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어두운 터널이 나타나면 '나의 사람'들을 찾아간다. 나는 힘들 때 외부에서 에너지를 얻기 때문이다. 늦은 나이에 공무원이 된 40대 동기들에게 sos를 했다. 다들 바쁘지만 동기 한 명이 힘들어서 지옥을 걸어가고 있다고 하니 바로 모였다.
6시 퇴근하고 근처 식당에 가자마자 다들 너무 배가 고파 미역국 세트를 주문했다. 특히, 나의 동기들은 힘이 빠졌다는 동기 한 명을 위해 원기회복에 뭐가 좋을까 한참 고민하다 비싼 전복회무침도 추가로 주문해줬다.
"전복 정말 싱싱하다. 혈액순환이 완전 잘 되는 것 같아. 막 힘이 생기는 것아"
"점심은 뭐 먹었어?"
"난 도시락", "난 분식집 가서 김밥", " 난 구내식당"
"우리 발령받고 셋이 이렇게 밥 먹는 거 처음이지 않아? 그렇지?"
"미역국 진짜 진하다. 양이 너무 많다. 포장해가면 좋겠다. 남기는 게 아까워"
"호박전도 맛있는데 조금 더 달라고 하자"
"근데 고민 있다고 했잖아, 뭐야"
"아아 나? 일이 많아" 그리고 그다음 이어지는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 내 고민이 뭐였더라'
국민취업지원제도 심사 업무를 하고 있는 동기와 실업급여 수급자격 심사 업무를 하고 있는 동기와 그리고 나, 우리 셋 주말 내내 초과근로를 한다. 심지어 나 제외한 나머지 동기는 평일 초과근로도 한다. 저 동기들에게 내 고민이 고민이 될 수 있을까. 그냥 '일이 많다'는 것은 하나의 의미를 가진 문장일 뿐이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느껴졌다.
한 동기는 다시 야근을 위해 서둘러 일어나야만 했다.
"그래도 두 달 넘어가니 물어보는 시간이 줄어서 일의 속도가 많이 붙었어. 이젠 좀 일을 하는 것 같아" 동기가 말했다.
"그래 다음에는 커피까지 마시자고 다음에 봐" 내가 말했다.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정호승의 '첫눈 오는 날 만나자'가 이상하게 급작스럽게 떠올랐다.
20대에는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40대가 되니 사람 간의 정에 대한 이야기로 느껴졌다.
지금의 나에게 '첫눈'은 좋은 날이기도 하고 힘든 날이기도 한다. 그런 날에 만날 동기가 있다는 것이 참 세상 행복했다.
약속해서 밥도 먹고 국도 먹고 전복회 무침도 먹으니 아침 이슬이 해가 나타나면 저절로 사라지듯이 내 푸념들도 증발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