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타 Aug 24. 2022

[Reading]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마음속의 휴(休)남동 서점을 찾는 일

누군가 내게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책을 발견할 즈음에는 유독 더 책을 읽고 서점을 찾아다니는 일에 몰두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의 가장 첫 페이지에 적힌 문구를 읽자마자 안 읽을 수 없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점이 없는 마을은 마을이 아니다. 스스로 마을이라 부를 수는 있겠지만 영혼까지 속일 수는 없다는 것을 자신도 알 것이다. - 닐 게이먼(소설가) ​


서점을 운영하는 주인공과 서점을 찾는 이들과의 에피소드를 다룬 책이겠지, 어림짐작하며 읽기 시작한 책이었는데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땐 그 이상의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더 마음속 깊이 등장인물들의 사연이 와닿았다. 영주와 민준을 포함한 등장인물들이 마치 내 지인처럼 느껴졌고 휴남동 서점은 아주 가까운 어딘가에 한 번쯤 지나친 서점 같았다. 책을 펼칠 때마다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지는 모든 장면들 덕분에 이 책을 읽는 시간만큼은 현실을 떠나 온전히 몰입하여 책 속으로의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

이상한 여자, 이상한 서점

 (중략) 영주는 떠나온 인물이 나오는 소설을 파고들었다. 그녀는 마치 떠나온 사람들에 관한 이 세상 모든 이야기를 모으려는 것처럼 굴었다. 그들이 떠나온 이유, 떠날 때의 심정, 떠날 때 필요했던 용기, 떠나고 나서의 생활, 시간이 흐르고 나서의 감정 변화, 그들의 행복과 불행과 기쁨과 슬픔. 영주는 원할 때면 언제든 그 장소로 찾아가 그들 곁에 자신을 눕혔다. - 본문 30p


이런 동네에, 이런 위치에 서점이 있다고? 의아해하는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 영주는 서점을 오픈했다. 책장 이곳저곳이 비어있는 휑한 서점이 마치 영주를 닮아 있었다. 영주는 매일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카운터를 지켰고 오는 손님들은 휴남동 서점을 이상한 여자가 운영하는 이상한 서점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사연인지 모르겠으나 떠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위로를 얻고자 끊임없이 책을 파고드는 영주의 모습에서 일상이 버거워질 때면 책 속으로 숨어 회복하려 하는 내 모습이 투영되어 보였다. 그리고 책을 끝까지 읽어갈 때쯤엔 마치 거울을 마주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기억이 아닌 몸에 남는 책

영주가 스스로 생각해낸 답이 지금 이 순간의 정답이다. 영주는 정답을 안고 살아가며, 부딪치며, 실험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안다. 그러다 지금껏 품어왔던 정답이 실은 오답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다시 또 다른 정답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평범한 우리의 인생.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 안에서 정답은 계속 바뀐다. - 본문 32p


"책은 뭐랄까.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니라 몸에 남는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아니면 기억 너머의 기억에 남는 건지도 모르겠고요. 기억나진 않는 어떤 문장이, 어떤 이야기가 선택 앞에 선 나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중략) 전 그 책들을 다 기억하지 못해요. 그래도 그 책들이 제게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 본문 57p


자기 계발서나 업무 관련 책들은 읽으면서 유용한 정보를 많이 얻는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에 적용하기 이전에 증발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소설을 읽을 때엔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소설을 봐야 한다고 말한 누군가의 말이 마음에 콕 박혀서인지 인물들의 감정을 이해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읽을 당시의 감정만 크게 기억되고 시간이 지나면 스토리가 잊히곤 한다. 이렇게 다 의미 없이 증발해버리는 것 같아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읽는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읽는다는 건, 정답을 찾고 싶은 마음이 만들어낸 하나의 강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릴 때 항상 정답은 교과서에 있었으니까. 어른의 교과서는 책이니까. 교과서가 '해당 분야에서 모범이 될 만한 사실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품게 된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결국 오답일 수도 있지만 정답이라 믿는 것들을 품고 살아가기 위해 해야 하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어디선가 읽은 문장들이 우리 몸에 남아. 우리가 하는 선택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이 꽤나 큰 위안을 주었다.


​​


행복보단 행복감을 선택하는 삶

"그가 말하는 행복이란 마지막 순간을 위해서 긴 인생을 저당 잡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요. 마지막 순간에 한 번 행복해지기 위해 평생 노력만 하면서 불행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요. 이렇게 생각하니까 행복이란 게 참 끔찍해졌어요. 나의 온 생을 단 하나의 성취를 위해 갈아 넣는 것이 너무 허무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이제 행복이 아닌 행복감을 추구하며 살아야지 하고 생각을 바꾼 거예요." - 본문 237p


목적 없이 한 대상에게 이토록 긴 시간을 내어준 적이 전에는 없었다고 생각하면서 민준은 지금 자기가 굉장히 사치스러운 행동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시간을 펑펑 쓰는 사치. 시간을 펑펑 쓰며 민준은 조금씩 자기 자신만의 기호, 취향을 알아갔다. 민준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어떤 대상에 관심을 기울이다 보면 결국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는 것을. - 본문 84p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과 행복감을 구분했다고 한다. 행복이란 전 생애에 걸친 성취로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위해 평생에 걸쳐 노력해 이루는 것. 그것을 '행복'으로 정의하고 그 외의 것들은 '행복감'으로 정의했다고 한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워커홀릭의 삶을 살았던 영주가 번아웃 이후 행복이 아닌 행복감을 추구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여전히 행복과 행복감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하는 행복의 기준에서는 위 본문에서 민준이 얘기하는 시간을 펑펑 쓰는 사치 따위는 용납되지 않았을 것이다. 목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본문 내용처럼 책에, 서점에,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시간을 보내다 보면 결국은 나 스스로를 들여다보게 된다는 것에 적극 공감이 되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떠한 삶을 살고 싶은지는 내가 나에게 질문을 던질 때보다 내가 어딘가에 던져져 질문을 받을 때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


결국은 혼자 살 수 없는 인생이라는 것,

처음 사는 삶이니 그렇게나 고민을 했을 수밖에. 처음 사는 삶이니 그렇게나 불안했을 수밖에. 처음 사는 삶이니 그렇게나 소중했을 수밖에. 처음 사는 삶이니 우리는 이 삶이 어떻게 끝을 맺을지도 알 수 없다. 처음 사는 삶이니 5분 후에 어떤 일을 맞닥뜨리게 될지도 알 수 없다. - 본문 321p


"좋은 사람이 주변에 많은 삶이 성공한 삶이라는 생각. 사회적으로 성공하진 못했을지라도 매일매일 성공적인 하루를 보낼 수 있거든, 그 사람들 덕분에." - 본문 325p


이 책을 마무리하면서 작가님은 영화 <카모메 식당>이나 <리틀 포레스트> 같은 분위기의 소설을 쓰고 싶으셨다고 했다. 제대로 숨 쉴 틈도 없이 하드코어 하게 흘러가는 일상의 소리로부터 물러난 공간. 그 공간에서 부드러운 결로 출렁이는, 채워주는 하루 같은 책을 쓰고 싶으셨다고.

책을 다 읽고 카모메 식당과 리틀 포레스트를 이어 보면서 왜 이런 책을 쓰셨는지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영주가 참 부러웠는데, 카모메 식당에서는 사치에가, 리틀 포레스트에서는 혜원이 부러웠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기에 텅 빈 공간이 채워지고 막막했던 타지에서의 삶에 정답을 찾아가고, 아주심기를 위한 결심을 할 수 있게 되는. 그 모든 과정이 아름다웠다.


​​

우연찮게도 나는 2018년부터 연말이 되면 SNS에 아래와 같이 '처음 살아보는'이라는 문장을 시작으로 짤막한 글과 사진을 남겨왔다.


처음 살아본 27은 이어야 할 것과 끝맺어야 할 것들을 구분하고 하고 싶은 것들에 집중했으며,

처음 살아본 28은 코로나가 가져다준 제약들로 주변 사람들을 챙길 여유가 부족해 아쉬움이 컸으며,

처음 살아본 29은 해볼까? 싶은 일들은 해보고 사볼까? 싶은 것들은 도전해보면서 좀 더 나은 삶을 만들어 나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직 처음 살아보는 30은 어떤지, 좀 더 회고가 필요하겠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영향을 주고받기 위해 애써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좋은 사람이 되어, 좋은 사람을 곁에 두기를.

이런 따뜻한 생각을 품게 해주는 책을

앞으로도 많이 만날 수 있기를.


작가의 이전글 [Reading] 불편한 편의점 - 김호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