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에 비친 흰머리를 손으로 뽑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잘못 뽑았다간 흰머리 하나 뽑으려다 검은 머리 네 다섯개를 뽑기가 일쑤다.
흰머리에 대해 자유로와 지기로 마음먹었건만, 또 흰머리가 보이면 열심히 뽑아대는나다.
어렸을 적 아빠의 흰머리를 뽑으면 하나당 백 원을 주셨던 기억이 난다.
용돈을 벌 기회가 흔치 않았던 터라 열과 성을 다해 뽑아 드리면 아빠는 꼭 열개를 채우지 못한 채 그만 뽑으라고 하셨던 기억.
귀여운 딸의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아빠의 흰머리를 뽑아 드리는 서비스는 받고 싶으셨지만,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해 열개 이상의 흰머리는 못 뽑게 하셨다는 것을
나는 어른이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엄마인 내가 화장실에서 한 시간씩 거울을 보며 흰머리를 뽑아 대도 우리 아이들은 전혀 관심이 없다.조금은 서운 하지만 아직 흰머리의 의미도, 관심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아이들도 내 나이가 되면 엄마가 화장실에 들어가 왜 그리 거울 앞에서 오랫동안 머리를 쓸고 들여다봤는지를 기억하고 추억하게 되겠지.
하나씩 하나씩 뽑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언제 이렇게 흰머리는 많아졌는지...
요즘 스트레스가 많았던 건지...
나이는 또 어디로 다 먹었는지...
꽃나무에 꽃이 피듯
흰머리가 하나둘씩 내 머리 위에서 꽃을 피운다.
나보다 여섯 살 많은 아이들 아빠가
오륙 년 전 내 모습을 하고 있었다.
화장실 거울 앞에서 흰머리를 한참씩 바라보다가
뽑아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요 몇 년 전부터는 염색을 한다.
염색을 하지 않으면 나이보다 훨씬 들어 보인다.
나도 곧 우리 남편이 간 길을 따라가겠지?
염색은 싫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나이 들어 보이거나 고생한 사람처럼 보이긴 싫다.
간혹 시니어 모델 중엔 하얀 모발로 우아하게 워킹하는 멋진 모델들이 있다.
그분들처럼 아름답게 머리 전체가 백발이 된다면
그것도 해볼 만하다.
아니, 꼭 한번 해 보고 싶다.
어쨌든 지금으로선 검은 머리에 하나씩 난 파뿌리들을 당분간 이해하고 공존하는 수밖에...
반지의 제왕의 간달프 형님처럼 흰머리 휘날리며 멋진 자태를 갖출 때 까진 당분간 거울앞에서 오래 머무르며 흰머리를 뽑는 일을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