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 상담원이 국가직 공무원을 꿈꾸다.

첫 번째 이야기 - 공무원 공부의 시작, 자격증

by 은반지

이 글은 합격수기입니다.


콜센터에서 8년간 일을 잘하고 있었다. 나름 콜수도 높아서 쥐꼬리만큼 주는 상여금 평가 등급에서 항상 상위등급을 받았다. 회사는 일과 가정의 평화로운 양립을 원했다. 그래서 우리는 4.5시간 교대제로 일을 했다. 어린이집에 눈치를 덜 보긴 했다. 그런데 돈이 적었다. 입사할 때 3살, 5살이었던 아이들은 초등학생이 되고, 친정 엄마가 몸이 안 좋아 돈이 더 필요했다.


슬슬 8시간 일을 하는 일자리를 알아봐야 했다.

4.5시간 일을 하면 나머지 19.5시간은 최소한의 취침과 살림과 육아를 해야 했다. 괜찮은 8시간 일자리들은 시험을 봐야 했고 난 공부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참고로 남편은 지방직 공무원이다. 업무를 꽤 잘 해내는 능력자라서 구청에서 핵심부서에 있다 보니 늘 바빴다. 6시 칼퇴는 거의 없었다.


공부의 시작은 직업상담사 자격증이었다.

왠지 자격증 정도의 공부는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자격증을 좀 우습게 봤던 것 같다.

직업상담사 자격증은 2급과 1급이 있다. 그냥 처음부터 1급을 따면 될 것 같았다. 굳이 2급을 딴 후에 1급을 따야 하나 싶었다. 뭐든 얕보면 안 된다라는 교훈을 이후 얻었다.


어찌어찌 산업인력공단을 세 번을 찾아가고 해서 1급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고 필기시험부터 천천히 공부했다. 급할 게 없었다. 그냥 허전해서 따는 자격증이었다. 밤에 자기 전, 주말 등을 이용해서 인터넷 무료 강의 들을 들었다. 상담학이며 심리학이며 이상하게 다 재미있었다. 필기는 즐겁게 천천히 공부하면서 여유롭게 합격을 했다. 그게 2018년이었다.


2019년 11월 1급 실기 시험이 있기에 또 필기처럼 천천히 해보지 하면서 8월부터 돌입했다.

음 상당히 어려운 시험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장장 3시간 동안 취업박람회 기획안?을 작성하고, 노동시장을 공급과 수요측면에서 분석? 해서 10장 정도 워드로 작성해 제출하고 20여 개의 이론을 A4보다 상당히 사이즈가 큰 B5 크기 시험지 5장 정도에 앞뒤 꽉꽉 채워서 적어내는 것이었다. 앗 이건 꿈이야 이건 아니지 나 그냥 2급 할래 했다.


부리나케 산업인력공단에 전화를 해서 1급 필기 합격자인데 실기는 2급을 보고 싶다고 했다. 젊은 남자가 된다고 했다. 그래서 8월 한 달 2급 실기 책을 사서 열심히 외웠다. 9월에 원서접수를 하려고 하니 2급 실기 접수가 안 되는 것이었다. 공단에 전화를 했다. 조금 나이 든 여자가 안 된다고 했다. 1급 필기 합격자는 1급 실기만 볼 수 있다고 했다. 하 이런.


포기할까 생각했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자격증. 내가 왜 이런 맘고생을 해야 하나, 세상에 이것 말고도 첫째 아들과 성격이 안 맞아 생으로 맘고생을 하고 있는데 이건 아니지 네가 뭔데 너 따위가. 얼굴도 뭐도 없는 게 사람도 아닌 것이 막 악담을 퍼부으며 포기를 선언하려고 했다.


그런데 사람이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봐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1급 실기 시험은 11월이었다. 두 달이 남았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가 아니었던가. 생각해보면 그렇다. 콜센터에서 벗어나고 싶은 나의 마음과 육아로 지친 마음들이 어딘가 풀 데를 찾고 있었던 것 같다. 잔뜩 이 화를 쏟아낼 데가 없어서 씩씩거리고 있었는데 1급 실기라는 놈이 날 데리고 놀고 있는 느낌 같았다. 노리개가 되기 싫었다.


난 좀 똑똑한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해야 할지 감이 왔다. 인터넷 속 다른 합격자들의 후기에 나온 공부 시간보다 더 해야 한다, 60점이 목표가 아니고 100점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래야 겨우 60점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 달간 매일 4시간 정도를 온전히 공부했다. 책 한 권을 외우기로 했다.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시험 당일, 3시간 안에 정말로 나는 10장 정도를 프린트해서 제출했고 20개 정도의 이론을 다 썼다. 정확히 말하면 시간 부족으로 내가 외운 100%를 다 쓰진 못했다. 한 70% 정도만 썼다. 문제를 본 순간 다 아는 문제였다. 시험을 마치고 나오는데 오른쪽 엄지손가락이 저려왔다.


밤새 잠을 못 이뤘다. 시험에 나오지 않았던 나머지 이론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한 달 후 94점으로 합격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더 하고 싶다. 더 공부를 하고 싶다. 뭐라도 더 시험을 치르고 싶다.

그래서 공무원 시험 공부를 하기로 했다. 40 나이에 공무원을 해보겠다는 욕심(?)보다는 걍 이 공부는 오래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내 공부에 대한 목마름을 채워줄 것 같았다. 허전함에 시작했던 자격증 공부는 매년 수만명이 도전한다는 공무원 시험 공부까지 얼떨결에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상담사 000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이 말을 그만 하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됐다. 2019년 12월 나의 공무원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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