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주아 Mar 21. 2016

아름다운 파리!

Je suis en terrasse




파리의 첫인상


파리 북역은 그야말로 북새통이었다. 런던에 비해 흑인들이 급격히 많이 보이기 시작하는 도 특징이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정신이 없다. 런던에서는 옷깃만 닿아도 들었던 'Sorry'라는 말이 파리에서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먼저 비켜주거나 하는 배려도 사라졌다.


지하철역에서부터 늘어서 있는 흑인 상인들이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지하철 플랫폼은 냄새가 나고 지저분하다.  열차도 낙후되었고 분위기도 칙칙하다. 뭔가 잔뜩 예민한 인상을 한 사람들이 곳곳에 보였다. 런던에서 우울한 사람을 봤다면 여기선 성난 사람을 보는 듯하다. 메트로를 타고 피갈 역으로 향한다.




오는 길은 정신없었지만 호텔은 염려했던 것과 달리 깔끔하다. 아랍계 주인은 지도를 펼치며 주변 메트로 역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버스노선을 물으니 그 또한 친절히 알려준다. 유쾌한 아저씨다.

5층. 리프트가 없어 좁은 계단을 빙빙 돌아가며 한참을 올라가야 하는 505호. 숨을 고르며 문을 열고 들어와보니 전망이 나쁘지 않다. 발코니는 없지만 길고 큰 창문이 있어 파리의 공기는 마음껏 마실 수 있다. 침대도 편하고 구조도 깔끔하다. 이곳이 5일 동안 파리의 내 방인 셈이다.



파리는 오늘 흐리고 비가 내린다. 비 오는 파리는 제법 감성적이다. 창을 열고 파리의 지붕들을 구경한다. 건너편 건물은 학교라서 아이들이 수업하는 광경이 그대로 보인다.

비 오는 날이 종종 그렇듯 우울하고 우중충할 법도 한데 파리의 비는 낭만적인 느낌이랄까. 그래서 괜찮긴 한데 구경은 어쩐...




아름다운 도시

다행히 오후가 되면서 비가 그쳤다. 가까운 몽마르트르부터 보러 길을 나섰다. 흑인들이 팔찌를 강매한다는 좌측 루트를 피해 우측 계단길을 택했다. 이쪽은 사람이 별로 없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보니 중턱쯤 어느 집 앞에서 택배를 받는 모습이 보인다. 괜히 이런 곳에 사는 그 집주인이 부럽다.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본 파리 시내. 참 아담하고 예쁜 도시다. 셀카봉을 파는 흑인들, 묘기를 부리며 시선을 끄는 사람, 연주를 하는 사람 등 관광지의 풍경이 펼쳐진다.



샤크레 쾨르 성당을 촬영하다가 뻔한 사진에 답답함을 느끼던 차에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마음에 드는 구도를 발견했는지 한 자리에 서서 계속 사진을 찍고 있었다. 배낭을 멘 여행자의 느낌과 열심히 촬영에 집중하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이 예뻐 보여 난 그런 그녀를 찍었다. 그 순간 푸드덕 날아올랐던 비둘기 덕에 더욱 절묘한 사진이 되었다.



La Seine

파리는 아름다웠다.  파리가 이런 곳이구나. 그렇게도 흔하게 보아왔던 파리의 사진과 영화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파리를 만지고 마시고 가져보는 느낌. 아름다움을 보니 인생도 덩달아 아름다워지는 것 같다.

파리에서 센강의 풍경을 볼 때 알았다. 아름다움, 그것은 즉각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지 설명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르세의 긴 줄 때문에 강변으로 나와봤는데 이렇게 감탄하게 될 줄은 몰랐다. 파리는 풍성한 자연의 재료 위에 인공적인 예술미를 더하여 파리만의 분위기를 완성시켜 놓은 듯하다. 아름다운 파리! 잘 꾸며놓은 정원 같은 우아한 곳이 파리다.




로댕의 정원


오르세는 다른 날에 보기로 하고 로댕미술관을 찾았다. '생각하는 사람' 조각상은 기대보다 크기가 작았지만 깊은 상념에 잠긴 표정과 자태가 영혼이라도 있는 듯 느껴졌다. 힘과 열정이 넘치도록 느껴지는 로댕의 작품들은 실내 전시장뿐 아니라 정원 곳곳에 세어놓은 청동 조각상으로도 만날 수 있다.


로댕미술관 전경

로댕미술관은 로댕이 실제로 10년 동안 아틀리에로 사용했던 저택이었다고 한다. 저택 앞으로 꾸며져 있는 정원 또한 매우 아름답다. 좌우의 산책로 곳곳에는 소복이 쌓여있는 가을 낙엽들 위로 우수에 찬 표정을 지닌 로댕의 작품이 서 있다. 한 작품, 한 작품 감상하며 로댕의 저택에 놀러 왔다 생각하고 천천히 걷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로댕이 곁에서 말을 걸어올 것 같고, 얼마든지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영화 '미드 나잇 인 파리'의 상상력이 내게도 생겨나는 순간이다.


산책길을 나와 작은 연못을 지나면 정원사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느껴지는 세 개의 아치를 볼 수 있다. 그 아치를 통과하면 이렇게 아늑한 뜰을 만나게 된다. 조용하고 한적한 것이 이미 벤치에는 몇몇 사람들이 눈을 감고 누워있다. 햇살이 마당을 비추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멀리서 아스라이 들려온다. 평화롭고 달콤하다.




센강의 가을

다시 센 강변. 날씨가 서늘했고 낙엽이 적당히 떨어져 있어 가을 분위기가 물씬 났다. 하지만 춥지도 암울하지도 않았다. 여전히 아름답고 낭만적이었다.



비하켐 다리.  1층엔 차도와 인도가 있고 이 철구조물 위로는 열차가 지나다닌다. 영화 '인셉션' 탓인지 몽환적인 느낌이 물씬 묻어나는 멋진 장소다.



오후 4시쯤 됐을까. 한 남자가 비하켐 다리의 높다란 철기둥들 사이로 바쁘게 걸어간다.  여유로운 여행자인 나는 그를 바라보고 카메라에 담는다. 해질 무렵 만들어지는 사람의 긴 그림자는 늘 사진을 찍고 싶게 만든다.



비하켐 다리로 가서 에펠탑을 본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센강과 함께 어우러지는 에펠탑의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에펠탑으로 향하는 길에 버스를 탔다. 구글맵에는 무슨 사정인지 파리의 버스 노선은 안내되지 않는다. 그래도 아쉬운 대로 버스정류장에 붙어있는 노선표를 보면 행선지에 맞는 버스를 대략 알아볼 수 있다.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현지 표지판이나 감각으로 길을 찾아가는 것이 사실 더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가까이서 본 에펠탑은 늘 보던 열쇠고리나 인테리어 소품의 대형 확대판 같았다. 음. 에펠탑이군 싶은 정도. 하지만 빛을 받지 않았을 땐 잘 모르겠던 매력이 햇살이 비치자 드러나기 시작했다. 해 질 녘에 겨우 햇살이 조금 비춰주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파리의 밤

해가 지고 개선문 앞에 섰다. 개선문도 역시 예상했던 모습 그대다. 너무나 많이 봤던 그 모습 그대로...

샹젤리제 거리는 강남대로와 다를 바 없었다. 그래도 안 보고 가기엔 서운한 곳이긴 하다.

 


파리의 밤이다. 불이 켜진 에펠탑은 작고 예쁜 이 도시의 포인트 역할을 톡톡히 한다. 개선문 전망대엔 세찬 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친다. 이미 난간에 빼곡히 매달려있는 사람들 사이로 어떻게든 한 자리 차지해 보려고 다가가니 고맙게도 양보를 해주는 사람들. 서로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듯한 눈빛이다. 다들 멀리서들 여행 와서 파리의 야경을 보는 황홀한 순간이 아닌가.

정각이 된 모양이다. 에펠탑의 불빛이 트위스트라도 추듯 빠르게 반짝거리고 사람들은 모두 환호성을 지른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즐거운 순간이긴 하다.




환상의 공간, 오르세

오르세... 들어서자마자 숨이 멎으며 드는 생각.

'멋지다!'  

마네, 르누아르, 고갱조차 훑고 지나칠 수밖에 없는 어마어마한 인상주의 미술의 천국. 난 고흐와 모네를 집중 감상하기 위해 그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오르세에서는 하루 종일 머물러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


과거 오르세역이었던 감성 가득한 오르세미술관


오르세미술관 내 카페 캄파나의 풍경


아름다운 모네의 작품들을 원없이 볼 수 있는 오르세




파리의 거리

파리를 여행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하게 되는 센강이지만 볼 때마다 반하고 만다. 흐린 날 조차도 말이다. 서둘러 다음 목적지로 가야 하는데 이런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저 아래 길을 걸었어야 했는데 그걸 못했다. 그냥 다리 위에서만 바라보다 이동하고 이동하느라 바빴다. 강변에 세워져 있는 배들, 날씬한 가로수와 나뭇잎들, 바닥의 돌 문양, 철제 난간과 그림자...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는 걸 보면 내가 파리에 단단히 반한 것이 틀림없다. 이러다가 병이라도 날 것 같다.   



파리 거리의 깔끔한 표지판


건물 사이 평범한 골목길도 여행자에겐 특별한 길



사진의 창밖에는 건너편 플랫폼에서 다음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이고, 유리창으로 메트로를 타고 있는 한 백인 여성과 흑인 아저씨의 모습이 비친다.



처음엔 으슥하다 느껴졌던 파리 메트로의 연결 통로




파리의 음식


파리는 음식도 일품이었다. 길거리 어느 가게에서 산 샌드위치나 머핀도 기절할 만큼 맛있었다. 빵이라는 것이 원래는 이런 음식이었는데 마치 그동안 모르고 살아온 것만 같은 억울함마저 느낄 지경이었다. 그저 바게트 빵, 그저 머핀, 흔한 크로와상인데 차원이 다른 것이다. 재료와 레시피가 아예 다른 것 같았다.

몽마르트르 근처의 카페, 'La Fourmi' 혼자 여행하면서 스테이크 따로 시키고, 샐러드 따로 시키는 호사는 누릴 수 없어 아쉬움이 많았는데 파리의 카페에선 이렇게 샐러드에 치킨이 함께 나오는 메뉴가 있었던 것이다. 샐러드에도 다양한 재료가 섞여 있고 크루통까지 곁들여져 있어 맛과 조화가 끝내줬다. 옆 테이블엔 역시 혼자 온 손님이 연어 스테이크와 야채가 곁들여진 요리를 먹고 있었는데, 다른 날엔 저걸 먹어보리라 다짐해놓고는 결국 연어스테이크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먹었다.

 

머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였지만 파리의 머핀은 눈 깜짝할 사이 다 먹어 치워 버렸다.


마레지구 BHV 백화점 5층에 가면 셀프서비스식 카페테리아가 있다. 코너별로 나뉜 음식들을 주문해서 마지막에 계산하고 먹는 방식이다. 이곳은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전망이 좋아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각 메뉴별 코너에는 파리의 아주머니들이 계시는데 영어를 전혀 못하셔서 난감했다. 그분도 프랑스어를 모르는 동양인 손님이 난감했을 것이다.  눈치껏 이만큼 줄까? 이거 줄까? 저거 줄까? 하시는 아주머니와 그저 뭐든 물으면 다 '위, 위!'하고 대답하던 난 결국 한바탕 웃고 말았다. 그렇게 가져온 한 접시는 카페테리아라는 명칭도 무색하게 너무나 맛이 훌륭했다.


사실 파리하면 카페를 빼놓고 얘기할 수가 없다. 카페 앞 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행인들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는 파리지앵과 파리지엔느의 모습은 전형적인 파리의 풍경이다. 그만큼 유명한 카페도 많았고 가보고 싶은 카페도 많았지만 매번 다른 유혹에 이끌려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도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Cafe de Flore. 시간을 내서 오긴 했는데 그다지 별 감흥이 느껴지지 않아 얼른 나와버렸다. 바로 맞은편 또 하나의 유명한 카페, Les Deux Magots가 있었기에 이곳으로 들어가 시그니처 메뉴인 '쇼콜라 쇼'를 주문했다.

달지 않으면서도 진하고 부드러운 초콜릿의 맛을 음미하며 카페 안을 둘러보았다. 이곳이 생텍쥐베리와 알베르 카뮈, 샤르트르, 피카소, 헤밍웨이 등이 드나들던 공간이라 생각하니 머릿속에선 또다시 '미드 나잇 인 파리'가 재생된다. 그렇다면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엔 누가 앉았을까?




파리의 공원

앞서 들렀던 튈르리 공원은 보수공사로 산만한 분위기였지만 뤽상부르 공원은 그나마 괜찮은 편이었다. 이곳도 비수기라 그런지 의자들이 멋대로 뒹굴고 있긴 했지만 그런 것쯤 묻히게 만들어버리는 아름다움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뤽상부르 궁전 앞에 만들어놓은 동그랗고 커다란 인공연못, 아름다운 꽃밭과 아기자기한 모양으로 잘 다듬어 놓은 나무들... 이곳은 공원이라기보다 정원이라 해야 맞겠다.

10월이라 그런가... 햇살을 쬐며 연못 둘레에서 사람들이 한가로이 의자에 앉아 있는 풍경은 없었다. 정돈되지 않은 의자들은 비어있고 날씨는 서늘했다. 그럼에도 이곳에 온 것이 후회되지는 않았다.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뤽상부르 정원의 산책로




생 마르텡은 아름다웠다. 날씨가 싸늘해서 그렇지 날 좋은 날엔 정말 아름다울 것 같았다. 이곳에 오렌지빛 아침 햇살이 든다면, 이 낭만적인 거리에 붉은 노을이 진다면 어떨까. 정말이지 궁금하다. 안타깝게도 내가 파리에 머물렀던 5일 동안 흐린 날이 대부분이어서 생 마르텡 운하를 찾은 이날도 흐림이다.   


아치형 다리 위에서 본 거리.  운하 옆으로는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즐비하다.


생마르텡 운하는 파리의 청춘들에게 어울리는 감성적인 장소다

아주머니는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한껏 멋을 낸 옷차림을 한 흑인 파리지엔느가 걸어오는 모습 뒤에는 선글라스를 낀 세련된 부부가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하고 있다. 생 마르텡 운하를 배경으로 다양한 파리의 사람들을 볼 수 있었던 것도 흥미로운 일이었다.  




보주 광장을 찾은 날엔 날씨가 맑았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아래 파리의 풍경을 보니 기분까지 맑아진다. 햇볕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햇볕이 잘 드는 벤치를 골랐다. 벤치에 기대어 앉아 눈을 감고 나른하게 몸의 긴장을 풀어본다. 광장의 정원을 둘러싸고 있는 붉은 벽돌의 건물이 보주 광장의 아름다운 병풍이 되어주고 있다. 파리는 늘 이런 식이다. 저택과 정원의 조합. 다만, 이곳엔 연못 대신 분수가 있다.

 


푸른 잔디위에서 편하게 쉬고 있는 모습이 여유롭다


보주광장에서 엄마를 향해 포즈를 취하는 딸




화려한 파리

루브르는 정말 화려하고 웅장하며 아름다웠다. 파리에선 어느 것 하나 실망스러운 것이 없었다.

어마어마한 천고와 자연광이 감싸는 신비로운 빛 가운데 처음 마주한 '승리의 여신, 니케'. 빛의 효과 덕분에 승리의 영광이 더욱 잘 표현되고 있는 것 같다. 가까이 가보면 역동적인 힘과 자태를 뿜어냄과 동시에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매력에 또 한번 빠져들게 된다.


루브르의 수많은 작품들을 일일이 다 감상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도 모나리자는 안 보고 갈 수 없으니 지도를 보고 또 보며 찾아갔는데 어찌나 사람이 많던지 정말 진풍경이었다. 따지고 보면 다른 그림들에 비해 딱히 더 아름다울 것도, 더 훌륭할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다들 나 같은 심정이었던 모양이다.


화려한 루브르의 내부


루브르 창을 통해 보이는 파리 풍경


루브르 관람 중 창밖으로 촬영한 풍경





파리의 마지막 밤.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발레를 보기로 했다. 몇 달 전 예매해두었던 공연을 드디어 보게 된 날이다. 오페라 가르니에의 내부는 정말 상상 이상으로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격식을 갖춘 드레스가 어울릴 것 같은 중세의 궁전 같은 내부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 부럽지 않은 호화로운 리셉션장


리셉션장 한편으로 빠져나오면 이런 발코니가 있다. 번화한 파리의 밤거리를 내다보며 공연 시작 시간을 기다린다.


드디어 입장 시간.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내가 예매한 좌석을 찾아간다. 어느 문 앞에 도착한 그는 열쇠를 꺼내 문을 열고는 내게 들어가라고 친절하게 손짓을 한다. 들어서니 아주 프라이빗 한 대기실 같은 공간이 나타났고 다시 문을 열자 그제야 내가 예매한 좌석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특별해도 대기실에 앉아 있을 여유는 없었다. 가르니에 내부를 구경하는 데에도 시간이 부족하니 말이다. 온통 붉은 벽과 금빛 장식들로 치장하고서도 이렇게도 우아하고 기품 있을 수 있다니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가르니에의 현장감에 압도되어 난 그만 멍해지고 말았다.

제대로 된 발레 공연은 처음 보는 것인데 그걸 파리의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경험하게 된 것이다. 정말 꿈만 같은 순간이다.


오페라 가르니에 천장을 장식하고 있는 샤갈의 '꿈의 꽃다발'

 

Robbins/Millepied/Balanchine, 세 가지 주제의 발레 공연이 모두 끝났다. 발레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전문적인 감상은 뒤로 하고 그저 오늘 내가 본 발레는 인간의 몸과 그 표현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그 직관적인 예술성에 대한 것이었다. 지루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감탄에 감탄을 연속하다 보니 어느새 끝이 난 것이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제 귀가할 시간이다.




파리의 지하철은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다. 아담한 도시답게 역 사이의 거리가 짧아 그런 것 같다.

안내 방송이 없어도 알아서 내리고, 고리를 직접 들어 올려 수동으로 문을 열고 내리는 파리의 메트로도 이제 적응했는데... 어둑하고 음침해 보이는 플랫폼은 아직 좀 무섭지만 그 두려움도 조금씩 없어져가고 있는데... 이제 내일이면 떠난다.




파리를 떠나며

지극히 파리답고 자유로운 모습으로...

파리를 떠나는 것은 아쉬웠지만, 파리는 언제나 그곳에 있을 것이기에.... 나는 그래도 파리를 만났고, 느끼고 간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기로 했다.

내가 여행에서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15년 11월 13일, 파리 테러가 발생했다. 그 어느 곳이어도 안 되는 것이지만 왜 하필이면 파리였을까? 안타까운 심정으로 뉴스를 지켜보던 중 나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파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위협으로 마비되는 것이 아니라 테러에 굴복하지 않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파리 시민들의 정신이 바로 그것이었다.  

노천카페에서 바게트와 커피를 주문하는 지극히 파리답고 자유로운 모습으로 'Je suis en terrasse/나는 테라스에 있습니다'라는 SNS 해시태그 운동을 벌였던 파리 시민들. 공포 앞에서 자유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그들의 의지가 아름답다. 아름다운 파리! 파리는 그렇게 내게 더욱 아름다워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