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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을 유서에 적었습니다 [1]

당신이 빼앗고 침해한 것은 저작권 뿐만 아닌 나의 삶, 나의 영혼이었다

by 유주애

*이 글에 적힌 알파벳은 특정인이나 특정 단체를 지목하는 것이 아니며, 구분을 위해 임의로 적은 것임을 사전에 알려드립니다. 또한 이 글은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창작자 권익 보호를 위한 공익적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친오빠의 담도암이 말기로 접어들었을 무렵, 오빠의 투병 영상이 올라가 있던 유튜브에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으니 유서를 미리 써 두는 게 어떻겠냐'는 댓글이 달렸다. 그 댓글이 오빠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만 같아 기분이 섬뜩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댓글을 통해 나도 유서가 갖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만약 내가 미리 유서를 써 둔다면, 나는 그들의 이름.
바로 내 저작권을 침해한 이들의 이름을 유서에 적겠다.


너무 억울해서 모두가 알아주길 바라지만, 명예훼손이 될까 두려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그들의 이름. 한때 미국에서는 누군가를 겨냥한 폭로적 성격의 에세이가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사실을 적어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 이들에게도 지켜야할 명예가 있단 말인가. 그래서 지금 이 글에서도 차마 언급하지 못하는 그 이름들을 나는 유서에 적었다. 만약 나의 저작권이 나의 죽음 이후에도 끝내 보호받지 못한다면, 부디 그들의 이름이 온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를 바란다.

오빠가 하늘나라로 떠난 날, 2025년 1월 14일.

그 날도 나는 아침부터 분주하게 한국저작권위원회로 향하고 있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저작권상담 센터에서 변호사님을 만나는 내방상담을 하기 위해서였다. 오빠가 오늘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는 전화를 받자, 차의 방향을 틀어 병원으로 향했다.

평소 오빠의 병실에서도 우리는 저작권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자 오빠는 나에게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는 앱인 로톡을 소개해주며 말했다. "꼭 이겨."

나의 삶에서 얼마나 많은 부분이 저작권 침해로 인해 소모되고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만약 저작권 침해를 당하지 않았다면, 불편한 마음을 끌어안은 채 매일 밤을 지새울 일도, 변호사를 만나고 법을 알아보며 일상의 일부를 할애해야할 일도 없었을 것이고, 오빠의 곁을 좀 더 웃으면서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나의 직업은 '뮤지컬 작가'다. 뮤지컬 작가라고 하면 화려한 공연을 올린다는 생각에 다들 부러워하지만, 저작권과 관련된 나의 비극은 나의 데뷔와 함께 시작되었다. 올해로 무려 9년, 2016년부터 저작권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 본디 저작권이라는 것은 집필과 함께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이다. 내가 애써 주장할 필요가 없는 것. 그러나 내가 겪은 저작권 침해는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그 때마다 나는 나의 저작권을 '내 것'임을 애써 증명해야만 했다.


1. 가장 흔한 일. 저작권양도계약서

2016년. J시립예술단으로부터 계약서를 받았다. 그 때 나는 대학의 경영학과에서 계약서 관련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교수님께 보여드리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저작권과 관련된 지식은 없으니 한국저작권위원회에 문의해보는 게 좋겠다" 그리고는 이런 말을 덧붙이셨다. "계약이라는 게, 언제나 만족스러울 수는 없어. 때로는 경력을 만들기 위해서 양보를 해야하는 순간도 있지. 특히 경력이 절실한 무명의 작가라면."

그 때 처음으로 나는 한국저작권위원회의 문을 두드렸다. 지금은 시간이 흘러 2016년의 상담 기록이 사라졌지만,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꾸준히 한국저작권위원회의 도움을 받았다. 인터넷 게시판으로 1:1 상담 문의를 남기거나 전화를 걸면 그들은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성심성의껏 답변해 주었다. 이 상담 덕분에 나는 매번 내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똑바로 알 수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팁을 주자면, 급하게 알아야 할 내용은 전화상담을 추천하고, 조목모족 자세히 살펴봐야하거나, 말로 빠르게 지나가면 놓칠 것 같은 사항은 1:1 게시판 문의로 상담을 받으면 좋다. 전화상담은 실시간, 1:1문의는 회신까지 약 일주일이 걸린다)


J시립예술단이 보내온 계약서가 창작자에게 불공정한 계약서라는 사실도 이 때 알게 되었다. 그들이 보내온 계약서에는 대놓고 '양도'라는 말이 적혀있지는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저작권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초보 작가라면 큰 의심 없이 계약을 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옛말에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야 한다고! 그들의 계약서에는 공연이용권을 '무한대로 갖는다' 혹은 '갑이 저작권한을 갖는다'라는 말이 적혀있었다(이것은 결국 양도와 비슷한 효력이 있는 것이었다.) 그들이 만약 작가의 저작권을 정당하게 소유하고 싶었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라도 지불해야 마땅하나, 그들은 작가가 무명의 약자라는 사실을 이용했다. 나는 계약서 내용을 수정해 저작권을 영원히 빼앗기는 것만큼은 어떻게든 막았으나, 그 과정에서 그들은 수년 동안 나의 저작권을 공동소유하며 나의 작품을 다른 단체가 공연할 수 있도록 대리 허락을 하였고, 그들이 그 공연의 대가도 대신 수령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얼마에 공연 허락을 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으며, 그들이 계약서상으로 정한 소액의 금액만 입금받을 뿐이었다. 또한 어떤 날은 작곡가의 통장으로 입금하고 나에게 전달해주라고 했다. 다른 사람의 통장에 입금을 하며 나에게 전달하라고 한 것을 보면 그들이 창작자를, 특히 작가를 얼마나 가볍게 여겼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그들은 저작권을 잘 몰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잘 알기에 표준계약서를 교묘하게 변형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든 것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불공정한 계약을 막기 위해 '표준계약서'를 만들었지만, 갑이 아닌 을의 위치에 있는 작가는 상대적으로 약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나는 공연을 절실히 올리고 싶은 무명의 작가였다. 결국 그들의 말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도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날아오는 것은 '양도 계약서'였다. 나는 2021년에도 J시립합창단과 다른 작품으로 또다시 동일한 내용의 불공정한 계약을 했고, 그들은 '자신들과 일하는 창작자 모두가 이런 계약을 한다'며, 저작권을 지키려는 나를 유난 떠는 사람 취급했다.

2022년. AN시립합창단에서 의뢰가 왔다. 이번에는 주무관이 내 이름의 막도장을 파겠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위해서란다. 그 때 나는 이미 AN시립합창단으로부터 온라인으로 계약서를 받은 상황이었고, 그 계약서에는 '양도'라는 말이 제목에서부터 떡하니 박혀있었다. 당연히 거절했다. 계약서는 등기로 보내라고 했다. 그러자 또다시 나를 유난 떠는 사람 취급했다.

"작곡가님은 허락하셨는데, 작가님은 왜 그러세요?"

창작자들이여, 이런 말에 속지 말자. 남들이 어떻든,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우리는 지킬 건 지키자.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 도대체 어떤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려는 것인지 알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들은 계약서가 너무 많아 일일이 보여줄 수 없다는 어이없는 답변을 내놓았다. 결국 나는 끝까지 동의하지 않았고, 급히 작가를 구해야 했던 그들은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내 계약서에서 '양도'조항을 삭제했다.


또한 AN시립합창단에서는 “이건 원작이 책으로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작가님이 뮤지컬 대본을 쓰시는 거니까, 작가님은 저작권 없으셔도 되잖아요?”라고 주장했다. 이건 잘 몰라서 하는 이야기다.

원작은 원작자에게 저작권이 있고, 내가 쓴 대본(2차적 저작물)은 나에게 저작권이 있다. 단, 이 경우 나도 원작자에게 허락을 받아야하는데, 이 허락은 이 공연을 기획한 AN시립합창단이 K문화재단에 대신 허락을 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내 대본의 저작권이 그들에게 있어야할 의무는 없다. 내 대본은 오로지 내 힘으로 쓴 나의 대본이며, 창작 단계에서 그들이 문장이나 가사에 관여하지도 않았기에 오로지 나의 것이다. 그러니 저런 말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2. 교묘하게 바꾸면 모를 줄 알았어? 2차 창작극과 각색 문제!

2021년. J시립예술단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나의 창작물로 인형극을 만들어 공연을 올린다는 것이었다.

어? 이상하다. 인형극을 만들어도 된다고 허락한 적이 없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나는 다시 한국저작권위원회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 고맙게도 저작권위원회에서는 나를 위해서 변호사님을 알선해주었다. 당시 나는 아직도 저작권에 무지해 2차 창작물에 대한 개념이 생소했다. 한편, J시립예술단의 주장은 이러했다. 2016년에 나의 뮤지컬을 무한대로 사용하기로 계약했기 때문에, 인형극도 내 허락 없이 제작할 수 있다는 것.

결론적으로, 그들은 나보다도 더 저작권에 무지했다. 인형극은 나의 뮤지컬의 '2차 창작물'에 해당하며, 이를 원저작자인 나의 허락도 없이 공연하는 것은 명백한 저작권을 침해였다. 게다가 그들은 공연을 올린 뒤 카카오톡으로 통보하듯 계약서를 보내왔다(심지어 그 계약서는 다른 사람의 개인정보가 적혀있는 타인의 계약서였다. 또 한 번 창작자를 얼마나 경시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그들은 공연의 대가를 단 한푼도 줄 수 없다며 큰 소리를 쳤고, 이는 작곡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그래도 내 공연이 인형극으로 재탄생했다는 생각에 긍정적으로 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 문제는 '태도'였다. 그들은 창작자의 저작물을 어떻게든 허락을 받지 않고 사용하기 위해(+영원히 소유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카카오톡으로 왔던 계약서는 계약서가 오가던 도중, 나에게 말도 안 하고 조항을 몰래 수정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었다. 내가 꼼꼼하게 읽고서, 왜 말도 없이 조항을 바꾸었냐고 하자, 그는 '옛날 파일이 갔나 보네요'라며 얼버무렸다. 창작자들이여! 계약서는 도장 찍기 전까지 절대 방심하지 말고, 보고 또 보자.


*아래는 그 증거 중 일부이다. 보다 많은 증거가 더 있지만, 교육적 목적에 따라 이 정도만 공개한다. 불필요한 분란을 방지하기 위해 특정단체나 특정인물을 추정할 수 있는 개인정보를 보호하였다.


또다시 불공정한 계약서를 들이미는 그에게, 나는 저작권 침해가 이미 발생했으니 계약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작곡가님은 이미 싸인 하셨어요."

다른 단체였지만,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가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번 인형극도 '무제한'으로 공연을 올리고 싶다고 말했다.

게다가 끝끝내 그들은 2차 창작물인 인형극 공연에 대한 아무런 금전적 대가도 주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잠시 마무리하고, 2편으로 이어진다. 이는 내가 겪은 저작권 침해 사례가 아직 더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2편에서는 한국저작권위원회에 있는 '조정' 제도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이 제도는 창작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권리 구제 수단이다. 또한 나는 작사가로도 활동하고 있기에 '가사 저작권'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하려 한다. 또한 1편이 합창단과 예술단과의 협업 과정에서 겪은 저작권 문제를 중심으로 다뤘다면, 2편에서는 상업 뮤지컬 작업 시절에 겪었던 저작권 이야기도 함께 풀어보려 한다.

‘도대체 한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 저작권 침해를 겪었는가?’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창작자로서 활동을 계속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겪은(어찌 보면 '당한') 이야기들이 부디 나만의 경험으로 끝나기를 바란다. 그리고 만약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동료들이 있다면, 이 글이 그들에게 지혜이자 위로가 되기를. 후배들은 부디 나와 같은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 이 글이 여러분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어려웠던 모든 순간에 함께해 주고, 나의 창작 과정에 빛이 되어 주었던 한국저작권위원회에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한국저작권위원회에 눈물을 흘리며 적었던, 1:1 게시판의 일부를 공유하며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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