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3년 살롱에서 많은 찬사를 받았던 작품이다. 물결이 잔잔히 이는 바닷가에서 이제 막 탄생한 비너스가 손을 위로 올려 여체의 곡선미를 강조하고 있다. 뽀얗고 매끈한 여체는 로코코풍으로 이상화되었다. 옆으로 누운 자세와 여체가 드러내는 유연한 곡선에서 앵그르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있다. 여성의 육체를 욕망의 대상으로써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 작품은 제2 제정시대에 유행하였던 전형적인 여성 누드화이다.
하지만 한 미술평론가의 주장은 달랐다. 아카데미 그림의 한계를 명확히 보고 있었다. 인위적인 인물 묘사와 세부적 기교에만 집착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제는 미술이 변해야 한다고, 이제 과거가 아니라 지금 우리 시대를 그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바로 보들레르였다.
같은 해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가 외설적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살롱에서 배제된 반면, 이 작품은 그 해 살롱에서 찬사의 대상이 되었다.
“쯧쯧 말세야 어찌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단 말인가?
뒤룩뒤룩한 뱃살과 팔다리의 군살을 보게! 더 기분 나쁜 건 대체 우리를 바라보는 저 마음에 안 드는 눈빛을 뭐란 말인가?
당시 사람들은 마네가 자신들의 위선을 들추고 조롱하기 위해 이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했다. 앞에서 점잖은 척 하지만 뒤에서는 추한 부르주아의 민낯을 까발렸다고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제목을 보라. 점심인데 풀밭 위에서 정장 입은 신사 둘과 매춘부로 보이는 여자 둘이 보이지 않는가? 거기에 발의 위치를 보면 외설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실제 마네는 그런 풍자와 정치적인 의도가 전혀 없었다. 그의 사연은 이렇다.
어느 날 마네는 루브르에 걸린 수많은 그림을 보면서 모두 신화나 역사를 그린 누드는 많은데 왜 우리 시대의 누드가 없는지 의문을 품었다. 그래서 ”우리 시대의 누드를 그려보는 거야 “라고 생각해서 그렸다고 한다.
역사적인 사건이 그렇듯이 그도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막상 그리려니 구도와 주제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조르조네의 <전원의 합주>와 라파엘로의 <파리스의 심판>의 구도를 따오게 된다.
그러니 어떤 의도와 상징은 있을 수가 없다. 발의 위치와 노려보는 눈빛도 모두 찔린(?) 자들의 해석에 불과하다.
‘우리 시대의 누드’를 그리겠다는 그의 구상은 마네의 예상 밖의 어마어마한 후폭풍을 낳았다. 사람들이 느꼈던 거부감은 벌거벗은 현실의 여인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의례적으로 누드와 네이키드 두 가지를 엄연히 분리하고 있었다. 고대의 신이나 신화 속의 여인은 벌거벗어도 어떠한 죄의식을 갖지 않은 건 그건 비현실적인 존재라는 가정이 있었지만 마네의 그림 속 여자는 현실에 매춘부였기 때문에 부끄러움과 동시에 비판이 가해졌다.
종이 한 장 차이지만 그만큼 현실의 벽과 예술가의 창조성은 부딪힐 수밖에 없는 법이다.
<올랭피아>는 <풀밭 위의 점심>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비판을 많이 받았다. 이건 누가 뭐래도 파리의 매춘부를 그렸기 때문이다. 전자가 조롱이었다면 이번 그림에서는 분노를 쏟아낸다. <우리 비노의 비너스>와 비교해보면 이해가 간다. 관능적이고 매끄러운 라인의 여신이 아니라 ‘납작하고’ ‘짜리 몽땅’한 그저 한 명의 매춘부를 그렸기 때문이다. 원근법을 무시한 평면적인 그림은 그리다 만 성의가 없는 그림으로 느껴졌고 귓가에 보이는 꽃은 매춘부를 상징하는 것이어서 수많은 비판에 시달렸다.
시대를 너무 앞선 탓일까? 이 마네의 거침없는 시도는 새로운 미술의 패러다임을 예고했다.
마네가 살아간 시대는 사회적이으로 변화의 시기였다. 산업혁명에 대가 식민지까지 유례없는 번영의 시대를 맞고 있었다. 파리 시내는 꼬불꼬불한 길에서 번듯한 신작로가 깔리고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제 중세의 틀에서 완벽히 변하고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라 해도 무방하겠다. 백화점이 생기고 거리에는 잘 차려입은 신사와 숙녀들이 넘쳐났다. 유흥가의 불빛이 파리를 환하게 밝히고 이제 중세의 그림자는 완전히 사라졌다.
이제 현대식으로 탈바꿈한 파리는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눈을 열어주었다. 익숙함과 낯섦이 공존하는 도시를 거닐며 마네는 이제 무엇을 그려야 하는지 깨달았다. 그는 이제 과거의 파리가 아니라 지금의 새로운 파리를 그리는데 빠져들었다.
<카페 콩세르>를 보면 노신사와 젊은 여인이 있다. 고개를 돌리고 무료함을 견디기 힘든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런데 시선을 끄는 이가 있다. 바로 두 남녀 사이의 종업원이 허리춤에 손을 얹고 시원하게 벌컥 맥주 한 잔을 들이켜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바로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어떤 사람에게 중요한 사건을 포착해 영원한 기억으로 남기고 있다.
현대성 : 일상에서 마주친 찰나의 순간에서 시인의 눈으로 포착한 영원한 아름다움
이 개념은 고전 미술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다. 르네상스 이래 서양미술의 아름다움은 모두 그리스 로마였다. 그림을 그리려면 당연히 이들의 철학을 이해하고 그들의 테크닉을 답습하는 게 모두가 해야 했던 정규과정이었다.
이러한 주류에 등장한 보들 레의 현대성이란 개념은 생각을 틀을 깨는 혁명적인 것이었다. 단순히 비주류의 난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창조했다. 이것이 바로 마네와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받아들여지면서 새로운 시대의 미술이 열린다.
도시인의 한 순간을 그렸다는 개념을 넘어 고전의 이야기도 그 일이 벌어지던 당시에는 ‘현재의 한 순간’에 불과했음을 주목하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순간 역시 오래도록 기억될 위대한 순간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이 새로운 생각은 화가들에게 이제 과거가 아니라 지금 여기 현재를 보는 눈을 가져다주었고, 이상적인 게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지금 현재의 순간도 충분히 소중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