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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은 환영하고, 이별은 쿨하게.

스타트업의 현실, 만남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

by 타스정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
KakaoTalk_20251117_221456684.png <쇼미더머니,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


처음 스타트업 HR팀으로 근무를 시작하고 2개월이 지났을 무렵, 회사에 큰 변고가 생겼습니다. 회사의 핵심 서비스인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이 종료된 일 때문이었습니다. 스타트업은 특성 상, 시장환경과 비즈니스, 정부 정책이 따로 노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기존 시장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 때문에 정책적으로 마련되지 않은 곳에서 태동하기 때문이죠. 핀테크 기업인 토스도 처음엔 금융의 디지털화를 위해 안간힘을 써야했고, 프롭테크인 직방도 아직까지 부동산 시장을 장악하지 못한 이유입니다. High Risk, High Return 은 비단 비트코인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스타트업을 선택한 것이 바로 High Risk-High Return 인 것이죠.


결국 앞날이 창창했던 스타트업에도 암운이 드리워졌습니다. 23년 8월, 정부의 시범사업 종료와 함께 더 이상 서비스를 영위하기 힘든 회사는 큰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업의 방향성을 잃음에 따라, 새로이 피봇팅을 준비해야 했고 그 과정에 기존에 운영되던 특정 사업부는 구조조정이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했습니다. 대기업, 중견기업에서도 숱한 희망퇴직과 구조조정을 봐왔지만 실제로 주도하며 실행으로 옮긴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상이 젊은 직원들이라는 것. 이것은 제가 이제 껏 생활해왔던 직장생활과는 다른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대퇴사의 시대, 대이직의 시대라고 하더니. 그건 대기업에게나 통용되는 말일 뿐이구나."
"스타트업은 생존이다. 그건 회사도, 나도 마찬가지였다."


흔히 스타트업은 생존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생존은 회사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통용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하나의 목표, 꿈을 달려가고자 모였던 사람들에게. 동화 같은 말로 우리의 꿈에 함께 달려들기를 현혹했던 것들도 한 순간에 빚 좋은 개살구가 되어버렸습니다. HR팀으로 처음 합류했을 당시, 경영진의 요구는 '구성원 소통 문제 해결'이라는 과제였습니다. 그러나 합류 시점에는 웃기게도 구성원 소통 문제를 꺼낼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오자마자 무언가를 잘해보려던 제 의지가 무색하게도,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회사의 위기를 직감하면서 점차 소통 없는 조직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모두가 침묵하고 침울했던, 바야흐로 폭풍전야였습니다.


KakaoTalk_20251117_222549879.png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직원들은 몰랐겠지만 구조조정에 대한 경영진들 간의 치열한 논의 또한 이어졌습니다. 구조조정의 대상을 다른 직무로 돌리자는 의견, 일단 재무적 건전성을 확보를 위해 단행하자는 의견, 망하더라도 다 같이 불살라보자는 의견까지. 총성 없는 전쟁터라는 말이 잘 어울릴 정도로 치열했습니다. 그 결과, 저는 오자마자 2달 반 만에 70명 중 약 10명 남짓 되는 인원에게 희망퇴직을 받았습니다.


아마 인사팀 중에서 구조조정을 단행했던 사람이라면 알 것입니다. 감정적으로 지치고 피폐해진다는 것을요. 어제까지 서로 웃으며 대화를 나눴던 이들에게 구조조정 대상자임을 통보해야 했습니다. 특히나 젊은 직원들에게는 더욱 청천벽력 같은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결국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는 "넌 더 이상 우리에게 쓸모 없어."라고 들렸을테니까요. (현실은 시범사업 종료에 따른 사업부 존속이 어려웠으며, 그들이 더 이상 자리해줄 직무가 사라진 것 때문이지 결코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여성 직원은 냉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자신의 퇴직 이유를 따져 묻기도 했습니다. 분명 엊그제까지 나의 입사를 축하해줬던 사람이었는데 말이죠. 어떤 남성 직원은 소식을 듣고나서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묵묵히 제가 하는 이야기를 듣더니 알겠다고 하고는 더 이상 아무말 없이 나갔습니다다. 또 한 직원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한참을 울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들의 앞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제가 전달해야할 부분을 이야기하고 그들의 양해를 구하는 일 뿐이었다. 어떤 직원은 본인이 받을 수 있는 보상에 대해 이것저것 캐물으며, 더 받을 수 있는 것은 없냐는 듯 따지기도 했습니다. 오히려 그런 그 분의 모습에서 자신의 헌신을 헌신짝처럼 내다버린 회사를 탓하고 싶은건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KakaoTalk_20251118_221607847.png <퀴블러-로스의 수용 5단계>


퀴블러-로스의 죽음 앞에서의 5단계 반응(부정-분노-우울-타협-수용)을 들어보신 적 있나요? 큰 사건에 직면했을 때, 사람이 느끼는 수용의 단계를 말합니다. 처음엔 부정하고 분노했던 사람들도 점차 타협하고 수용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희망퇴직 대상자들은 회사가 처한 상황과 그 뜻을 이해해주었고, 오히려 남아있는 동료들을 격려했습니다. 남아있는 동료들은 떠나는 동료들에게 감사함과 함께 깊은 동료애를 전달하며, 남아있는 책임을 다하고자 다짐했습니다. 마음 한켠이 씁쓸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답답한 마음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잘해보기 위해 모였지만 우리가 진정 바꿀 수 없는 것인가에 대한 좌절감은 덤이었습니다.


정말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이 과정은 스타트업에서 대부분 꼭 한번은 겪는 경험입니다. 사실 이외에도 정말 많은 이별을 경험합니다. 새롭게 시도했던 사업을 철수하는 경우는 빈번하고, 해당 직무가 더 이상 필요 없어지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예기치 않은 대외적 변수로 인한 것도 있으며, 스타트업 성장과정의 Life Cycle 에서 처음에는 정말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냈던 인원이 더 이상 해당 인원이 제 역할을 할 수 없을 때도 발생합니다. 이 때, 우리는 정말 많은 동료들과 이별하고 새로운 만남을 가지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남아있는 동료들의 감정은 정말 많이 널뜁니다. 누군가는 더 이상 함께 꿈을 꾸지 않고 떠나는 동료를 향해 '배신자'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동료를 떠나보내는 회사에게 '야속'하다고 말합니다. 떠나보내는 동료에게 자신은 남아있다는 죄책감과 미안함도 가득합니다. 그러나 스타트업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함께 했던 동료들과의 이별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스타트업은 '생존'이 현실이기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앞으로 가야할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한다는 것도 말이죠.


한 동료와 원온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우울해하는 동료를 봤습니다. 또 어떤 동료는 지난 희망퇴직 시기의 악몽을 떠올리며, '올해도 그러는건 아니죠?' 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 시기를 같이 겪어온 동료들에게는 불안정한 스타트업의 환경이 트라우마로 남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저 또한 정서적으로 지쳐갈 때 즈음에 회사의 COO님과 산책을 하며 커피를 마시는 시간을 가졌었습니다. 우연히 과거의 이야기가 나오며, 이 이야기가 나오자 COO 님이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처음에 우리 회사를 다져갈 때는 동료들에게 늘 동화와 환상을 이야기했고, 우리가 환상 속에 살도록 말했는데 말이야. 그 땐 그게 먹혔지만, 이제는 생존이다보니 결국 현실과 적정한 타협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어. 그러니까, 사람과의 만남은 언제나 늘 환영하고. 이별은 쿨하게. 그게 스타트업이야."


마음 한켠으로는 아픈 말이지만, 스타트업을 경험하면서 정말 가슴에 묻고 살아가야하는 한 마디라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스타트업에 와서 일확천금, 나의 자아실현, 꿈의 도전을 꿈꿉니다. 하지만 스타트업의 현실은 냉혹합니다. 대기업처럼 정년퇴직을 보장해주지 못하고, 회사가 안정적이지 않아 순식간에 실업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대기업에서는 한개 팀이 사라진다고 해도 금방 TO를 메꿀 수 있지만, 스타트업은 한 개팀이 사라지면 전체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을 꿈꾼다면, 스타트업이 궁금하다면. 가장 먼저 가져야할 마인드는 회사의 생존도 아닌, '나의 생존'이라는 마인드셋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동료를 잃는 것이 두렵다면, 동료와의 이별이 어렵다면. 스타트업은 절대 권장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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