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거 아닌 톡이었는데 묘하게 마음이 쓰였다. 뭐랄까, 느낌이란 게 있지 않은가. 좋은 쪽의 얘기는 아닌 것 같았고 혹시라도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괜찮다니까 뭐, 그대로 퇴근했다.
그리고 30분 후 톡방을 통해
우리 팀 피디 2명이 다른 팀으로 이동하기로 했고 이 둘은 주말부터 안 나올 거라는 소식을 전해받았다.
같은 부서 다른 프로그램 제작 팀에 사람이 빠지게 되어 우리 인원이 채워야 한다고.본사 연출팀 피디 5명 모두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 다다음날부터 둘은 사무실에 나오지 않았다.
갑자기 분위기 팀 해체...!
거의 2주간 혼자 편집실을 썼다.
남아있는 선배들은 종편실로 출퇴근.
프리랜서 피디분들도 본인 몫을 끝내자 출근하지 않았고,
같은 팀이던 제작사 피디분들은 다른 프로그램에 투입되어 오지 않았다.
시사하는 날이면 그 좁은 곳에 20명 정도가 들어와 왁자지껄하게 토론하기도 했는데, 나 혼자 있자니 들리는 게 컴퓨터 윙윙거리는 소리뿐이었다. 심심하고 허했다. 이렇게 끝이 난다고?
'축하받는(?) 마무리'가 어렵겠다는 생각은 했었다. 프로그램 성적이 좋지 않았으니까. 우리가 회사로부터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갑자기 팀이 해체될 줄은 몰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정말 멍청한 결정 같아,
혼자 밥을 먹으며 생각했다. 이런 갑작스러운 팀 해체와 이동이 대체 누구에게 도움이 된단 말인가.
방송을 만드는 데에 팀워크가 얼마나 중요한데.
몇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아쉽다. 그때의 갑작스러운 해체는 정말 별로였다.
방송 일엔 매뉴얼이 없다. 큰 틀만 있을 뿐. 구체적인 과정은 각 담당자의 자율로 진행된다. 편집이든 촬영이든 뭐든 개개인의 역량과 스타일이 결과물에 적용된다. 고.스.란.히. 그런 일을 하는 곳이니 업무 인수인계도 도제식으로 진행된다.
그 말인즉슨 한 명 한 명의 개성이 중요하다는 말이고, 따지고 보면 피디에겐 '자율성'보다 큰 동기부여 요소는 별로 없다. 그런데 팀 해체에다 강제 이동이라니. 형식적인 면담도, 별다른 고지도 없이. 다른 업계에서는 흔할 수도 있지만, 과연 어느 피디가 이런 상황에서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겠는가?
물론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인사이동이라는 게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그 안에 어른의 사정도 있었을 테니. (앞에서 한 나의 토로도, 제삼자가 보면 그저 감정 과잉으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결정은, 사실 제작팀 입장에서는 일의 효율성 면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 거 같다.프로그램 제작 일을 해보며 알게 됐다. 팀워크는 실존한다.
새롭게 꾸려진 팀이 새 프로그램을 들어간다고 쳐 보자. 현장 커뮤니케이션, 스케줄 관리, 업무 분배 등... A부터 Z까지, 기획 단계서부터 전체 워크 플로우를 짜야한다. 그것뿐이면 다행이겠지만, 방송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 관계도 쌓아야 한다. 출연진과 제작진과의 합의, 제작진 간의 신뢰, 출연진끼리의 케미. 결국 시간과 공력이 필요한 일이다. 한 회차가 완성되기까지 시행착오가 속출할 것이다.
그런데 한번 같이 해본 사람들과 함께라면? A는 뭐를 더 잘하고, B에겐 이게 부족하고, C의 입장에선 어떻게 말해야 더 효율 좋은지... 각자가 이미 안다. 모든 분야에서 기회비용을 아낄 수 있는 것이다. 낭비하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오롯이 퀄리티 올리는 데에, 혹은 콘텐츠가 성공하는 데에 집중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건 없지 않을까.
생각해보자. 나영석 사단이니 김태호 사단이니 하는 제작 팀은 왜 생겨났으며 왜 프로그램이 바뀌어도 함께 일하고 있는지를. 팀워크 때문이다. 사실은 당연한 얘기다.
어쨌든. 이러나저러나 시간은 흘렀고 우리 팀은 조용히 흩어졌다. 마지막 2주에 난 선유도 역을 배회하며 혼밥했다. 불쑥불쑥 회의가 찾아왔고 조금 외로웠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이전에 난 '시뮬레이션 다큐 장르를 파볼 거고 이 분야의 마스터피스를 남기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런 목표를 달성하는 게 꽤나... 어렵겠다고 느꼈다. 고민하다 난 피디로서의목표를 수정했다.
'마음 맞는 동료를 찾고 그들과 공고한 팀을 꾸리기. 그리고 그게 가능한 환경에 서 있기'로
6화 마니산 편. 마지막 화니까 당연히 다음 이야기는 없다.
대신 CP님과 메인 선배님은 에필로그 영상을 만드는 걸 권했다.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프로그램의 시작과 끝을 어쨌든 내가 맡게 되었구나. 시원섭섭.
마지막 촬영의 슬레이트, 그리고 제작진 사진을 가지고 트리뷰트 영상을 만들었다.배경음악으로는 그즈음 우연히 알게 된 노래 <언젠가 너와 나 - 윤지영(feat.카더가든)> 을 깔았다. 가사와 멜로디가 마치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무도 없는 편집실에서 꽤나 오래 컴퓨터 앞을 벗어나지 못하고 마지막 1분을 붙였다. 동료 제작진 분들께, 그리고 이 프로그램을 봐주신 이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인사라고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