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게 고향이 어디냐 물어보면 저는 전라도 광주라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호적상 본적지는 전라남도 장성군이고, 실제로 태어난 곳도 광주가 아닌 전라북도 전주입니다. 그럼에도 성인이 되어 독립하기 전까지 어린 시절부터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이 광주이기에, 나에게는 그곳이 사실상 고향인 셈입니다. 지금도 어머니가 살고 계신 곳이기도 합니다.
서울에서 갓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당시 저는 한 대기업의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에 막 투입되었습니다. 프로젝트 팀은 서울 본사 시스템 구축이 완료된 후, 지방의 각 거점 도시들을 차례로 시스템을 확산하기 위해 종종 출장을 가야 했습니다. 출장팀은 먼저 부산을 들러 점검을 모두 끝내고, 바로 다음 거점인 광주로 이동하였습니다. 사실 처음 프로젝트에 투입될 때, 나중에 광주에 출장 갈 수도 있다는 이사님의 말씀이 너무 반가웠었죠. 제 고향이라며 꼭 가겠다고 줄기차게 요청한 결과, 이사님은 감사하게도 저를 출장팀에 포함시켜 주셨습니다.
가까운 곳에 어머니가 계시니 저는 다른 사람들처럼 눅눅한 호텔에서 지낼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어머니가 해주시는 따뜻한 아침을 먹고 출근할 수도 있었죠. 하지만 출장으로 내려온 고향은, 어린 시절 신나게 뛰어놀던 그때와는 느낌이 많이 달랐습니다.
광주가 내 고향이라고 하도 여러 번 말해 놓은 통에, 사람들은 이런저런 것들을 제게 많이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윤 대리, 여기 어딜 가면 맛있는 점심을 먹을 수 있어?"
"주말에 특별히 할 게 없는데 어디를 다녀오는 게 좋을까?"
"서 과장은 총각인데 어디 참한 광주 아가씨 없어? 좀 소개시켜줘봐."
당황스러웠습니다. 사실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긴 했지만 대부분 초·중·고 시절이었고, 유명한 맛집도, 아리따운 이성을 만날 수 있는 곳도 저는 전혀 알 수가 없었죠. 게다가 친하게 어울리던 친구들조차 대부분 서울로 올라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방학 때나 한번씩 가끔 내려오곤 하는게 전부였으니까요. 사람들은 윤 대리 고향이 확실히 광주가 맞냐며, 그런데 이렇게 아는 게 없냐고, 광주 오고 싶어서 거짓말 한 거 아니냐며 웃으면서 면박을 주기도 했죠.
그 시절 이십 대 후반의 저는 사실 서울이 더 편했습니다. 어울리던 이들도 모두 서울에 있었고, 광주에는 어머니가 계실 뿐, 어쩌다 한번 내려오면 따분하기만 해 바로 서울로 올라가 버리던 그런 시절이었죠.
서울에서 자리 잡고 산 지 십여 년쯤 지났을 때였습니다. 퇴근 후에 대학 동아리 술자리가 있어 몇몇 동기들과 함께 참석을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아주 오랜만에 한 선배 누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네 기수 위의 선배 누나이니 꽤 높은 선배님인 셈이죠.
누나는 싱가포르로 이민을 가 그곳에서 결혼을 하고, 꽤 오랫동안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가족 여행을 하려고 모두 함께 한국에 나온 거였죠. 오랜만에 만난 선배 후배들과 누나는 즐겁게 술자리를 나누었고, 옛날 이야기들로 우리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생소하기만 했던 싱가포르 생활에 우리들은 궁금한게 무척 많았습니다. 친절히 설명해 주던 누나는, 약간 발그레진 얼굴로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는 솔직히 싱가포르가 제2의 고향인 것 같아."
저는 좀 이상했습니다. 아니, 솔직히 조금 화가 났었죠.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지? 그래 봐야 다 한국 사람이지, 이민 간 지 얼마나 됐다고 저래? 해외 산다고 자랑하는 거야, 뭐야.' 어느덧 시간은 흘러갔고, 사람들이 취기가 많이 올라올 때쯤 그날의 자리는 자연스럽게 끝이 났습니다. 사실 그때 저는 누나가 했던 그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제게는 조금은 특별하게 각인된 싱가포르에, 어느덧 가족과 함께 오 년이 넘게 살고 있습니다. 주로 한국 사업을 담당하는 세일즈로 일하다 보니 저는 서울 출장이 매우 잦은 편입니다. 자주 갈 때는 평균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가는 편이죠. 그러다 보니 서울에서는 늘 호텔에 머뭅니다.
회사의 자금 사정이 좋을 때는 심지어 오성급 호텔에 머물기도 합니다. 예전에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외국에서 출장 온 사람들에게서 보이던, 사실 내가 그렇게도 부러워했던 그런 생활입니다. 사실 예전 그 선배 누나도 가족들과 호텔에서 머물고 있다는 것이 정말 부러웠었거든요.
그런데 이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처음 가졌던 생각과는 많이 달라져 갔습니다. 저는 깨끗한 호텔 침구가 너무 좋았습니다. 그 서걱거리는 이불 소리가 경쾌하고 더욱 청결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고급 호텔에 드나드는 내가 마치 뭐가 된 것 같아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었죠.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이런 호텔 생활이 어딘가 불편하고 외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출장을 가면 유독 미팅이 많아, 퇴근하고 호텔에 들어올 때는 녹초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피곤한 몸으로 호텔로 들어설 때, 아무도 없는 빈 호텔방이 언제부턴가 참 쓸쓸하게 느껴졌습니다. 어느덧 씻고, 남은 업무좀 처리하고 나면 혼자서 편의점에서 사온 소주 한 잔 하고 자는 것이 출장지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호텔에 묵는 것도, 가족 없이 혼자 일주일을 자유롭게 보낸다는 것도 부럽다고 제게 말합니다. 정작 저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죠.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공항에서 막 그랩을 잡아 탔을 때, '이제 곧 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 그때 가장 행복하고 마음 편하다고 아내에게 여러번 말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정들어 버린 이곳 싱가포르. 직접 말로 하지 않아도, 내심 속에서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오랜 편안함을 주는 이곳이, 지금 내게는 어엿한 제2의 고향이라는 것을. 그때 선배 누나의 마음을, 이제는 이해할 것 같습니다.
A person's hometown is rarely just a place of birth — it is where belonging quietly takes root. This essay reflects on the Korean experience of jegohyang (고향), one's hometown, and how the meaning of that word can shift over a lifetime. The narrator, who grew up in Gwangju, once laughed inwardly at a senior colleague who called Singapore her "second hometown." Years later, living in Singapore himself, he understands exactly what she meant. It is in the small moment — catching a ride home from the airport after a business trip — that he realizes this foreign city has, without his knowing, become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