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지 못하는 빗방울은 그냥 받아들이기
길을 잃으면
길을 읽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해질 무렵, 막 비가 그친 거리. 바닥의 촉촉한 물기는 길을 따라 늘어선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어 빛이 난다. 한바탕 휩쓸고 간 비바람에 떨어져 버린 낙엽들은 이리저리 길거리를 굴러다닌다. 때마침 마차 한 대가 달그락거리며 도착하더니 손님을 내려준 뒤 떠나간다. 출발하는 마차를 가로막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서둘러 길을 건넌다. 마차가 지나는 길을 따라 사람들의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방금 마차에서 내린 신사와 귀부인은 단번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검은 정장과 중절모자로 말끔하게 차려입은 신사는 귀부인의 우아한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따라가며 그녀를 에스코트한다. 그녀는 목이 파인 새하얀 레이스 드레스에 빛나는 목걸이와 귀걸이로 치장을 하고 값비싸 보이는 밍크 숄을 둘렀다. 그에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을 하기 위해 정성스레 말아 올린 갈색 머리 위로 분홍색 꽃 장식을 하고 하얀 깃털이 달린 커다란 검은 모자도 썼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우아한 것은 바로 반쯤 아래로 향한 그녀의 눈빛이다. 흘러나오는 음악의 선율을 따라 이제 막 파티장으로 들어서려는 그녀 앞에 꽃을 파는 어린 아가씨가 빨간 꽃 한 줌을 내민다. 파티장 안에는 이미 도착한 손님들이 붐비는데도 많이 팔지 못했는지, 아직 수레와 바구니에 꽃이 가득하다. 덕분에 진한 향기가 그녀의 코 끝을 자극한다.
야외 테이블에 앉은 신사와 숙녀도, 그 옆에 서서 담소를 나누는 또 다른 커플도 이 꽃 파는 아가씨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이 귀부인 역시 꽃 파는 아가씨를 그냥 지나쳐 가겠지. 이 아가씨는 왜 자신의 모습과 전혀 다른 이 세계에서 꽃을 팔아야 하는 걸까? 어떤 집에 누구와 살고 있을까?
아침부터 비가 내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 틈을 타고 깊숙이 들어와 버린 호텔방 그림 속 풍경. 평소 같았으면 그저 지나쳤을 장식용 액자로 여겼을 텐데 이날따라 이상하게 시선이 멈추었다. 귀부인보다는 꽃 파는 아가씨와 더 가까운 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을까. 그때 아직 생계형 직장 생활을 하던 -할 수밖에 없다고 믿었던- 나의 처지가 안쓰러웠기 때문이었을까. 객관적으로 보면 나는 때로 귀부인이기도 했고 때로 꽃 파는 아가씨이기도 했지만 꽃을 팔 때가 더 많은 삶이었다. 지금은 꽃을 팔지도 않고, 귀부인처럼 차려 입고 나서지도 않는다. 나는 이제 저 그림 속엔 없는 사람이 되어 이 글을 쓰고 있다. 그 순간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자유롭고 새로운 내가 되어.
어제 산 약이 효과가 있는 것 같다. 편도선 부은 것도 가라앉았고 컨디션이 한결 나아졌다. 이곳에 와서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방 안의 커튼을 젖히는 일이다. 스톡홀름 하늘은 여행 내내 화창한 맑은 날을 보여주더니 오늘은 조용하게 비를 내려준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니 이곳저곳 둘러보려는 의기 충만한 마음이 자연스레 진정이 된다. 그래, 오늘은 좀 여유롭게 지내는 날로 하자.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1층 레스토랑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창밖으로 보슬보슬 비가 내리고, 식사 중인 접시 위에서는 포크와 나이프가 달그락거린다. 이따금씩 고요함을 깨고 조심스레 소곤대는 사람들과, 식사를 마치고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사람들. 그들과 나는 여행이라는 우연으로 잠시 이 공간에서 추억을 나눈다.
비스킷, 쿠키, 빵. 요거트, 견과류, 치즈. 소시지, 베이컨, 달걀. 오렌지, 자몽, 애플 주스. 우유 그리고 커피. 주방에서 날아오는 맛있는 냄새까지 내 주위를 감싸며 기분을 좋게 한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다른 사람이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느낌은 언제나 행복하다. 어떤 걸로 접시를 채워볼까, 즐거운 고민을 시작한다. 너무 짠 스웨덴 음식들 때문에 난관을 겪고 있는 터라 소시지와 베이컨은 과감히 포기했다. 스크램블드 에그와 구운 토마토, 생 토마토 슬라이스, 멜론과 오렌지 그리고 -평소에는 관심 없던- 시나몬롤을 담았다.
윽. 스크램블드 에그의 짠맛이 혀를 감전시킨다. 그나마 따뜻한 음식이어서 의지하고 있었는데 이럴 수가. 다음으로 입안에 넣은 시나몬롤. 응? 이건 뭐지? 짠맛으로 인한 혀의 찌릿찌릿함이 사라진다. 다시 한번 짜디짠 스크램블드 에그를 입에 넣은 뒤 바로 시나몬롤을 한 입 먹어 본다. 대박 사건! 짠 음식의 단짝은 단 음식이었다! 맛있다, 라는 느낌이 얼마만인지... 고요한 식당 한켠에서 나 혼자 신이 났다. 대단한 식사도 아니었고, 갖추어진 식사는 더더욱 아니었지만 맛있고 배부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입안에서 온갖 황홀한 맛이 펼쳐지는 경험과는 전혀 다른 감사.
모처럼 만족스럽게 식사를 끝낸 뒤 카모마일 차 한잔을 들고 분위기 있는 로비의 한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창밖에는 여전히 빗방울이 흩날리고 거리는 한산하다. 출입구 쪽 벽에는 지미 헨드릭스 일러스트 액자가 걸려 있고 스피커에서는 이 순간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멀리서 들려오는 듯 부담스럽지 않은 볼륨의 음악. 누구 노래지? 음원인식 앱을 열어 갖다 대 보았다.
밴 모리슨(Van Morrison, 1945~)의 It’s Alright. 다음 노래는 이안 브라운(Ian Brown, 1963~)의 Dolphins Were Monkeys. 그리고 벡(Beck, 1970~)의 Unforgiven. 모두 처음 듣는 노래들이다.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음악들 그리고 낯선 나, 이 조합이 맘에 든다. 이제 이 음악들은 들을 때마다 나를 이 순간, 이 자리로 데려다 놓을 것이다. 마치 사랑할 때 들었던 음악들이 그 시절의 연인을 떠올리게 하듯이.
한껏 느긋하게 소파 등받이에 기대어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한산한 거리의 정지된 화면을 깨고 한 무리의 어린아이들이 횡단보도를 건넌다. 모두들 우산 대신 유니폼 같은 우의를 입고, 인솔자의 보살핌을 받으며 올망졸망 길을 건넌다. 아장아장 귀여운 발걸음 하나에 절로 미소가 번진다. 아...... 바랄 것 없이 행복하다. 비 오는 느린 아침의 이 평온함과 고요함.
비가 그친 오후. 메드보리야르플라첸(Medborgarplatsen)이라는 어려운 이름의 역에 내렸다. 오늘의 목적지는 스톡홀름의 홍대라는 소포(SOFO) 지구와 현대 사진 갤러리인 포토그라피스카(Fotografiska)다.
그나저나 대체 어디가 ‘소포’라는 거지? 아무리 걸어도 드디어 여기군, 하는 느낌은 받지 못한다. 지도에서 가리키는 소포 지역에 들어오기는 했는데 분위기가 지극히 평범하다. 흠 홍대 뒷골목도 주택가 분위기와 어우러져있으니 비슷한 건가. 긍정적인 생각과 인내심으로 이 골목 저 골목을 기웃거려보지만 가득하다고 소문난 감각적인 카페와 식당, 빈티지숍들은 다 어디에 있는지 수수께끼가 풀리지 않는다. 그저 어리둥절하게 걷고 또 걷는다.
소포(SOFO)는 ‘South of Folkungagatan’의 줄임말이다. 쇠데르말름(Södermalm) 섬 중에서도 폴쿵야가탄 거리의 남쪽 지역을 뜻한다. 스타일리시한 스웨덴 패션 및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의 숍이 밀집되어 있다. 스웨덴 힙스터(hipster)들 사이에 각광받고 있으며 덕분에 감각적인 카페, 바, 레스토랑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고 한다. 하지만 돌고 돌아도 느낌이 오지 않는다. 포기하는 심정으로 '그냥 주택가네.'하고 단정 지어 버릴만하면 하나씩 나타나는 가게들. 반가운 마음에 들어가 보았지만 가격은 역시 차갑다. 나중에 알고 보니 폴쿵야가탄 대로를 중심으로 그 뒤편이 번화한 곳이었다. 내가 헤맸던 곳은 한참 아래쪽.
어쨌거나 나는 할 수 없이, 주어진 것이 텅 빈 거리라서 그 순간의 현재를 즐기기로 했다. 동네 구경, 건물 구경. 새벽도 아닌데 지나다니는 사람이 정말이지 하나도 없다. 시간이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듯했다. 아무도 증명해 줄 수 없는 이 순간은 꿈과 다를 바가 없었다.
발길 닿는 대로 이 골목 저 골목을 맘껏 걸었다. 걷는 것이 여행이고, 걷다가 떠오르는 생각, 그것이 여행의 목적은 아닐는지. 좋은 곳만 걸으라는 법은 없다. 계획한 곳만 걸어야 하는 법도 없다. 여행이 내어놓는 그 길을 믿는 것이 여행자의 자격이다. 그것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어찌 여행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날의 길은 나를 신비롭고 아름다운 통로로 이끌어 주었다. 무작정 걸었던 골목 끝에는 삼각형의 지붕 모양이 예쁜 노란 아치가 기다리고 있었다. 상아색 담장 너머로 작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어딘가 높은 나뭇가지 속에 숨어서 자꾸만 이쪽이라고 속삭인다. 사실 지금 서 있는 지점이 정확히 어디인지 알지 못한다. 내가 계획한 목적지가 아니다. 하지만 넓지 않은 쇠데르말름 섬 안에서 길을 잃어 봤자 큰일이 날 것도 아니기에 마음껏 길을 잃기로 한다. 길 잃는 연습을 해보기로 한다. 길을 잃으면 길을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단 가 보자. 허락 대신 끌림이 있는 저 너머로.
아치를 통과하자 곧바로 드넓고 푸르른 잔디가 나타났다. 비밀의 화원에 우연히 발을 들여놓는다면 이런 느낌일 것 같았다. 아무도 없는 이곳엔 한없이 고요하고 평온한 시간만이 흐르고 있었다. 비가 그친 지 몇 시간 안 된 덕에 공기가 상쾌하다. 세상이 온통 싱그럽다. 그 순간 또 수줍게 암호같이 지저귀는 새소리가 시선을 높은 곳으로 데려간다. 나무의 건강한 잎사귀들은 풍성하게 자라나 있고,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굵직한 기둥은 하늘 높이 웅장하게 뻗어오른다.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자 적당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는 수많은 묘비들이 보였다. 추모의 꽃이 정성스레 장식되어 있는 묘비에는 저마다 의미가 깊을 문구들이 새겨져 있었다. 내용은 하나도 읽어낼 수 없지만 분명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고귀한 진심이 담겨 있을 것이다. 문득 4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랐다. 이런 곳에 모실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시외 납골당에 가로 세로 얼마 안 되는 좁은 칸에 모셔놓은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그나저나 무덤, 묘지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었나?
이곳에서는 무덤 혹은 공동묘지라는 섬뜩한 공포 대신 안식이 느껴진다. ‘죽은 사람’이라는 과거완료형의 명제보다는 ‘한때 우리 곁에 함께 살았고 여전히 우리 곁에 있는’이라는 현재진행형의 느낌이 든다. 그래서 얼른 지나쳐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잠시 머무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잠든 이들이 내게 하려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싶었다. 언젠간 당신도 나처럼 영원히 잠들 날이 올 것이라는 말, 그것은 자연스러운 당신의 미래 -물론 이렇게 아름다운 무덤에 묻힐 리 없겠지만- 라는 말, 달리 말하면 삶이 유한하다는 진리, 그러니 삶은 또 얼마나 소중한 것이며 당신은 또 얼마나 최선을 다해 행복해야 하는지... 잊지 말라는 말. 나는 낯선 이의 묘지 곁에 앉아 조용히 지혜의 말을 들으며, 죽음이 두려운 일이라기보다는 경건한 무엇이라 느끼게 되었다. 죽음은 멋진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죽음은 삶의 완성이라는 말도 어렴풋이 이해가 되었다. 그렇게 난 삶을 의미있게 해주는 죽음의 존재의 아름다움을 -죽음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받아들이고 있었다.
딩- 딩- 딩-
이제는 익숙하고 반가운, 정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우연히 찾아왔다 운명처럼 기억될 이곳은 포토그라피스카로 향하던 길목에서 만난 카타리나 교회였다.
포토그라피스카는 쇠데르말름 섬 동쪽에 있기 때문에 대략 그쪽 방향을 향해 걸었다. 구비구비 골목길을 따라 동네 풍경을 감상했다. 꼭꼭 닫힌 창문뿐이었지만 여기는 프로방스가 아니니 어쩔 수 없다. 길의 끝에서는 어김없이 멜라렌호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왜 이리도 물만 보면 반가울까. 얼른 언덕길 끝으로 달려가 고개를 내밀었더니, 성난 바람이 기다렸다는 듯 사정없이 몰아쳤다. 좋아서 웃던 얼굴도 정신을 못 차릴 정도다. 오늘 하늘은 끝내 햇살을 보여주지 않을 참인가 보다.
스톡홀름은 동쪽의 발트해와 서쪽의 멜라렌호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덕에, 호숫가에 있는 듯한 잔잔한 정취를 느끼게 해주다가도 갑자기 돌변하여 바닷바람의 거칠고 사나운 숨결을 내뱉는다. 내내 부드럽고 친절하다가도 기분이 안 좋아지면 돌연 불같이 화를 내는 다혈질 성격의 소유자 같다.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여름의 백야와 길고 긴 겨울밤 등 인내심을 요구하는 기후까지 합친다면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다. 날씨의 기가 너무 센 탓인지 스웨덴 사람들은 -날씨를 닮기보다는- 무엇이든 튀지 않는 것이 좋다는 가치관을 가졌다고 한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에 등장하는 스웨덴 여성에게 스톡홀름에 해당하는 단어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었을 때, 두 말하면 잔소리라는 듯 확고했던 그녀의 대답은 다름 아닌 ‘순응(conform)’이었다. 길에서 튀지 않는 빌딩의 높이, 레스토랑에서 튀지 않는 대화의 볼륨, 남들보다 튀지 않는 패션... 모든 것이 순응이라는 코드로 통하고 있었다.
이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럴 줄 알고 대비한 것에 뿌듯해하며 가방에서 접이식 우산을 꺼내 펼쳤다. 하지만 가냘픈 우산은 순식간에 훌러덩 뒤집어지고 만다. 앞을 가리면 뒤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뒤로 젖히면 어느새 다시 훌러덩. 여기 바람은 하나가 아니다. 몇 개의 바람들이 쉴 새 없이 엎치락뒤치락 요동을 친다. 뒤집히다 못해 찢어질 것 같은 우산. 우산과 나를 싸잡아 날려버릴 것 같은 바람, 바람 아니 비바람. 아...... 이래서 다들 우산보다는 우의를 많이 선택하나 보다. 할 수 없다. 우산은 포기하고 점퍼의 모자를 뒤집어쓴다. 막지 못하는 빗방울들은 그냥 받아들인다. 받아들이게 되는구나.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는구나. 빗줄기가 뺨을 때리고 빗방울이 속눈썹에 아른아른 맺힌다. 점퍼는 꿉꿉하고 머리칼은 온통 헝클어져버렸다. 지키려던 모든 것은 무너진 지 오래다. 차라리 마음이 편해진다. 절대 힘, 자연 앞에서는 대응보다 순응이 지혜롭다는 진리를 제대로 체득하는 날이다.
여전히 빗방울은 바람을 타고 춤을 춘다. 고지가 저기 있다. 일단 도착하고 보자. 오른쪽으로는 절벽, 왼쪽으로는 차들이 쌩쌩 오가는 도로. 그 사이 한 두 사람 정도 다닐 만한 좁은 인도를 따라 얼굴을 감싸는 가랑비를 헤치며 걸어간다. 포토그라피스카 가는 길은 쉽지 않다. 결국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라 ‘이게 무슨 사서 하는 생고생인가’ 싶다가도, ‘지금 이 경험이 그 어느 순간보다 기억에 남을 것 같다’며 진정하는 등 험난한 내적 갈등을 겪는 사이 어느새 포토그라피스카가 눈앞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