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혁명 그 첫 번째 이야기, '독서'
결혼 17년 차, 마흔넷이라는 나의 모습이 가끔 아주 많이 낯설게 느껴진다.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렀을까. 젊음이 영원할 줄 알았던 나도, 점점 나이 듦을 느끼고 예전 같지 않은 내 모습에 놀라기도 한다. 문득 기울어져가는 몸을 따라 마음도 약해질까 걱정이 된다. 마흔은 불혹(不惑 :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음)의 나이라고 했는데, 불혹이 지난 지가 언젠데 내 마음은 惑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렇게 말하기도 한다. 현혹되는 일이 너무 많은 나이라 불혹해지 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어진 것이라고.
주부로서 배울 수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 가령 꽃꽂이나 플라워케이크, 수영과 테니스 그리고 사교모임 등의 일로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다. 사실 이러한 일들만으로도 내 마음이 풍요로웠던 시절도 분명 있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안락한 집에서 고민 없이 하루하루 지낼 수 있음에 감사했고 행복했다. (비록 그때는 그 행복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지금처럼 생각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시련은 찾아오는 법이다. 한참이나 지난 지금에야 그때를 돌아보며 '젊을 때 겪을 수 있는 값진 경험'이었다는 생각을 하지만, 사람이 어디 그러한가. 그 당시에는 출구가 없는 끝없는 동굴에 갇힌 기분이었으니. 불행은 연속으로 온다고 했던 말은 나에게도 적용되었다. 경제적으로 불안정해지니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자신감이 떨어졌다. 자연스레 인간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불행은 또 다른 불행을 낳는다 것은 당연한 이치란 생각이 든다. 불안정한 경제와 매끄럽지 않은 인간관계는 또 다른 여러 곳에도 영향을 주니 말이다. 행복과 불행이라는 것은 참으로 주관적이다. 남과 나를 비교했을 때 행복과 불행은 더욱 분명히 드러나 보인다. 대체 행복은 무엇일까? 의문이 들었다. 나보다 더욱더 곤경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면 내가 정말 행복하게 살고 있구나 싶다가도, 나보다 더 나은 사람들을 볼 때면 나의 상황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 모든 주관적 판단을 우리는 그저 하나의 단어인 '행복' 또는 '불행'으로 단정 지어 버린다.
나는 나만의 '행복'의 의미를 생각했다. 타인을 배제한 채 그저 순수하게 나 자신만의 행복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감을 느끼고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걸까. 그 해답은 독서였다. 독서는 행복과 기쁨, 즐거움과 충만 등의 긍정적인 감정뿐만 아니라 슬픔과 좌절 고통과 분노 등의 부정적 감정까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수많은 감정을 경험하게 해 준다. 그 누구보다 내 마음을 공감해 주고 이해해 주는 친구들이 바로 여기, 내가 손만 내밀면 닿을 거리에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나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도 했고 때론 충고와 질책도 서슴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있던 우물 속에 사다리를 내려 주었다. 나는 그 사다리를 딛고 드넓은 세상 속으로 걸어갔다. 수없이 펼쳐진 빛과 어둠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 내 속으로 온갖 희열과 고통들이 번갈아 들어왔는데, 신기하게도 이러한 과정에서 변함없이 줄곧 느낀 감정은 바로 '행복'이었다.
어릴 적 아버지께서 사주신 '꼬마 니콜라'전집(겨우 5권짜리 전집)을 줄기차게 읽었던 기억 이외엔 내가 책을 좋아했던 기억이 크게 없다. 중고등 시절에도 교육과정 필수도서를 울며 겨자 먹기로 읽었을 뿐, 도서관에 제 발로 찾아가 책을 찾아 읽은 일은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청소년 때 나는 책과 거리가 멀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대학 시절 전공 관련 서적과 교직이수를 하며 관심을 가졌던 철학책에 흥미를 가지기는 했지만, 오래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랬던 내가 마흔도 넘은 이제야 책에 빠지다니, 젊음을 책과 함께하지 못해 굉장히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금이라도 책의 가치를 알게 되어 천만다행이라 생각한다.
처음에는 에세이 또는 자기 계발서 그리고 육아서를 주로 읽었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 좋았다. 나보다 힘든 이들이 역경을 극복하고 성장해 나가는 모습은 나를 독려시켜 주었고, 육아의 난관에 부딪힐 때면 인내와 평정심을 갖게 해 주었다. 제각각의 모습으로 다양하게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하나 같이 향하고 있는 것은 행복이었으며, 그 행복은 결코 같은 모습이지 않았다. 책 읽기에 시동이 걸린 후로는 지식책에 관심이 옮겨 갔다. 교육, 역사, 예술, 과학 그리고 소설까지 여러 분야의 책 읽기에 도전 중이다.
제목을 주부 혁명이라 지은 이유는, 어느 한 평범한 여자가 주부라는 삶의 틀을 벗어나 내외적으로 질적 성장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기록해보고 싶어서다. 여기서 성장은, 다른 이들과 비교하면 너무나 미약할지도 모르겠지만 오롯이 나의 어제와 오늘을 비교해 본다면 분명 큰 의의를 가질 것이다. 나는 이미 '독서'를 통해 조금이나마 성장의 길에 발을 디뎠다. 누구에게나 '독서'란 좋지 아니할 수 없다. 무조건 성장의 기회를 준다. 나처럼 지극히 평범한 주부에게도 '세상에 눈을 뜨고 자신을 발견하고 각 생명체들의 존재의 의미를 깨닫는 기회'를 전해주니 말이다. 지금 당장 달려가 두 팔 벌려 책을 껴안아 보라 말하고 싶다.
다음 편 예고)) 주부로만 살던 평범한 여자가 사업에 도전하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