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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반지 Oct 19. 2024

나의 난시는 우연한 웃음버튼?

고용센터 김주무관 이야기

나는 난시가 심한 편이다.

그럼에도 나는 안경을 쓰지 않았다. 콧등에 생긴 안경자국이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가벼운 테로 만든 안경도 콧등에 빨간 안경자국을 만들었다.


어떻게든 안경을 쓰지 않고 일을 해보려고 했다.

보고서를 작성하는 경우엔 글판을 150% 확장한 후에 글을 작성했었다.

그럼에도 생기는 오타들은 혼자 보고 수정하면 됐었기 때문에 그 실수는 대부분 내 안에서 끝이 났다.


그런데 실업급여업무는 달랐다.

나의 난시의 결과물은 내 안에서 끝나지 않았고 수급자격심사를 받는 민원인에게까지 전달됐다.


그날도 안경을 쓰지 않고 수급자격심사를 하다가

민원인에게 "00 게장에 다니신 거죠? 여기서 정확히 어떤 사유로 나오신 거예요?"

일단 나는 사업장이 음식점이라고 생각했다.


민원인이 당황하며 "네? 게장? 제가 잘못 들었나 봐요. 회사는 00 거장이었어요."라고 하셨다.   

다행히 웃으셨다.


다음은 보완서류 안내할 것이 있어 민원인에게 연락을 했다.

"혹시 00 우유에서 일한 적 있으신가요"

나이가 꽤 있으신 남자분이었는데 " 네? 00유오 회사인데 거긴 무슨 우유예요?"라고 질문을 하셨다.

나는 "우유 아니시구나. 아 넵 그럼 문제없습니다"라고 이상한 마무리를 했다.


또 어떤 민원인에겐 "00갈비텝에서 언제 그만두신 거예요? "라고 했었다.  순간 돼지갈비가 먹고 싶었다.

그분은 "아마도 제가 다닌 회사는 00 갈바텍인 거 같은데 혹시 신고가 잘못 됐나요?" 하시며 조금 놀라셨다.

이번엔 내가 매우 당황했다. "아 갈비 아니고 갈바  죄송합니다."  

민원인분은 괜찮다면서 웃어주셨다.


이 업무는 보고서 작성처럼  다시 수정할 수가 없으니 이런 일들이 연달아 발생하는 것이었다.

하루 이틀 지나자 이러다가 대형사고를 칠 거 같은 불길한 예감이 몰려왔다.


결국 콧등에 빨간 자국이 뭣이라고 내가 민원인에게 이런 황당함을 주고 있단 말인가 깊은 반성을 하고

안경을 썼다.

 


콧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안경을 연신 올렸다. 이것도 내가 안경을 쓰기 싫은 또 다른 이유 중 하나였다.


아무래도 코가 낮아서인지 안경을 쓰면 안경은 계속 미끄러지다가 콧방울까지 내려온다.


안경을 손가락으로 자주 올리면서 안경엔 지문이 묻게 되고 다시 안경을 벗어 닦는 행동을 반복한다.

그리고 집에 갈 때 안경을 벗으면 콧등엔 빨간 자국이 나 있다. 아 싫다.


이런 마음들로 짜증이 올라오려는 순간, 뒤쪽에서 팀장님이 오전에 올린 결재서류들을 돌려주시면서

"00 씨 보고서 잘 쓰시네요. 기업지원팀에서 자주 보고서 쓰셨죠?

기업지원팀의 냄새가 물씬 나더라고요. 보고서 잘 봤습니다. "


안경에 대한 회의감으로 우울했었는데 팀장님의 칭찬이 들려오자 갑자가 심장에서 전기 스파크가 일어났다.


기분 좋은 에너지를 만드는 발전소에 전원이 켜 지는 거 같았다.

'아하, 이런 게 바로 칭찬이라는 건가.'


이 팀에서 이 업무를 하는 동안은 반드시 안경을 써야 한다는 사실이 순간 즐겁게 느껴졌다.


나의 난시마저도 들꽃처럼 예뻐 보였다. 안경이 주는 불편함도 가벼운 깃털 같았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디저트 크림뷔렐레 같은 팀장님의 칭찬은 나의 우울함을 다 녹여버렸다.

자 그럼 다시 안경을 쓰고 올바른 글자들을 읊어봐야겠다. 나의 민원인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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