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늦깎이 공무원의 슬기롭지 못한 공직생활

첫 번째 이야기: 사무실을 들어가는 게 무섭다.

by 은반지

매주 한 개의 글을 올리고자 했으나 도저히 슬기로운 공직생활에 어울리는 글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저번 주 글을 올리지 못했고 이번 주의 중반을 넘어가도 슬기로운 공직생활에 어울리는 상황이란 없었다.




계속 이렇게 글을 올리지 못한다면 내 브런치 활동이 점점 유야무야 될 것 같아서 '왜 글감이 떠오르지 않을까'라고 잠시 깊게 생각을 해보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왜 힘든가?

이유는 간단했다. 일이 많기 때문이다.


아침에 출근과 동시에 원격으로 집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 두 아들들에게 번갈아가며 전화가 오거나 카톡이 쉼 없이 울려댄다. 모두 즉시 내가 답을 해줘야 원격수업이 진행될 수 있다.


사무실 전화도 쉼 없이 울려댄다. 각종 지원금의 필수 서류 문의, 신청자격이 있는지 상담 문의, 서류들이 도착했는지 문의, 신청이 됐는지 확인하는 문의, 팩스번호를 묻는 문의, 각 종 다른 지원금의 담당자들의 전화번호를 묻는 문의, 지원금을 빨리 처리해달라는 문의, 옆 주무관님이 통화 중이라 내게로 넘어온 전화 등등이다.


온라인 신청건수는 매일매일 쌓여가고 주말 내내 일을 했지만 내가 처리한 건수보다 더 많은 신청건수들이 매일 들어왔다. 일을 하고 있지만 일은 더 많아지고 있었다.


지난달 경험해보니 월말 즈음 이틀 정도 잠깐 내가 처리한 건수가 신청건수보다 많은 역전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월초가 시작되면 다시 상황은 역전됐다. 어떻게 손쓸 새도 없이 밀려든다.


끝이 없는 밭을 갈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즐겁게 즐겁게 해보려고 해도 아무리 아무리 열심히 해도 줄어들지 않는 일에 지쳐갔다. 슬기로운 공직생활이란 사라져 버렸다. 남는 건 슬기롭지 못한 공직생활뿐인 듯했다.




지금 힘듦의 강도가 어느 수준인지 가만히 생각해봤다.

고3 때 7시에 일어나자마자 교복만 입고 학교를 가서 공부하고 밤 12시에 자취방으로 돌아오던 날들이 떠올랐다. 첫 아이의 신생아 시기가 떠올랐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아마도 저 둘과 비슷한 강도로 힘든 것 같다.


위의 세 가지 상황은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 매일매일이 전쟁이라는 것.

두 번째, 점점 나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

세 번째, 상황이 벌어진 공간이 싫어진다는 것.

네 번째, 다시는 저 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것,


또 생각을 해본다.

21.2.1일에 발령받고 3개월이 지났다. 그런데 왜 이리 힘이 드는가.


내 성격이 문제인가. 늙어서(?) 그런가.

늦게 시작해서 그런가.


아침에 일찍 도착해도 사무실에 들어가는 게 무섭다.

누가 전쟁터에 빨리 가고 싶겠는가.

최대한 주변을 배회하다가 사무실에 들어간다.


합격의 순간을 사탕처럼 힘든 순간마다 입에 넣어보지만 벌써 단물이 많이 빠져버린 그 사탕은 지금의 나를 위로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냥 힘든 건 힘든 걸로 인정하고 힘들기로 했다.


얼마 전 동기 한 명은 종교의 힘으로 극복했다고 밝게 웃었다. 순간 기댈 종교라도 있는 동기가 부러웠다. 나도 종교가 있긴 하다. 하지만 무늬만 개신교라 나 힘들다고 갑자기 신을 찾아가기가 좀 그랬다.


고3 때는 서울로 꼭 대학을 가겠다는 나의 의지로 버텼고 첫 아이 신생아 시기엔 ebs의 60분 부모와 무한도전을 보면서 견뎠다. 지금은 뭘로 버티고 견딜 수 있을까.

공무원 연금? 생각하면 더 슬퍼진다.


모르겠다.

지치지 않을 것 같았던 석 달 된 신입은 진정 모르겠다.


타 지역 동기가 출근길에 찍은 사진, 내일의 해는 왜 떠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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