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시간이 지나가기만 바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루하루 지나는 시간들이 지루하기 짝이 없고 인생에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다름 아닌 제 군대 시절 이야기입니다. 제가 근무했던 강원도 화천의 겨울 추위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매서웠고, 철책 연대가 아닌 예비 연대에서 근무했던 터라 일 년 열두 달 야외 훈련이 없는 달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군대 짬밥이 늘어가면서 훈련도 점점 익숙해져 갔고 오히려 훈련이 없는 날의 반복되는 일상이 더 따분하고 재미가 없었습니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구보하고, 아침 먹고, 소대 거점으로 이동해 교육을 받습니다. 그리고 돌아와 저녁 먹고 노닥거리다 청소하고 잠이 들던 그런 쳇바퀴 같은 일상. 다른 이들 처럼 저 역시 제대까지 남은 날짜를 세며 한숨쉬는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종종 '라떼는 말이야' 하며 침 튀기며 군대 시절 얘기를 꺼내는 남자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정말 가지 않던 지루했던 군 생활에서도 저 역시 잊혀지지 않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몇 개 있습니다.
제게 죽어도 잊을 수 없는 군대 이야기는 바로 자대 배치 뒤에 받았던 군 생활 최초의 야외 훈련, 소대 전술 작전 훈련에 관한 에피소드입니다. 그래도 신병 훈련소에서 군대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맛을 보았으니, 저는 훈련이라는 게 힘들어 봐야 얼마나 힘들겠나 싶었습니다. 게다가 무거운 군장도 없이 단독 군장으로 나서는 훈련이었으니까요.
저는 보병 소대의 화기분대 소속이었습니다. 화기분대는 일반 소총수들과는 달리 M60이라는 대형 기관총을 운용하는 분대입니다. 주로 후방에서 소총수들을 지원하는 역할이죠. 당시 저는 신병이어서 M60 사수, 부사수를 지원하는 탄약수 보직을 맡고 있었습니다. 행군 중에 무거운 기관총은 사수와 부사수가 교대로 나눠 들고, 탄약수는 주로 기관총 예비 총열을 메고 다녔습니다. 처음 들어봤을 때는 몇 킬로 안 되는 것 같아 들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훈련에 나가 보니 예상과는 달리 무게가 상당하게 느껴졌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로가 급격히 쌓여 갔습니다.
야간에 시작했던 훈련은 밤을 꼬박 새운 채 이동하여 모의 공격을 감행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름하여 여명 공격. 잠도 못 자고 뜬눈으로 서너 시간을 행군한 데다 졸음은 계속 밀려오고, 그날따라 예비 총열은 왜 그리 무거운지, 저는 첫 훈련의 고통을 톡톡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비몽사몽간에 집결지에 도착을 했고, 새벽 동이 터오기 직전, 소대장님이 드디어 공격 지시를 내립니다.
"돌격 앞으로!"
소대장님의 지시와 함께 모든 소대원들은 일사분란하게 산을 향해 함성을 지르며 뛰어올라갔습니다. 실탄이 지급되지 않으니 입으로 '와아!' 소리를 내며 가상 공격을 하는 것이죠.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어쨌든 그때는 그랬습니다.
문제는 급격히 떨어진 제 체력이었습니다. 꽤 경사진 산길을 한참 뛰어올라가야 하는데, 몇 미터도 못 가고 체력이 고갈되어 저는 그만 주저앉고 말았죠.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떨어뜨리고 힘에 겨워하는데, 눈앞에 군화 신은 발 한 쌍이 보였습니다.
"소대장님! 죄송합니다! 더는 못 가겠습니다!"
미안한 마음이었을까요, 저도 모르게 그 발을 부여잡으며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호통 소리와 함께 누군가 제 하이바(방탄헬멧)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것이었습니다.
"야 임마! 정신 안 차려? 이놈이 미쳤나!"
다름 아닌 우리 기관총 사수였습니다.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되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있어야 할 소대장님은 온데간데없고, 저는 웬 나무 밑둥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나무 밑둥을 부여잡으며 '못 가겠습니다, 소대장님' 하며 징징대고 있던 것이죠. 뒤에서 이 모든 광경을 낱낱이 지켜봤을 사수는 얼마나 웃기고 어이가 없었을까요. 해도 곧 떠오르고 세상이 밝아지니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고, 저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렇게 여명 공격을 끝으로 훈련은 마무리되었고, 제발 비밀을 지켜주길 바라는 제 바람과는 달리 이 망신스러운 상황은 삽시간에 전 소대원들이 다 알게 되었습니다. 소대장님도 껄껄 웃으며 '저기 가서 네 소대장 모시고 와라' 하고 장난을 치셨고, 고참들도 거기서 꿈이라도 꾼거냐며, 정말 정신이 어떻게 된게 아니냐며 킥킥거리며 돌아오는 길 내내 저를 놀려댔습니다.
그래도 걱정이 되었는지, 복귀하는 길에는 제가 들어야 할 예비 총열을 고참들이 나누어 들어 주었습니다. 사실 너무 창피해서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습니다. 망신살 때문인지 돌아올 때는 피곤하지도, 더 이상 졸리지도 않았습니다.
대부분 남자들은 부대 방향으로는 오줌도 안 눈다고 하고, 입대하는 꿈이라도 꾸면 악몽이라 말하지만, 저는 제 군 생활이 그렇게 싫거나 괴롭지는 않았습니다. 재미없고 지루하기도 했고, 겨울에는 혹독하게 추웠던 게 흠이라면 흠이었지, 나름 이 년 여를 별다른 고민 없이 보냈던 그 시절이 어쩌면 지금의 제가 가장 그리워하는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시간은 매년 한 해 한 해를 꼼꼼하게 계획하고, 관리하고, 버티고 이겨내야 하는 시절이니까요. 더 이상 혼자가 아닌, 곁에 챙겨야 할 가족이 있습니다. 물론 그들과 함께 지금도 무척 행복한 시절입니다. 하지만 그때 그 시절, 건강했던 몸으로 삼시 세끼 따뜻한 밥 먹고 땀 흘리고 운동하고 웃고 떠들던 그 시절이 어쩌면 가장 단순하게 행복했던 시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별다른 고민 없이 하루하루를 지내던 그 시절이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6개월의 시간. 그저 보내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되던 그 시절. 뒤통수를 치며 제 정신을 번쩍 들게 해주었던, 그 떠벌이 사수가 문득 보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