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은 왜 고작 저작권 때문에 펜촉을 꺾고 생을 달리하는가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저작권 보호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작성된 것으로, 특정 개인이나 단체를 비방하거나 훼손할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작가님! 작가님이 쓰신 소설에서 궁금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기록이는 기록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고, 기억이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람인데, 도대체 기철은 왜 기철인가요? 그냥 '기'자 돌림인 가족인 건가요?"
내가 쓴 소설 [절벽에 세운 집] 에서는 기철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이 인물은 저작권을 침해당한 충격으로 세상을 향한 불신이 생겨, 온가족을 데리고 절벽으로 가 집을 세우고 산다. 그의 아내 희은은 '고작 저작권 때문에' 그가 그토록 유난을 떠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 소설은 저작권에 관한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그의 이름을 '기철'이라고 지은 이유는 '검정고무신'의 작가님이신 故이우영 작가님을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기철은 '검정고무신'에 나오는 캐릭터 중 한 명이다.
지난 1화에서 다루었던 주제, [교묘하게 바꾸면 모를 줄 알았어? 2차 창작극과 각색문제] 와 관련하여 아직 할 말이 남았기에 마저 다루어보고자 한다. 참고로, 1편과 이어지는 내용은 아니니 이 글부터 먼저 읽어도 무방하다.
2. 교묘하게 바꾸면 모를 줄 알았어? 2차 창작극과 각색문제
2차 창작물로 인한 침해는 또 한 번 일어났다. 나는 어느 지방 Z시립합창단의 의뢰를 받아 역사뮤지컬을 창작해서 올린 적이 있다.
"작가님. 아는 사람이 소개한 건데 좀 싸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지인의 소개였기에, 데뷔 때도 받아본 적 없는 낮은 금액으로 집필을 해 주었다. 그런데 막상 집필을 하다 보니 역사극은 일반극에 비해 난이도가 배로 높았다. 바로 역사적 '고증' 때문이었다. 고증을 잘못하면 드라마나 영화만 욕을 먹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창작물이건 똑같은 잣대로 평가된다. 그렇기에 나는 수개월에 걸쳐 역사를 공부하고, 역사 전문가를 찾아가 자문을 구해야만 했다. 더군다나 그 역사속 인물은 Z지역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어쩌면 일반 시민들이 나보다도 더 그 역사인물을 잘 알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다섯배는 더 받을 걸 그랬어...'
하지만 이미 약속한 것이었기에, 최선을 다해서 집필을 했다. 나는 극을 쓸 때, 받은 만큼의 퀄리티를 쓰지 않는다. 얼마를 받든,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의 도자기를 빗는다는 생각으로 글을 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저작권 침해가 이루어졌다. 연출가가 나의 극에 '각색'이라는 타이틀을 올리고는 자신이 '각색자'라며 어떤 3천명 유튜브 채널에 인터뷰까지 한 것이었다. '각색' 이라는 타이틀은 저작권이 생기는 문제이기 때문에 원작자인 나와 상의를 했어야하는 것이었는데, 그 연출가는 나와 아무런 상의도 없이 그렇게 한 것이었다. 또한 자신이 마음대로 각색한 최종대본을 끝까지 나에게 공유하지 않았다.
그렇게 공연이 올라갔고, 나의 절친들은 Z시립합창단이 위치한 지역까지 내려와 나를 축하해주었지만 나조차도 그 날 공연을 통해 내 극이 어떻게 각색되었는지를 확인해야만 했다.
연출가에게 연락을 해서, 당신이 한 행동은 명백한 저작권침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그 연출가는 "결코 저작권이 탐나서는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 후, 이 연출가와는 다른 저작권침해 일로 또!!! 연류가 되어...아래와 같은 카카오톡을 나누게 된다)
*불필요한 분란을 방지하고, 오로지 교육을 목적으로 하기 위해 특정단체나 특정인물을 추정할 수 있는 개인정보를 보호한 상태로 게시되었습니다.
그 후, 202X년. 나와 함께 작업을 했던 작곡가로부터 카카오톡이 왔다. 내가 쓴 극을 다시 올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냥 올리는 것이 아닌, 제 3자에게 각색을 맡기겠다는 것이었다.
'왜 대본을 쓴 사람인 나에게 수정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제 3자에게 각색을 맡기겠다는 것이지...?'
하지만 내가 쓴 가사들은 또 그대로 사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본은 고치고 싶은데 가사는 좋다는 뜻인가...?'
작가로서 자존심이 상해서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그리고 그 연출가가 또 마음대로 극을 각색하고 싶은 게 아닐까 추측했었다) 그래도 공연이 올라가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각색자의 이름을 추가로 명시하고, 나를 원작자로 명시한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또한 내 작품이 원작인 만큼, 원작을 사용하는 이용료는 주어야한다고 했으며, 이것은 내가 욕심쟁이라서가 아니라 엄연한 수순이었다.
그는 알겠다며, 공연을 다시 올리게 된다면 연락을 주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후, Z시립합창단에서 내가 썼던 역사적 인물과 동일한 인물을 다룬 역사극이 새롭게 올라갔다는 제보를 여러 곳에서 받았다.
작가님. 이게 작가님 공연의 각색인 줄 알았는데...작가 이름이 전혀 달라서 연락드려요.
내가 더 큰 배신감을 느꼈던 이유는, 그 극은 '나의 대본에 허락 없이 각색 타이틀을 달았던 연출가'와, '나의 극을 다른 사람에게 각색하게 하고 싶다던 작곡가'가 함께 작업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작곡가와 공동작업을 하게 되면서 새로운 작가를 섭외한 것이 이유'라고 주장하였지만, 그것이 내 창작물을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다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한국저작권위원회에 도움을 청하게 되었고,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조정'이라는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창작자들은 불합리한 일을 겪었을 때, 창작자 개인이 단체를 상대로 목소리를 내야만 하는 경우가 많다. '단체'는 복수의 사람이기도 하고, 힘이 쎄 보여서 창작자는 그들에게 어떠한 주장을 하기가 무섭고 어렵게 느껴진다. 또한 바로 고소를 하자니, 변호사도 선임해야할 것 같고, 기간도 길 것 같고 상당히 부담스럽다.
이럴 때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이 바로 한국저작권위원회 조정 제도였다. 조정 제도의 경우 그 기간이 길어도 3개월 이내에 종료가 된다.
*아래 사진은 내가 신청한 조정예시이다. 피신청인의 이름은 지운 상태이다.
홈페이지에서 조정 신청을 하면, 한국저작권위원회는 나의 저작권을 침해한 개인 혹은 단체에게 나를 대신해서 공문을 발송한다. 당신들은 현재 이러한 연유로 저작권을 침해하였고, 원만한 합의를 하기를 바란다고.
-조정에는 아래와 같은 장점이 있으니 참고바란다-
전문성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전문적이고 공정한 조정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조정위원 3명으로 구성된 8개 합의부와 조정위원 1명으로 구성된 11개의 단독조정 등 총 19개의 조정부를 두고 있습니다. 조정위원들은 법조계, 산업계, 학계 등 저작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며, 각 조정부는 1인의 변호사 자격을 갖춘 조정위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각 조정부는 조정위원들의 전문분야를 바탕으로 배치, 구성하고 있으므로 분쟁 당사자는 보다 전문적인 조정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신속성
조정절차는 조정 접수일부터 3개월 이내에 종료되므로, 신속한 분쟁 해결이 가능합니다. (단, 양 당사자가 동의하는 경우 1개월 범위 내에서 연장 가능)
편의성
분쟁 당사자는 조정조사관의 도움을 받아 조정신청서를 직접 작성할 수 있으므로 법조인의 조력 없이도 조정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또한 조정은 오프라인 뿐만 아니라 온라인을 통해서도 신청할 수 있습니다.
경제성
조정수수료는 신청내용에 따라 1만원에서 10만원까지로 소송비용에 비해 매우 저렴합니다.
비공개
조정절차는 비공개로 진행되므로 분쟁 당사자는 영업 비밀의 누출, 분쟁 사실의 공개 등에 따른 부담 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피력하여 분쟁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조정에서 합의가 되면, 재판상의 화해와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 하지만 상대방이 합의에 응하지 않을 경우 '불성립'이 되기도 한다. 이럴 경우에는 결국 소송을 하고 재판까지 가야만 한다.
내 경우에는 Z시립합창단에는 결정권이 없다보니, 결국 시장에게까지 이 사건이 전달되었다. Z시에서는 내 창작물을 각색한 이유로 '역사적 고증'을 들었다.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는 "역사적 고증에 어떤 문제가 있었습니까?"라고 물었고, 그들은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고 답변했다. 또한 그들은 나에게 맞서 싸우기 위해(?)나의 대본을 논문표절을 위한 검사 시스템에 넣기까지 했다. 하지만 내 경우는 논문이 아닌 창작물이었기에, 창작물을 논문 기준으로 검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나는, 몇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새롭게 온 작가가 나의 수배에 넘는 돈을 대본료로 받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지인찬스라면서 말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에 해 주며, 수개월을 고증을 하느라 고생을 했는데...(눈물) 묻고 싶다. "그러면...너의 고증은 정말로 완벽했어?^^"(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생각해보면 나는 아무것도 없던 곳에 벽돌과, 창문과, 문, 지붕과 나무를 만든 사람이었고, 그는 그 그림 위에 덧칠을 한 사람이지 않던가. 그런데 우리의 대우는 왜 이토록 달랐단 말인가?
새로 참여한 작가는 나에게 사과하고, 자신의 대본에는 미련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신의 대본을 당장 내가 가진다고 해도, 혹은 Z시립합창단이 가진다고 해도 상관이 없다고 했다. 그는 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그는 나보다 한참 선배인 작가였다. 경험이 많아지면 저작권에 대한 경계가 흐릿해지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만약 그것이 나의 미래라면 나는 펜촉을 꺾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사정은 이러했다. Z시립합창단 기획실에 새롭게 온 관계자가 기존에 내가 쓴 공연을 올리려고 보니, 내가 아닌 친구 작가에게 대본료를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대본에서 내 이름이 사라졌다.
결론적으로,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지혜를 준 덕분에 나는 저작권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들은 저작권을 침해한 Z시립합창단이 전혀 반성을 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들이 회피하려고 하자, 직권조정을 내렸다. -조정부가 제시한 조정안을 어느 한쪽 당사자가 합리적인 이유 없이 거부한 경우 조정부는 직권조정결정을 할 수 있음- 즉, 그들은 나에게 사과를 하고, 피해보상도 이루어졌다. (그래서 나의 유서에 그들의 이름은 없다)
가슴아픈 이야기이지만, 이 과정에서 돌아가신 故이우영 작가님의 도움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작가님의 죽음으로 인해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는
다시는 이우영 작가님과 같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는 흐름이 일어나고 있었다. 제 2의 검정고무신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저작권법률지원센터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故이우영 작가님 또한 저작권 소송 문제로 마음을 많이 쓰셨다. 2022년 10월에 개봉한 검정고무신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작가님의 허락 없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겪었던 일도, 마찬가지로 '사전 동의'는 없었다.
(아래는 그와 관련된 기사다.)
지금에서야 이처럼 마음을 가라앉히고서 말할 수 있지만,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혼란스러웠고, 분했고, 원망스러웠고, 슬퍼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나는 한순간에 내 편이 아무도 없는 처절한 약자가 된 기분이었다. 어디서 도움을 구해야할지 알 수 없어 비참했다.
그 때 내 손을 잡아 일으켜 준 것이 한국저작권위원회였다.
나는 그들이 누구의 편이라고 하지 않겠다. 하지만 하나 명확히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은 '저작권'의 편이다. 그러니 당신이 저작권을 침해당하는 억울한 일을 겪었다면, 꼭 한국저작권위원회에 전화를 하고, 상담을 하고, 함께 해결을 위한 노력을 해 보기를 바라겠다.
또한 당신은 절대 혼자가 아니다. 내가 이우영 작가님의 마음을 알겠듯이, 누군가는 분명 당신의 억울함을 알아줄 것이다. 그 순간 당신의 편은, 하나가 되고, 열이 되고, 모두가 될 것이다.
누군가는 여전히 의아할 것이다.
"작가들은 왜 고작 저작권 때문에 펜촉을 꺾고 생을 달리 하나요?"
누군가에게는 저작권이라는 게 소중하지 않을 수 있다. 나도 저작권 침해를 당할 때마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또 다른 작품, 좋은 작품 쓰면 되는 거 아니야?"
또 다른 작품, 당연히 쓰겠지. 하지만 또 다른 작품을 쓴다고 해서 빼앗긴 작품에 대한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올해 1월. 작은 오빠를 담도암으로 먼저 하늘로 보냈다. 나에게는 오빠가 둘이었다. 이제는 한 명이 되었다. 큰오빠는 나에게 "내가 유일한 오빠가 되어버렸네." 라고 말했고, 나는 "그러게, 이제는 오빠가 둘이라고 말할 필요 없이, 오빠가 있다고 하면 되겠네." 라고 말했다.
누군가가 천국에 갔어도, 다른 사람이 있으면 위안이 되는 것일까? 아니다. 천국에 간 사람도 나의 오빠고, 지금 내 곁에 있는 것도 나의 오빠다. 그들의 가치가 누군가로 인해 대체될 수 없다. 그들은 유일하다. 내가 머리로 쓰고, 가슴으로 낳은 나의 창작물이다.
(이 이야기는 3편으로 이어집니다. 사실 저에게는 아직도 저작권 침해사례가 또 있습니다. 저의 저작권 침해사례가 당신에게는 예방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예방을 한다고 해서 저작권 침해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저작권 침해는 정말 어느날 갑자기 교통사고처럼, 나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 없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그러한 사태가 발생하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다음화에서 더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