이들이 잘하는 이유 역시 그 반의 교육력보다는 원래 잘하는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구조를 보지 못한 채 능력주의에 빠져 확률이라는 사실을 자주 잊어버린다. 도박이 반복될수록 승률이 줄어드는 것처럼, 소수점 이하의 가능성이 계속 중첩될수록 그 확률은 점점 희박해진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하려 하고, 좋다는 정보를 끌어모으며, 자신에게 맞지 않는 공부법조차 ‘정답’이라 믿고 들이미는다. 그 중심에는 희망이 있다. 이미 포화된 레드오션임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그 안으로 다시 뛰어든다. 공산주의가 실패한 이유 역시 모두가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또다시 같은 경쟁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더 나은 출구를 찾기보다 더 비싼 학원, 더 성적이 잘 나온다는 곳을 찾아 떠난다. 복권의 당첨금은 수많은 사람의 5천 원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지, 그것이 반드시 나여야 할 이유도, 특정한 누군가여야 할 이유도 없다.
한 번은 친구들과 세금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세금을 소득에 따라 차등으로 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다들 불공평하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 비슷한 경제적 수준에 있고, 나 역시 부자가 아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그 제도가 싫다고 했다. 자신들에게 너무 많은 불이익이 온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신분 상승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것은 단 한 번의 ‘운’이다. 능력주의, 즉 신분 상승의 꿈은 모두가 믿는 하나의 종교다. 그것이 없으면 삶을 버티기 힘들고, 살아갈 이유조차 사라지는 사람들도 많다. 세금을 더 내면 혜택이 돌아오는 주체가 결국 자신일 수도 있음에도, 사람들은 그 종교에 눈이 멀어 복지를 포기한다.
요즘은 학원이 없으면 시험 문제를 접하기조차 어렵다. 모두가 ‘공정함’을 원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더 많은 것을 하려 할 때마다 분노가 생긴다. 과거 군 가산제도 그랬다. 군대를 다녀왔다는 이유로 점수를 더 준다는 사실이 분노를 샀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은 군 복무로 인해 시간과 기회를 잃었고, 공부에서도 분명한 손해를 봤다. 그럼에도 시험을 위해 살아가는 세대에게 ‘공정’이라는 이름 아래 그 손해는 인정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노력을 해야 하는 이유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노력은 선택지가 많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나는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노력한다. 대신 나는 아무런 목적지가 없다. 누구도 반대하지 않고, 누구도 관여하지 않는다. 그런 상태에서의 노력은 곧 내가 갈 길을 스스로 정하겠다는 선언이다.
도파민도 중요할 수 있지만, 나는 결과보다 가는 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행복의 주관이 아니라, ‘할 일이 있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누군가에게 필요로 여겨지고, 삶 속에서 인간으로 남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노력이다. 인간은 인간 사이에서만 인간이 된다.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움직여야 한다. 닭장 안에 있는 닭은 그저 동물일 뿐이다. 나는 가축이 되지 않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존재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공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그것은 결국 돈일 것이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할수록, 돈은 점점 더 소수의 사람에게만 집중된다. 그렇다면 돈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는 한, 성공은 갈수록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솔직히 말해, 나는 돈을 많이 벌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느낀다. 설령 돈을 번다 해도 그 끝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돈이 아닌 다른 것을 성공이라 부른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에서 물질적인 성취는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재능이 있어도 완성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노력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도 사실은 환경의 산물이다.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하다. 만약 내 부모가 공부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이만큼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 즉 지식은 결국 돈에서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성공은 개인의 노력 이전에 뒷받침이 필요하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공정이란, 무언가를 끝내는 일에 가깝다. 물론 그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떤 고통의 원인을 종식시키는 일은 분명 멋진 일이다. 야구장에서 상자 때문에 누군가가 고통받는다면 칸막이를 낮추고, 돈 때문에 고통받는다면 함께할 수 있는 방향을 택하는 것. 그것이 내가 믿는 공정이다. 물론 그런 세상이 존재한다면, 어쩌면 그것은 거짓말 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