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쌉소리였습니다.
김주무관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
회사에 친한 동료 둘이 있다. a양과 나는 결혼을 했고 b양은 결혼할 예정이다.
우리 셋이 먹방여행을 1박 2일 간 적이 있다.
일본의 어느 가정집 같은 커피숍에서 빨간 수박주스를 셋이서 사이좋게 나눠 마시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b양이 결혼할 예비 신랑이 말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물었다.
"둘은 남편이랑 대화할 때 리스너예요?
스피커예요?"
a양과 나는 둘 다 '스피커'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리스너라는 b양이 말했다.
나는 리스너인데 상대방이 말을 많이 하는 건 좋은데 많아도 너무 많아요.
리스너는 혼자만의 시간에서 에너지를 얻는데 좀체 그 시간을 안주네요."
"진지하게 물어볼게요. 스피커들이 하는 말 전부 다 의미가 있는 말이에요? 솔직히 답해봐요.
다는 아니겠지만 거의 쌉소리죠?^^"
a양과 나는 잠깐 눈동자가 커졌지만 이내 둘 다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진실로 '스피커'이긴 한데 우리가 생각해도 우리가 내뱉는 말 전부가 다 알짜배기는 아니다.
신랑들에게 두세 시간 흐름 끊기지 않게 얘기를 하는 게 뭐랄까 습관이랄까 오랜 습성이랄까 어느 순간 그렇게 돼버렸다. 스피커들은 말을 하면서 에너지를 얻는다. 그러니깐 리스너들은 들으면서 에너지를 얻는 줄 알았는데 그들에겐 스피커에겐 없는 '한도초과'가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제저녁에도 오늘 아침에도 신랑을 잡고 계속 이야기(쌉소리)를 했다.
90프로는 알맹이가 없다.
나도 안다. 아니 알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프로만 말하고 끝내기엔 늘 마음에 아쉬움이 남는다.
중간에 삼천포(스피커 입장에선 솔직히 삼천포가 아니고 좀 더 넓은 범주로 넘어갔다고 할까)로 갔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등의 행위는 고기 밥상에 반드시 필요한 쌈채소 같은 것이어서 빼기도 그렇다. 심지어 쌈장도 필요하다. 어찌하랴. 뭘 빼야 하나.
하지만 리스너들에겐 그저 경청의 액션이 필요한 쌉소리다. 리스너인 b양의 조언을 깊이 새겨보자.
나의 리스너를 위해 줄여보자.
내 쌉소리들을.
마지막으로 22년간 한 번도 쌉소리라고 말 안 하고 스스로 깨치길 기다려준 나의 리스너의 위대한 여정에 깊은 존경과 감사를 표해본다.
<참고로 '쌉'이 쌉소리에선 부정적 의미로 풀이되지만 '쌉가능', '쌉인정'은 강한 긍정을 의미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