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시간(끝)

by 조정환Juancho


마지막 수업은 월요일이었고, 검정고시는 토요일이었다.


성대한 기념 파티가 있다면 좋았겠지만 그런 건 없었다.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해 볼 수나 있었겠냐는 듯 센터는 조용했다. 주말이 끝나고 평일이 찾아왔다. 수업이 없는 월요일. 나는 오랜만에 푹 잤다. 침대에 누워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지켜봤다. 그때까지 일어나지 않았던 이유는, 굳이 일어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배가 고파지자 몸이 일으켜졌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며 나는 생각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군.


아주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첫 수업 때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는 여러분들께 계속 존댓말을 쓰고 싶어요. 저희가 수업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사실은 완전 남남이죠. 저기 앞 세븐일레븐에서 음료수 고르다가 어깨를 부딪힐 수도 있어요. 그럼 서로 얘기하겠죠, 죄송합니다. 학교 밖에서 여러분을 보는 것처럼, 그렇게 대하고 싶습니다.” 다행히 학생들은 서운해하지 않고 이해해줬다. 그 덕에 난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마주칠 수도 있는 어린 친구들을 꽤나 많이 알게 되었다. 물론 아직 한 번도 마주친 적은 없지만.


조금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겨우내 동네 도서관을 뒷산 오르듯 다녔다. 이것저것 읽고 생각나는 것을 썼다. 봄부터는 이화여대를 들락거렸다. 많이 듣고 그만큼 말했다. 영상을 만들었으며, 지금은 조금 더 신경 써서 콘텐츠를 보려고 노력한다. 아참, 졸업도 했다.


하지만 나의 2019년을 쫙 펼쳐 두고 둘 중에 무엇에 더 가깝냐고 묻는다면 아마 다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를 택할 것이다. 올해 지원한 방송국 공채가 2개 있었다. 힘도 못 써보고 떨어졌다. 탈락의 원인도 모른다. 그저 맞지 않았거나 실력이 부족했다고 짐작할 뿐이다. 나는 한 발도 내딛지 못했다.


그러니까 5개월은 고통의 시간이었다. 하고 싶은 걸 못하고 사는 고통. 내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고통. 노동을 못하는 고통. 돈을 제대로 못 버는 고통. 마지막 화인데 이렇게 힘 빠지는 결말이라니. ‘학교 밖 선생님’ 연재를 재밌게 보시는 분들께 미안한 마음이다. 하지만 진짜 그런 걸 어떡해.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어쨌든 돌아보니 그렇다. 나는 감정을 밖으로 잘 드러내는 스타일도 아니고, 드러낼 줄도 모른다. 냉장고에서 찬 물을 꺼내 마시며, 찬찬히 돌아보니 그렇다. 여전히 고통 속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한탄을 하려고 시작한 게 아니다. 어찌됐건 살아지고 결국엔 다 사라진다고 빈지노가 그랬다. 갓지노... (출처: 벅스)


그럼에도 시간은 흐른다. 내가 이런 고통을 지나는 동안에도 나를 신경 쓰지 않고 간다. 어찌됐건 살아지고 결국엔 다 사라진다. 그러니 내가 발견한 나의 고통은 어떤 순간이 지나간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바람이 나무를 지나 저 언덕을 지나가는 것처럼.


‘학교 밖 선생님’은 그 언덕에서 만난 위안거리였다. 문득 발견한 즐거움이었다. 내 그림자가 어떻게 생겼나 알려주는 해 같기도 하고. 그래서 좋았다. 열심히 했다. 부끄럽지만 사명감이라든가 가르치는 보람 같은 건 생각해 본 적 없다. 입에 담기 민망하다.


이야기는 우연히 시작됐다. 청소년센터 직원분께서 채용공고를 올리지 않았다면, 내가 알바천국을 들어가지 않았다면, 경력이 있는 사람이 지원했더라면, 센터장님이 나를 마음에 들어하시지 않았다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거다. 그래서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은 이런 것이다. 바람이 나무를 지나 저 언덕을 지나가는 것과 같다. 이야기는 끝나버렸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아무런 원망도 없다. 슬프지도 않다.


나는 살아갈 것이다. 자소서를 쓰고 작문을 쓸 거다. 생각을 다듬고 말을 준비할 거다. 프로그램을 짜 보고 콘텐츠를 낼 거다. 피디가 돼도 별 차이는 없을 것이다. 내 앞에 무엇이 놓여 있느냐가 조금 다를 뿐이겠지. 시간은 바람이 나무를 지나 저 언덕을 지나가는 것처럼 흐를 거니까.




여기까지가 ‘학교 밖 선생님’의 이야기입니다. 허무한가요? 어쩔 수 없습니다. 저는 담담한 마무리가 좋더라고요. 그래도 마지막이니까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저를 ‘학교 밖 선생님’으로 만들어 주신 모든 분들, 이걸 보실지는 모르겠지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노잼 내용과 부족한 글솜씨에도 불구하고 애정을 가지고,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마지막 배경음악 소개하며 마치겠습니다. 안녕~!


14화 BGM) 김창완밴드 – 시간 (feat. 고상지) https://www.youtube.com/watch?v=oZbjZPeeQo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