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주의로 가는 길

by 제이티

19c 후반 고도로 발달된 자본주의는 그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밖으로 팽창해 나가는 제국주의 시기였다. 넘쳐나는 과잉 생산물을 주체 못 해 새로운 시장을 향해 뻗어가는 제국주의 시기는 엄청난 풍요와 부르주아 계층을 확대시켰다. 이 시대의 주인공은 이제 땅을 가진 귀족이 아닌 공장과 자본을 가진 ‘부르주아’의 시대가 된다. 이제까지 무역으로 먹고사는 상인이 소수에 불과했다면 이 시기의 들어서는 산업혁명과 식민지 팽창으로 그 부르주아 수도 엄청나게 확대가 된다. 다시 말하면 돈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졌다.


미술품의 고객으로 떠오른 이들의 취향이 곧 미술품의 취향이 된다. 새로 부를 얻게 된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이 무엇일까?


바로 돈만 많고 ‘무식’하다.


설령 사실이더라도 말이다. 공식적으로는 프랑스혁명 이후로는 신분제가 해방된다. 이제 누구나 평등한 시대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누구에게는 더 평등한 시대가 된다. 바로 돈을 가진 시민이 더 평등한 시대다. 이들은 이러한 점을 더 부각하고 강조하기 위해 자신들만 향유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내가 좋아하는 음악은 무엇일까? 가요일까? 오페라일까?


나는 멜론 차트 순위권 노래만 듣는다. 그렇다면 왜 오페라 음악은 내 취향이 아닐까? 바로 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듯이, 오페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가요와 오페라 중 어떤 게 고급 취향인가?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오페라라고 답한다. 왜냐햐면, 오페라 표 가격이 40만 원이 넘기 때문이다. 즐기고 싶어도 즐길 수가 없는 취미 생활이다. 여러분이 취미가 등산과 조깅일 순 있지만 승마와 폴로가 아니듯이 말이다.


이런 것을 바로 “아비투스”라고 한다.


명품백과 외제 차로 신분을 숨길 수 있지만, 재채기와 '취향'은 숨길 수가 없다.


당시 부르주아의 아비투스는 “살롱문화”였다. 모여서 음악과 미술작품을 즐기면서 그들만이 아는 문화와 취향을 공유하면서 난 너희들과 급이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새로운 부르주아는 더 이상 딱딱하고 재미없는 종교화나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가기 원했다.


바로 현재의 일상이나 지금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애국심을 강요하거나 보고 있으면 마음이 무거워지는 그림이 아닌 가볍게 즐기면서 누구나 좋아할 만한 그림을 원했다. 그것도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주인공인 자신들을 빛나게 해 줄 그런 그림.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도 인상주의 그림은 누구나 좋아할 만한 그림이 된다.


부르주아의 취향이 그림의 주제가 되었다면 카메라의 발명은 이제 새로운 기법을 태어나게 한다. 르네상스, 바로크, 신고전주의가 원근법과 세밀 묘사 조화와 균형, 명암법 등 매끄럽게 대상을 잘 그리려고 했다. 낭만주의 등장 이후 “감정”을 중시하는 색채의 효과가 두각을 나타내긴 했지만, 여전히 회화의 중심은 신고전주의가 지배해 왔다.


하지만, 이를 깨는 혁명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카메라의 보급


아무리 잘 그려도 카메라보다 잘 그릴 수 있을까? 이제 화가들은 무얼 먹고살아야만 할까?


바로 “빛”에서 답을 얻는다.


아침과 저녁 빛의 양과 각도에 따라 같은 대상이라도 빛에 의해 시시각각 변한다.


이러한 빛의 연출을 도와주는 친구가 나온다.

바로 “철도"와 ”튜브 물감“


19c 산업혁명의 상징은 철도는 화가들에게 스튜디오가 아닌 자연을 선사했다. 또한, 마르지 않는 튜브 물감은 밖에서 그릴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이제는 조명이 아닌 ”외광“을 이용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더 이상 밖에서 관찰한 것을 스케치하고 스튜디오 안에 들어와 관찰한 것을 생각하고 상상하고 그릴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는 캔버스를 들고 철도를 타고 다니면서 예쁜 화면을 캔버스에 담을 수 있었다. 그것도 그 자리에서 바로 말이다. 튜브 물감이 있으니깐.

인상주의자들은 망막에 비추어진 대로 ‘보이는’ 대로 그리려 했다. 이들에겐 색은 곧 빛이므로 고유의 색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시시각각 변하는 빛을 담기 위해 ‘신속’하게 그려야 했으며 같은 대상이라도 ‘여러 번’ 그려야 했다.


또 한, 자연 외광 속의 화면은 우리가 아는 대로 입체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축구공이 자연광 아래서 보면 때론 한낮 점으로 보이거나 원반으로 보인다. 또한, 야외에서 찍은 셀카가 오징어처럼 보이는 것도 결코 못생겨서 그런 게 아니란 말이다. 따라서 빛에 충실하고 보이는 것에 충실한 이들에겐 원근법은 인위적인 폐습에 불과했다.


빛을 그리려 했기에 그들의 그림에서 배경과 형상의 구별은 사라지는 경향에 주목한다. 둘 다 사물에서 반사되어 눈으로 들어오는 빛 이란 점에서는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빛과 대기의 순간적인 효과를 포착하기 위해서 ”알라 프리마“ 마르기 전에 덧칠하는 벨라스케의 혁신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그들에게는 예쁘고 그럴듯한 그림보다 빛이 그려내는 순간을 포착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그럴듯한 그림은 카메라에 밀려 의미가 없어졌으니깐


https://youtu.be/LXCJptrtjm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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