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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을 유서에 적었습니다 [3]

당신이 포기한 그 작품. 그것은 그 작품의 가능성마저 포기한 것입니다.

by 유주애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저작권 보호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작성된 것으로, 특정 개인이나 단체를 비방하거나 훼손할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3. 상업 뮤지컬이라고 다를 것 같아?


202X년. 나는 한 상업 뮤지컬 극단 A로부터 각색 의뢰를 받았다. 자신들에게 대본이 하나 있는데, 어째서인지 완성도가 부족한 느낌이 들고, 그 이유를 모르겠어서 내가 완성을 해 주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앞서 2화에서 살짝 언급했듯이, 각색을 하는 순간 2차적 창작물이 되면서 나의 저작권이 발생한다. 나의 상상력(새로운 창작)이 그 대본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A제작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걸었다.


'단. 이 대본에 유주애 작가님의 이름은 싣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 경우 나의 저작권은 어떻게 될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저작권'이라는 권리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흔히들 말하는 '저작권'에는 사실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저작권은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 권리로, 다양한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크게 나누면 저작재산권, 저작인격권, 그리고 저작인접권이 있다.

생소하게 들리는가? 이렇게 이름으로만 한 번 들어서는 이해가 잘 안 될 수 있다.


먼저, 저작재산권은 이름에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저작물의 '재산적 가치'에 대한 것이다.

저작물의 재산적 권리. 즉, 창작된 저작물이 경제적으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또한 이 저작재산권은 세부적으로는 복제권, 공연권, 공중송신권, 전시권, 배포권, 대여권, 2차적 저작물 작성권으로 나뉜다. 앗! 잠깐. 머리가 아파온다고 해서 도망치지는 말자. 당신이 창작을 하고 있다면, 또는 언젠가 창작을 할 예정이라면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으니까. 그래야 당신의 당연한 권리를 지킬 수 있으니까.

복잡해보여도 모두 다 이름에 힌트가 있다. 아래와 같이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복제권 : 저작물을 복사할 수 있는 권리 (책, CD, PDF 등)

▶공연권 : 저작물을 공연할 수 있는 권리 (연극, 뮤지컬 등)

▶공중송신권 : 방송, 인터넷 등을 통해 송신할 수 있는 권리

▶전시권 : 미술 작품 등을 전시할 수 있는 권리

▶배포권 : 원본 또는 복제물을 유통할 수 있는 권리

▶대여권 : 유료로 대여할 수 있는 권리 (영상물 등)

▶2차적 저작물 작성권 : 저작물을 번역, 각색, 편곡 등으로 변형할 수 있는 권리




참고로 계약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양도도 가능하고 상속도 가능하다. 그리고 이 저작물들의 보호기간은 저작자의 사후 70년이다. 그러니, 저작자가 하늘나라로 떠났다고 해서(본인이 없다고 해서) 마음대로 써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자, 여기까지 이해했다면 다음은 저작인격권에 대해 알아보자. 이것은 창작자의 '인격'을 보호하기 위한 권리이다. 즉 '정신적 권리'를 뜻한다. 이것은 양도가 불가능하며, 창작자 고유의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공표권, 성명표시권, 동일성유지권이 있다. 어떤 내용인지 다시 친절하게 아래에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공표권 : 저작물을 세상에 처음 공개할지 말지 결정하는 권리

▶성명표시권 : 자신의 이름(또는 익명/필명)을 저작물에 표시할 권리

▶동일성유지권 : 저작물을 원형 그대로 유지할 권리 (무단 수정 금지)




내 경우, 극단 A에서 내 이름을 어디에도(대본이나 악보, 포스터나 리플렛, 등) 실을 수 없다고 한 것은 나의 권리 중 성명표시권(저작인격권의 종류중 하나)를 침해하는 것이 된다.

하지만 만약 내가 극단 A에게 양도를 하는 계약서를 작성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또한 내가 만일 그 회사에 소속된 직원으로서 고용이 된 상태로 업무를 한 것이었다면 이 또한 회사에 귀속(창작물을 회사나 대표자 명의로만 표기)될 수 있다.


1편과 2편에서 나의 저작권을 끝까지 지키겠노라고 부르짓었지만, 사실 나도 성명표시권을 포기한 채 대본을 쓴 적이 있다. 아직 그 대본이 공연되지는 않았지만, 아마 그 대본으로 무대에 올라가도 내 이름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작가님. 왜 그런 선택을 하셨어요?" 라고 묻는다면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태도에 있었다. 나에게 부탁을 하는 그들의 태도가 무례하지 않고 공손했다. 그리고 나에게 이 대본을 계기로, 함께 더 많은 뮤지컬을 쓰자고 했고, 비록 이것은 누군가의 창작물에 대한 각색이지만, 함께 창작극을 만들어 올리자고도 했다. 또한 성명표시 자체는 할 수 없다고 했지만, 적어도 주변 관계자들에게만큼은 "유주애 작가님이 수정해주셨어요."라고 말을 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당시 돈이 필요했다. 창작자는 때때로 돈이 필요할 때, 저작권 양도의 유혹을 받을 우려가 있다.


그 때는 그렇게 지나갔지만, 지나놓고 보니 후회스러웠다. 자식 하나를 입양 보내 놓은 상태인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저작권양도에 점점 더 익숙해질까봐 걱정이 되었다. 실제로 동료나 선배 작가님들 중에는 저작권 양도나 침해 패단에 익숙해져서, 그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거나 무심한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 일을 반면교사 삼아, 저작권을 더 열심히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 나는 다양한 극단들과 일을 하게 되었는데, 저작권을 인정해주고 로열티를 지불하는 단체도 있었는가 하면, 왜 양도를 하지 않느냐고 도리어 얼굴을 붉히는 극단도 있었다.

여러분에게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내가 겪은 사례 중 '제작사가 저작권을 양도받고 싶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주로


우리가 투자를 했잖아!


이다. 예를 들어서 극단 B가 나에게 '독거노인'을 소재로 글을 써달라고 했다고 치자. 그리고 내가 독거노인과 관련된 글을 완성하는 단계에서 그들은 나에게 '대본을 이렇게 수정하면 좋겠다', '대본에 이런 캐릭터가 등장하면 좋겠다'등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이 과정 속에서 그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가 이런 글을 써 달라고 했고, 우리가 돈을 들였으니까
그 창작물은 우리 꺼 아닌가?
이렇게 함께 고생해놓고서, 저작권은 작가님 것이라니 너무한 거 아니에요?


그 마음. 아예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제작사에서 의뢰를 했고, 개발 단계에서도 함께했기 때문에 당연히 애착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처음부터 저작권 양도 계약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제작사는 해당 대본을 이용할 권리만을 가지게 된다. 이 때, 작가(혹은 작곡가)는 제작사가 해당 대본을 몇 회, 혹은 몇 년간 사용할 수 있는지를 허락할 수 있다(이건 상호 정하기 나름이다)


그럼 저작권도 안 줄 거면서 왜 작가는 돈을 받아가냐고 묻는다면,


1. 제작사가 원하는대로 맞춤 글을 써 주었으니까.

2. 제작사가 원하는 기간동안 공연할 수 있게 이용허락을 했으니까.


위 이유 때문이다. 제작사에게 허락한 이용허락기간이 풀리면 결국 제작사는 저작권자와 재계약을 해야만 한다.


아니! 그렇게 되면 너무 억울하잖아요! 우리가 제작에 투자해서 쓰여지게 된 대본인데, 다른 곳에서도 공연을 한다니 너무 억울합니다!


제작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억울하다고.

그래서 흔히 하는 계약 중 하나가 '독점'이다. 해당 공연을 다른 제작사에서는 일정 기간동안은 공연하지 못하도록 제작을 의뢰한 제작사에만 독점이용권을 주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필수는 아니고, 제작사와 함께 정하기 나름이다.


아무튼 나는 어느날 B극단에 갔다가, B극단 대표가 위와 같은 이유로 나에게 얼굴을 붉히는 바람에, 나는 내가 정당한 저작권자임에도 불구하고(심지어 아직 대본 쓰지도 않았는데도),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 때, 그 극단에 소속된 배우 하나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는데, 그 말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작가님. 우리는 이해관계가 다른 것 뿐이지.
작가님이 위축되거나 미안하게 생각하실 필요 전혀 없어요.


이게 굉장히 맞는 말인데, 그 쪽 배우님께서 그렇게 말씀을 해주셔서 정말 놀랐고, 매우 고마웠다. 결국 극단 B와의 계약은 결렬이 되었고, 그 후 극단 B는 경력이 매우 필요한 극작가로부터 저작권을 양도받아 공연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든다. 내가 저작권을 내 것이라 고집하고 있기 때문에 공연을 올릴 기회를 남들에 비해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나는 빼앗긴 저작권으로 인해서 평생 신경이 쓰일 바에는 아예 대본조차 쓰지 않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한, 두 개쯤이야 양도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뮤지컬 <구름빵>. 들어본 적 있는가?

뮤지컬 <구름빵>과 관련한 저작권 논란은 원작자인 백희나 작가님의 저작권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사례로, 한국 문화계에 크나큰 충격을 준 사건 중 하나이다.


나는 백희나 작가님의 팬으로, 백희나 작가님 그림책 원작 뮤지컬 <알사탕> <달샤베트> <장수탕선녀님>을 보았다. 특히 장수탕선녀님은 4회 이상을 보았고(이 뮤지컬은 2020년 제 29회 대한민국문화예술대상에서 어린이뮤지컬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달샤베트도 2회를 보았다. 단, 백희나작가님의 뮤지컬 <알사탕>만 볼 수가 없었다. 공연이 되지를 않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아주 잠깐 짚고 넘어가자.

구름빵.JPG

원작자: 백희나 작가

출판년도: 2004년

형식: 그림책

이후 큰 인기를 끌며 애니메이션, 뮤지컬, 캐릭터 상품 등으로 확장됨


백희나 작가님의 <구름빵>은 초기 계약 당시, 출판사와의 계약서에 저작권 귀속 관련 조항이 명확하지 않았거나 불리하게 작성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출판사 측은 원작인 그림책 <구름빵>의 저작권을 전면적으로 활용해 애니메이션, 뮤지컬, 캐릭터 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확장했다. 하지만 정작 원작자인 백희나 작가님에게는 거의 수익이 돌아가지 않았다.

또한 앞서 내가 겪었던 사례와 마찬가지로, 뮤지컬 포스터, 리플렛, 프로그램북 어디에도 ‘백희나’라는 원작자의 이름이 없었다. 이는 앞서 말했듯 저작인격권 침해(성명표시권 위반)에 해당한다.


작가의 권리가 이렇게 미약하다니, 생각한 것보다 더 절망스럽고 처참하다.


출판사와의 저작권 소송에서 패소를 하자 백희나 작가님께서 하셨던 말씀이다. "저작권은 창작자의 것. 후배들은 이런 일 겪지 않았으면..."


백희나 작가님은 데뷔작 '구름빵'으로 한국인 최초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문학상'을 받기도 했지만, 법원은 출판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계약을 무효로 해달라'는 백희나 작가님의 청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결국 백희나 작가님은 저작권을 돌려받지 못 했고, 그녀의 작품을 항상 구경꾼처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2014년 당시 '구름빵'의 매출은 4천400억에 달했으나, 백희나 작가님의 인세는 1850만원에 불과했다. 또한 원작이 자신의 의도와 달리 변형이 되는 것에도 한마디 의견도 제시할 수 없었다. 이후 2014년 6월.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학 창작자들을 보호하고, 공정한 거래 질서를 형성하기 위해 출판 분야 표준계약서 7종을 발표했다. 또한 2015년 4월. 제 2의 구름빵 계약을 방치하기 위해 일명 '구름빵 보호법'이라고 불리는 저작권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출판 계약을 할 때 영화, 방송 등 2차 콘텐츠에 대한 권리가 작가에게 있다는 조항을 명시하도록 시정한 것이다. 또한 백희나 작가님은 더 이상의 저작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스스로 출판사를 차렸다.


아직도 저작권 한 두개 쯤은 양도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는가?

뮤지컬 구름빵.jpg

당신의 작품이 세상에 나와 어떤 결과물을 거둘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내 경우에는 '저작권' 자체에 관심이 많은 편이어서 이런 것들을 잘 알고 있지만, 꽤 많은 창작자들이 '의뢰를 받았으니까 제 작품의 저작권은 의뢰를 한 제작사 꺼 아닌가요?'라고, 저작권 양도를 당연히 생각한다든지, 저작권 양도 계약서를 받았음에도 계약서를 제대로 읽어보지를 않아서(이런 사람이 의외로 정말 많아서, 나중에 나한테 우는 소리를 하며 오는 경우가 있다. 생각보다 정말...많다.) 자신이 창작물을 이미 다 양도했음에도 모르는 경우들도 상당하다. 창작자들이여. 저작권 양도 자체가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는다든지, 혹은 큰 돈은 아닐지라도 저작권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창작자라면 상관 없다. 단! 자신이 하는 계약이 어떤 계약인지, 지금 내 저작권은 어떻게 된 건지는 좀 제대로 알고서 하자!


4. 가사에도 엄연한 저작권이 있습니다.


나는 가끔 뮤지컬에 '작사가'로만 참여할 때가 있다. 네이버에서 나를 검색해도 인물검색에 작가, 작사가로 소개가 되어 있는데, 그건 내가 극본과는 별개로 '가사를 쓰는 사람'임을 의미한다. 한 가지 자랑을 해보자면, 내가 작사한 곡이 2022년 제 8회 인천평화창작가요제에서는 피스마이크상을, 2024년 제 10회 통일로가요제에서 대상을 타기도 했다.

아무튼! 나는 다른 사람이 쓴 대본에 작사가만으로 참여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케이스는 주로 대본가가 연극대본을 주로 쓰는 경우이다. 연극과 뮤지컬 중 무엇이 더 우월하다고는 당연히 말할 수 없겠으나, 한 때는 뮤지컬이 연극이라는 거대한 집합에 포함되어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한국뮤지컬협회에서 멘토링을 받던 시절에는 한창 '뮤지컬 장르 독립 표기 위한 공연법 일부개정법률안'이라는 게 화제였다. 한마디로 뮤지컬을 연극에 포함된 장르가 아닌 독립된 장르로 분류하자는 것이었다.

자, 그렇다면 연극과 뮤지컬의 차이를 일반 대중들은 어떻게 구분하고 있을까? 바로 '음악'에 있다.

물론 뮤지컬 말고 음악극이라는 것도 있다. 이 두 차이까지 구분하자면, 오늘의 주제인 저작권으로부터 살짝 멀어질 수 있으니 지금은 뮤지컬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겠다.


연극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지만, 이러한 무대적 특성 때문에, 연극을 주로 쓰던 각본가가 갑자기 뮤지컬을 쓰려고 하면 곡이 들어가는 부분 때문에, 엄밀히 따지자면 '가사' 때문에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내 경우 2022년에 안양시립소년소녀합창단이 올린 뮤지컬 '메타오의 전설'이 그런 케이스였다(저작권 관련해서 매우 클린했기 때문에 실제 공연명을 언급한다. 이런 경우 오히려 칭찬해야 마땅하다.)

안양시립소년소녀합창단 뮤지컬 메타오의 전설 넘버 '다 없애주마' 작사_유주애 작곡_김보미 극본_채아신


극본을 연출가님께서 쓰셨는데, 나에게 뮤지컬에 들어갈 곡의 작사를 의뢰하셨다. 그리고 이 뮤지컬의 경우는 곡이 먼저 나와있는 상황이었다. 연출가님께서는 "극본은 내가 쓴 게 맞지만, 작사는 유주애 작가님이 하신 게 맞다"며, 대본과 작사의 롤을 명확히 구분지어주셨다. 그리고는 리플렛에도 작사가로 나의 이름을 올려주셨다. 그래서 나는 아주 즐겁고 편하게 작사 작업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때때로, '작사'가 전문 영역이가 기술이라는 것을 전혀 인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렇게 또다시 저작권 침해가 일어났다.

친한 작곡가님께서 J시립합창단과 일을 하게 되었고, J시립합창단이 들고 온 것은 마찬가지로 연극 대본이었다. 위 사례와 마찬가지로 연출가가 대본을 쓴 케이스였는데, 곡이 들어가야할 부분에 아이디어가 있거나, 노래 제목만 있는 상태였다. 연출가는 작곡가에게 "곡을 쓰면서 가사도 쓰세요."라고 말했다. 즉 작곡가에게 작사를 하라고 한 것이었다. 하지만 작곡가가 보기에 그 대본은 곡을 붙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작곡가님은 나에게 작사를 부탁했다. 막상 대본을 보니 두 세명의 캐릭터가 대사만 주고받는 부분들도 있었다. '이걸 어떻게 작사를 하라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작사란 모름지기 곡을 붙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상태여야만 했다. 하지만 아이디어만 있을 뿐 곡을 붙일 수 있을만한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작곡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사를 먼저 쓰기로 했다. 나의 작사 방식을 알려주자면, 나는 가사를 쓸 때 작곡을 함께 한다. 그리고는 내가 작곡한 곡은 아무에게도 들려주지 않고 가사만을 건넨다. 이렇게 해야지만 곡을 붙이기 편한 형태의 가사가 탄생한다. 그것은 이미 한 번 곡이 붙어있었던 가사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나는 15곡의 가사를 작사했다. 하지만 우려가 되는 부분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곳이 J시립합창단이라는 점이었다. 나는 수년간 J시립합창단으로부터 다양한 저작권침해를 당해왔다. 또한 연극 대본을 가져온 연출가 A는, 나의 다른 작품을 다른 시립합창단과 함께 올릴 때, 나의 허락을 받지도 않고 마음대로 각색을 해서 올린 전적이 있었다. 그들이 이처럼 허락을 받지 않거나, 정당하지 않은 형태로 저작권을 침해했었다는 사실을 나는 오랜 세월에 걸쳐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작곡가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가사들의 저작권은 저한테 있습니다.

작곡가는 연출가 A에게 유주애 작가님이 본 뮤지컬의 전곡을 작사해주었다는 사실을 바로 카카오톡으로 알렸다. 연출가 A는 매우 흡족해하며 '고생했다, 수고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고맙다는 말이 하나도 없다는 게 이상했지만, 그래도 연출가 A는 전달받은 가사에 만족했다. 그런 연출가에게 작곡가는 '가사의 저작권은 유주애 작가(작사가)님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자, 갑자기 연출가는 태도를 180도 바꾸었다.


작사요? 저는 유주애님 작사자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다음 화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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