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 공무원이 국가직 공무원을 꿈꾸다

두 번째 이야기- 그렇게 시작된 공무원 시험공부

by 은반지

자격증 시험을 본다는 명분으로 3개월 육아휴직을 내놓은 상태였다. 2019년 11월에 들어간 휴직은 2020년 1월에 끝나는 것이었다. 공부를 시작한 19년 12월 그때만 해도 20년 국가직 시험은 4월에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넉넉히 6월까지 육아휴직을 연장했다.


남편에게도 말했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공부 그 자체가 좋아서 공부라는 것을 하면서 몇 개월 스트레스를 풀고 싶다고 했다. 물론 누구나 그렇겠지만(ㅎㅎ) 남편은 이해를 못했다. 그 많은 것 중에 왜 굳이 공부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는지를 말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내가 이상하지만 난 그냥 그게 좋았다. 설명해서 설득할 능력까지는 없었다.


아이들이 방학이라 아침밥을 차려주고 아파트 내 도서관 가서 공부를 하고 점심밥을 차려주고 다시 지하 주차장을 통해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고 저녁밥을 차려주고 다시 지하주차장을 통해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했다. 아파트 도서관은 11시에 문을 닫았다. 오랜만에 하는 공부라 내가 하고 싶은 것부터 했다. 그건 한국사였다. 난 원래 역사를 좋아했다. 그런데 최근에 큰 아이가 일제강점기를 물어보는데 90프로의 내용이 기억이 안 났다. 심지어 조선시대도 가물가물했다. 큰 아이와 대화를 하려면 정말 역사공부는 필수였다.


또 초등학생을 키우고 있는 엄마라면 공감할 내용인데 국어의 띄어쓰기와 맞춤법을 다시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 공부를 좀 봐줄 수가 있다. 이렇게 역사와 국어공부는 공무원 시험을 위한 공부라기보다는 초등학생 큰 아이에게 무시(?)를 당하기 싫어서 하루빨리 마스터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런지 천천히 해보자 했던 공부에 대한 마음은 없어지고 마음속에 한아름 욕심이 들어앉기 시작했다.


결과는 내가 내 욕심에 나를 잡아먹고 있었다.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했다. 아이들 밥 차려주는 시간이 아까웠고 자는 시간이 아까웠고 나의 많은 아침잠이 원망스러웠고 '나'라는 인간 자체가 짜증스러웠다. 내 스스로 채찍질을 해댔다. 3월 즈음 공부하고 있는데 허리에서 뚝 하는 소리가 나더니 심하게 담이 왔다.


허리의 중요함,,,,, 모두가 얘기하던 그것을 난 그때서야 뼈저리게 느꼈다. 걸을 수도 없었고 누울 수도 앉을 수도 없었다. 모든 중력은 고통이었다. 그래도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도서관을 걸어갔다. 약국에서 산 근육통 약을 먹고 이겨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을까 싶은데 그냥 딴 선택지가 없었다.

하던 거 계속하는 거 외에는.


3월에 집안에 심각한 일이 발생했다. 시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수술을 하셨다. 내가 간병을 한 건 아니지만 주말마다 병원을 찾아가고 평일에도 엄마를 보러 병원에 가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뭔가 며느리가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 상황에 맞지 않는 일 같았다. 그즈음 국가직 공무원 시험은 7월로 미뤄졌다.


코로나로 학교를 가지 못한 아이들과 수술과 재활을 하고 계시는 어머님과 아니라고는 하지만 우울해 보이는 남편을 보면서 내 공부는 자격증 공부까지 였던가 라는 회의감이 몰려왔다. 어차피 공무원이 되고 싶어서 하던 공부도 아니었으니까 멈춰도 된다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4개월 정도 되는 공무원 공부와 이별을 했다.

내가 좋다고 마음도 안 연 애인을 억지로 4개월 만나다가 헤어진 느낌이었다.

좋았지만 좋았지만 너와의 인연은 여기까지 안녕

keyword
작가의 이전글콜센터 상담원이 국가직 공무원을 꿈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