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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와 함께 찾아온 "엄마 싫어증"

막내가 변했다.

by 자람

첫째를 낳고 몇 년간 직장에 다니다가,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막 취업을 하려던 시점에 둘째가 생겼다.

이제 곧 사회로 복귀 하나 했는데, 둘째가 생긴 것이다.

감사하기도 했지만 다시 얼마간 일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슬프기도 했다.

대학원 마지막 학기였지만, 입덧을 하며 논문까지 감당할 수 없어,

휴학을 하고 이년 동안 출산과 육아에 전념했다.


둘째를 두 돌 까지 키워 놓고 대학원 마지막 학기를 들으며 졸업 논문을 쓰려던 참에

이번엔 셋째를 가지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셋째를 가지게 된 것이다.

'아, 내 꿈은 펼쳐보지도 못하고 아이들만 낳고 키우다가 끝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매일 매일이 우울했다.


존경하는 여자교수님을 찾아가 이런저런 고민을 이야기하다 그만 그분 앞에서 펑펑 울고 말았다.

"저는 공부도 많이 하고 싶고, 직장에서 인정도 받고 싶은데,

언제나 이 육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될까요..."


그러자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00야, 왜 슬퍼하니? 오히려 세번째 복덩이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졸업생 중엔 아이를 갖고 싶어도 생기지 않아 고민하고 힘들어 학생들도 꽤 있단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육아의 시간은 아주 잠깐 이야.

아이들을 키워 놓고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교수님의 말씀을 들어서 인지,

아님 내가 마음을 바꿔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는지,

그동안 품었던 우울하고 슬픈 감정을 거두기로 했다.

뱃속의 아이를 위해서라도 우울한 감정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아이를 셋이나 맡겨 주신 이유를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아이들을 잘 키울 자신도 없지만,

이 아이들을 한번 잘 키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아이를 키우는 일은 생각보다 더 힘이 들었다.

친정 식구들은 동생가족들도, 부모님도 모두 외국으로 이민을 가셨고,

친정 가족 중 한국엔 오직 나만 있었다.

친정 가족 중 한국엔 오직 나만 있었다.

시어머니는 연로하셔서 아이들을 맡길 수도 없었다.

남편과는 주말부부로 주말에만 만날 수 있었다.

직장 생활을 하며 아이 셋을 키우려니 정말 힘이 들었다.


나 혼자 어린아이들 셋을 데리고 고군분투하며,

매일 매일을 눈물로 살아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고, 힘든 나날들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느라 매일 에너지가 바닥이 날 정도로 힘이 들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걸 견딜 수 있었던 이유 또한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셋다 정말 사랑스러웠지만,

늦게 얻은 막내는 더욱 사랑스럽고, 또 한편으론 안쓰럽기도 했다.

막내는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 엄마로 인해 만 2개월부터 어린이 집에 맡겨졌다.


걱정과 달리 막내는 고맙게도 어린이집에 잘 적응하고, 잘 자라 주었다.

특히나 발육이 좋아 백일이 되었을 땐 몸무게가 거의 10kg에 육박했다.


그렇지만 이 사랑스러운 통통이(막내)를 바닥에 내려놓기 아까워 매일 집에 오면 안거나, 업고 있었다.

늦둥이라 안쓰러운 마음이 더 컸던 걸까?

'내 손목이 으스러지는 한이 있어도 이 아이를 내려놓지 않아야겠다.

시간만 되면, 기회만 되면, 안아주고 업어줘야겠다'

하는 마음이 늘 자리 잡고 있었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나는 최대한 자녀들과 함께 있는 시간들을 확보하려고 노력했다.

직장에서는 눈치를 받았을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자녀들과의 시간을

갖고, 행복한 기억을 만들어 주려고 애썼다.

주말엔 좀 쉬고 싶기도 하고, 집을 정리하고 싶기도 했지만,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좋은 추억들을 쌓아가기 위해 피곤하고, 쉬고 싶은 시간들을 모두 나중으로 미뤄뒀다.








이렇게 어렵게 어렵게 아이들 셋을 키워

이젠 막내도 스스로의 밥 정도는 차려 먹을 수 있을 만큼 자랐다.


그런데 요즘 사춘기의 조짐이 보이면서 막둥이가 점점 달라진다.

엄마 껌딱지, 매일매일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달고 살던 이 아이가

갑자기 "엄마 싫어증"에 걸리고 말았다.


"엄마 싫어증"을 유발한 가장 큰 원인은 스마트 폰 게임이었다.

게임을 밥 먹는 것 보다 더 좋아하고,

어느 날부터 손에서 스마트 폰을 놓지 않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더니

게임에 관련하여 잔소리를 하는 엄마와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밥을 먹을 때도, 심지어 친구가 놀러 와도 눈과 손에서 스마트폰을 떼지 않는다.

이러다간 진정 게임 중독자가 될 것 같아

오늘도 하기 싫은 "사랑의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아이도 안다.

엄마가 자신을 사랑해서 그렇게 말한다는 것을.

하지만, 지금 당장의 심심한 것을 견딜 수 없는 아들은

"엄마, 알겠어요. 그만해요. 내가 알아서 할께요. "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엄마, 더 이상 잔소리하는 것은 싫어요."라는 말이라는 걸

나도 안다.



사춘기가 누구에게나 한 차례 지나가는 거대한 태풍과 같아서

언젠가는 이마저도 지나가게 될 것인 걸 알면서도,

어느새 나의 입은 조바심으로

아이에게 잔소리와 조언이라고 생각하는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언제나 우리 막내는 "엄마 싫어증"을 극복하고, 다시 엄마와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


사춘기 아이를 세 번째 키우고 있지만,

여전히 어렵고 힘든 인생 숙제를

세 번째 반복 하고 있는 엄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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