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돌로미티에서
파노라마 뷰를 볼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는데
대표적인 곳이 카디니 디 미주리나, 라가주오이, 누볼라우 산장,
파소 지아우 맞은편, 그리고 세체다 정상 등이 있다.
이 가운데서도
풍광이 가장 스펙터클한 곳이 있다면
카디니 디 미주리나와 라가주오이 정상이다.
이 두군데에서는
360도 파노라마 뷰를 볼 수있는 만큼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라가주오이 정상에서의 제대로 된
일출과 일몰 사진을 보기란 쉽지 않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돌로미티의 대부분의 케이블카나 리프트가 그렇듯이
라가주오이로 올라가는 마지막 케이블카가 오후 4시 45분인데
이 시간이 지나면 라가주오이로 올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걸어서 올라갈 수 있지만
올라가는데 두 시간이 넘게 걸리는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기가 쉽지 않고,
또, 일몰을 본 후에
캄캄한 밤에 내려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기 때문에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결론은
라가주오이 산장에서
하룻밤을 머물러야 하는데
야생화가 만발하는
6월 중순부터 7월 초까지는
라가주오이 산장 예약이 상당히 어렵다.
어찌 어찌해서
산장 예약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 다음 난관이 남아 있는데 그것은
라가주오이 산장이 해발 약 2,700m에 있기 때문에
날씨가 좋지 않을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라가주오이를 방문하는 사람은
대다수가 당일에 올라가서 당일에 내려온다.
그래서 라가주오이의 일출과 일몰 사진을 보기 어려운 것이다.
2024년에는
돌로미티에 두 번 갈 기회가 생겼다.
그 두 번 모두 8개월 이전에 결정되어서
6월 15일과 6월 27일의 라가주오이 산장 예약에 모두 성공했다.
결과적으로
올해는 라가주오이에서
12일의 시차를 두고 2박을 할 수 생겼는데
그래도 만족할 만한 일출과 일몰을 보기는 어려웠다.
라가주오이에서는
360도 뷰를 볼 수 있는 만큼
어디서 어느 곳을 봐도 멋진 뷰를 볼 수 있다.
6월 15일의 일몰 시간은
대략 9시 10분 경이었는데
짙은 운무로 인해 거의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게다가 바람까지 불어서
6월 중순의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체감 기온은 영하의 날씨처럼 느껴졌다.
다음날 아침,
해가 뜨는 시간이 5시 15분경이었는데
일출 방향인 토파나 부근은 여전히 짙은 운무와 안개로 덮여있었다.
그래서 라가주오이의
첫 빛이 주는 오묘하고도
황홀한 색감은 놓치고 말았다.
해가 뜬지
이미 40분이 지났을 무렵
서서히 구름이 걷히고 주변의 산세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빛이 주는 최상의 색감은
이미 사라지고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해가 구름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며,
그리고 구름도 밀려왔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며
여러 드라마틱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이미 좋은 빛은 사라지고 없었기에
좋은 사진을 촬영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돌로미티에 올 때마다
라가주오이는 항상 단골 코스였는데
6월 중순에 올해 만큼 눈이 많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6월 27일,
오후 4시쯤 산장에
체크인을 하고 나서도 한동안 빛이 있었다.
하지만 멋진 사진이 나올 만큼 좋은 빛은 아니었다.
출사 팀원들에게
촬영 포인트를 알려준 후에도
여전히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서
산장으로 돌아와 배터리를 충전하며
휴식을 취한 후에 오후 8시쯤 다시 밖으로 나왔다.
일몰 시간이
오후 9시 10분 경이었기 때문에
좋은 빛이 나오려면 8시 30분은 지나야 할 것 같았다.
사진을 찍다가
빛이 점점 약해 지길래
일몰 시간이 아직 한참 남아 있는데
이상하다 싶어서 해가 지는 쪽을 바라보니
아뿔사! 해가 짙은 구름 아래로 점점 사라지는 것이었다.
빛이 좋아지려고 하는데
갑자기 해가 사라져 버리자
허망하고 황망한 마음이 밀려왔다.
이 때 시간이 오후 8시 35분 경이었다.
오늘 일몰 사진은
틀렸다 싶어서 산장으로 돌아오던 중
혹시나 하여
뒤를 돌아다 보니
해가 구름을 뚫고 내려오면
해가 산 아래로 떨어지기 전에
어쩌면 빛이 잠깐 나올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봤을 때
해가 내려오면 구름도 함께 내려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라 생각하고
다시 발길을 돌려 십자가가 있는 정상으로 향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허겁지겁 달려갔더니 헉헉 숨이 찼다.
십자가 부근에 도착했더니
해가 일몰 직전에 다시 구름 아래로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산장 쪽의 빛은
죽음을 앞둔 환자의 마지막 호흡처럼
희미한 숨을 내뿜으며 빛이 서서히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만족스러운 빛은 아니었지만
빛이 있는 쪽을 향해 계속해서 셔터를 눌렀다.
하지만
기대했던 빛은 끝내 나오지 않았고
라가주오이에서의 두 번째 일몰도 허망하게 끝났다.
다음날 아침인 6월 28일,
다행히 해가 뜨는 쪽에 구름이 없었다.
이변이 없는 한 좋은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6월 말이었지만
라가주오이의 아침은 쌀쌀했다.
오전 5시 29분
드디어 치베타(3,220m, 오늘쪽 봉우리)와
펠모(3,168m, 가운데 봉우리)에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라가주오이에서 바라보는
일출 빛의 색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황홀하고도 가슴 벅찬 매우 다양한 컬러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아베라우봉에 빛이 비췰 무렵
또 구름에 빛이 가려서 그 장면을 촬영하지 못했다.
이번 라가주오이 촬영은
중요한 순간마다 빛이 사라지곤 했다.
산장 앞에서
촬영하는 사람들은
친퀘 토리에 빛이 들어오는
멋진 장면을 촬영할 수 있었을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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