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생각이 났고 회사에 와서도 다른 일을 처리하는 틈틈이 그 생각은 계속 났다. 점심 도시락을 먹을 때도 생각이 났고 퇴근하는 길에도 생각이 났다. 잠이 들면 꿈에서도 보고서를 쓰기 위해 앉아 있는 내가 보였다. 하지만 한 글자도 쓸 수 없어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 정도의 큰 '처분'은 처음이라 생각의 한 걸음을 옮기는 게 쉽지 않았다.
한마디로 사업장에 '벌'을 주는 것인데, 이게 굉장히 애매한 '잘못'이라 도대체 그 '잘못'의 범위를 어디까지 봐야 할지 매 순간 판단이 달라졌다.
팀장님과 선배 주무관님이 조언을 해주셨지만 어느 쪽이든 결정을 내리고 '처분'의 시작과 끝을 온전히 이끌어가야 하는 사람은 나였다. 선배들은 사업장에 가혹한 처분은 최대한 피해야 하지만 9급일수록 법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솔직히 내 마음은 벌을 주기 싫었다. 이 정도의 '잘못'으로 이렇게까지 '처분'을 하기가 미안했다. 하지만 법 조항들을 읽어 내려갈 때 느껴지는 법의 의지는 내가 얼마나 나약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려주었다. 나의 돈이 아니라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된 것이었다. 법은 아주 작은 '잘못'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월요일에 최종 사전 보고서를 작성하고 팀장님 소장님에게 결재를 올렸다. 너무 어려운 숙제였다.
앞으로 해당 사업장의 담당자들이 논의를 한 후 내 처분을 받아들일지 반대의견을 낼지 기다리면 된다.
휴우~~ 그건 그때 다시 생각하자.
수요일엔 교통이 아주 복잡한 도시로 출장을 갔다. 그 출장이 정해진 3주 전부터 걱정이 됐었다. 좌회전 한번 잘못하면 다른 도시로 빠질 수도 있었고 심지어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로 갈 수도 있었다. 고백하자면 난 길치다. 길치 입장에서 애초에 발을 들여서는 안 될 곳이었기에 아주 달달 떨었다.
복잡한 길 뿐만 아니라 주차도 문제였다. 계획했던 그 도시의 공용주차장은 만차였다. 평일이었음에도 말이다. 식은땀이 났다. 네이버의 도움으로 차라리 구청 주차장을 이용하라는 조언을 따랐다. 제때 좌회전을 못해 두 번을 돌다가 겨우 구청 정문에 도착했다. 가 보니 차 한 대가 나오면 한대가 들어가는 분위기였다.
이럴 줄 알았다. 처음 간 도시에서 나는 항상 길 찾기도 주차도 잘 못한다. 알기 때문에 미리 2시간 일찍 출발을 했는데 잘한 선택이었다. 사업장과의 약속시간은 지켰다. 심지어 40분 일찍 도착했다. ㅎㅎ
사업장 점검을 하던 중 회계에 문제가 있었으나 다행히 잘못된 원인을 찾고, 다시 우리의 도시로 갈 준비를 했다. 우리의 도시로 거의 왔을 때 긴장을 놓아서 그런 지 나는 다시 좀 전의 도시로 가는 림프로 빠질 뻔했다.
옆 동료의 순간 "아 샘 안돼!"라는 외침이 없었다면 우린 다시 그 도시의 그 사업장으로 갈 뻔했다.
나는 그래도 차선은 꽤 잘 바꾼다. 양보를 잘해주시는 운전자분들 덕분에 몇 차례의 위기를 극복하고 시간은 걸렸지만 우리의 도시로 돌아올 수 있었다.
목요일엔 운영기관들과 하반기 간담회가 예정돼 있었다. 아침에 회의자료를 보며 준비사항들을 점검했다. 8월에 업무변동으로 운영기관 담당자들과 처음 만났었다. 당시엔 운영기관 담당자들과 협업하는 것이 낯설고 부담스러웠다.
내가 혼자 하는 것이라면 이렇게 저렇게 사업장 조사하고 일을 처리하면 되는데, 운영기관에게 일의 방향을 알려주고 그분들이 1차 조사를 잘할 수 있게끔 지시? 서포트? 그 중간 즘의 역할을 한다는 게 어려웠다.
그럼에도 담당자분들이 내가 요구했던 업무 방향을 정확히 이해하고 처리해주시다 보니 성과가 좋게 나왔다. 다들 20대 중후반이신데 너무나도 센스 있게 일을 하는 것을 보고 나도 옆에서 많이 배웠었다.
협업을 한 결과가 좋아서 서로 기분 좋게 헤어졌다. 선배주무관님과 나, k주무관 이렇게 셋이 다시 회사로 돌아오는데 발걸음이 가벼웠다. 12월이고 이제 크리스마스도 오고 포근하게 올해를 마무리할 생각에 편한 미소가 맴돌았다.
기분 탓인지 겨울인데 태양이여름 햇살 같았다.
회사로 복귀하여 자리에 앉았는데 컴퓨터 하단에 여러 통의 메신저들이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 ' 올해는 메신저들이 난리가 난 듯 달려들었을 때, 늘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난 후였다.
무서움을 누르며 한 개의 메신저를 클릭했다.
"샘, 승진 축하해요"였다. "congratulation", "바늘구멍 승진 축하축하"
"승진, 축하, 약속 잡아야지, " , " 승진해서 정말 축하해요"
그리고 각종 '춤을 열심히 주고 있는 이모티콘'들이 메신저 창에 가득했다.
저쪽에서 k주무관이 달려왔다. "샘 승진! 인사 난 거 봤어요? 샘 승진 축하해요."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p.s.
23.12.7. 고용노동부 하반기 정기승진인사가 발표되었다. 전국에서 9급 직업상담서기보에서 8급 직업상담서기로 승진 발령을 받은 사람은 5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