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에 버려둔 말들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 레 에끌레르 등대 앞에서

by 후안

세상의 끝을 경고하는 등대가 눈앞에 가까워 올 때 나는,

오늘 단 하루만은 땅거죽이 평평하기를 욕망하였다.

물결은 잔잔하였고 이제 몇 발만 더 나가면

그 끝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나는 가슴이 부풀었다.

그러자 눈앞이 흐려지며 어지러움이 몰려왔다.


현기증은,

중력의 중심으로 한없이 떨어져 내리고픈,

생명의 기원으로 회귀를 꿈꾸는 오래된 욕망.

그래, 세상의 끝이 정말 저 너머에 있다면,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조바심에 휘청였다.


지구 반대편의 이 낡은 등대를 그토록 그리워했던 것은,

이곳에 날 기다리고 있을 분명한 종말에의 희망이었다.

이대로 멈추지 않고 달려 모든 것을 끝장낼 수 있다면.

그리하여 이 유약한 육신과 그 생육에 빌붙는 성가신 문제들까지 모두,

한낱 허망한 태초의 가루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면.


그러니 배를 멈추지 마라.

저 등대를 지나쳐 계속 밀고 나아가라.


그 위태로운 벼랑 끝에서 균형을 잃을 찰나

작은 온기 하나가 나의 등을 떠미는 바닷바람을 막아선다.

그 따스함에 인력의 방향이 순식간에 뒤바뀌고

기울어진 나의 마음은 다시금 제자리를 찾아 휘청 되돌아온다.

나의 위험한 욕망을 눈치챈 아내가 나를 뒤에서 꼭 끌어안은 것이다.

허리에 둘러진 그 가녀린 구명대가 나를 번쩍 건져 올리고,

나는 수면 위로 솟아올라 가쁘게 들숨을 찾는다.

생활의 체온이 그렇게 몸에서 몸을 타고 다시 내게 되돌아왔다.


그러자 비로소 다시 지구 바닥 반대편의 질감이 느껴진다.

지금도 나와 발바닥을 맞대고 곤두선 채,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 수많은 문제와 문제들이 속절없이 머릿속으로 침수된다.

나는 세이렌의 화음에 망연히 홀려 끌려가던 것이 아니었다.

둥근 지구를 관통해 울려오는 삶의 비명에 떠밀리고 있었다.

그리고 현기증이 걷히고 모든 것이 선명해지자 나에게는

그것들을 다시 마주할 작은 용기가 찾아왔다.


이제 배는 한 바닥짜리 위대한 선언문 말미에 적힌 서명처럼

날렵하게 뱃머리를 꺾어 등대섬을 선회한다.

나는 미련하며, 등대를 다시 보기 위해 뒤로 돌아서야 했다.

그곳에, 아내가 작게 서 있었다.

세상 끝 등대와 나의 사이를 가로막은 채.


마침내.

나는 물속에서 건져 올린 짧은 문장 하나가 떠올랐으며

한 글자 퇴고도 없이 선뜻 말할 수 있었다.

"이제 집에 가자."


세상의 끝에서 추방되어 다시 멀어지기 시작할 때

나는 차마 뱉지 못한 말들을 그곳에 유언하였다.

그리고 검은 물에 젖은 그 문장들이

서서히 형체를 바꾸어 좁은 뭍으로 기어오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이곳에 후회와 앙심을 유기한 자가 어디 나 하나뿐이었을까.

세상 곳곳에서 몰려들어 만국의 언어로 한두 마디씩 버리고 간 그 슬픈 말들은

물고기도 사자도 되지 못한 채 두 다리를 잃은 기괴한 몸뚱이의 땅짐승이거나

큰 날개도 긴 다리도 갖지 못해 차마 날지 못하는 새가 되어

유령처럼 그곳에 영원토록 유배된다.

그리고 그것들은 꺼억꺼억 구슬피 울음소리를 내며

나의 회귀를 막으려 버둥버둥 몸부림친다.


하지만, 잘 있거라. 나는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지구의 반원을 되돌아, 그 치욕과 모멸의 땅으로.

그 끝없는 문제와 문제들을 다시 꼭 끌어안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