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날
스물다섯, 아무 노력 없이 주어진 젊은 날이 부끄러워 떠밀리는 듯 사찰로 들어가 열두 달을 보냈습니다. 핸드폰도 PC도 없던 그곳에서의 시간은 무섭도록 빨랐고, 같은 해의 두 번의 명절이 한 번씩 지나갔습니다. 일 년 후 여전히 저는 작고 볼 것 없었지만, 앞날에 대한 어설픈 믿음을 가진 채 떠났던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어렴풋했던 깨달음은 현실과 맞물려 점차 선명해져 갔습니다. 그 깨달음을 본 글에 담아봅니다.
1.
하루에 정말 열두 번도 넘게 다 때려치우고 뛰쳐나가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만, 다신 오지 않을 이 기간을 놓쳐버리고 난 뒤 두고두고 밀려올 아쉬움을 견딜 자신이 없었습니다. 이곳에 들어온 목적은, 이곳에 있어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여기서 저는 '이름 세 글자'가 아니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별것도 아닌 제 이름에 얽매이고 걱정하던 그 모든 것들이 이곳에선 그저 ‘나’란 사람으로만 남아 그동안 행여 빼앗길 새라 껴안고 있던 껍데기들이 얼마나 불필요한 것이었는지를 그저 헛웃음 짓게 합니다. 이름 없이도 내 존재에 대해 확신을 가지며 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전 이제 맨손으로 흙을 솎아주고 도닥여줄 때면 손톱 밑이 새까매질 수도 있다는 걸 압니다. 계절을 따라 그대로 익어가는 나락들이 얼마나 순수한 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안개 낀 서울에선 볼 수 없던 수놓아진 별자리들이 얼마나 따뜻하게 밤하늘을 품고 있는지도 압니다.
새삼 나무의 그 초록색이 얼마나 푸르른 색 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여기의 그 모든 것은 제가 살고 자라온 도시의 그 모든 것과 같습니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은 이곳의 모든 것들에는 초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디 존재할 적부터 지니고 있었던 맑고 깨끗한 순수함이 그 어떤 목적도 욕심도 없이 제 빛 그대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초심을 기억할 새도 없이 세상의 복잡함과 조급함에 떠밀려온 마음을 위로받습니다. 그리고 그런 제 모습을 조용히 내려다봅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어떤 것들을 남겨두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 나에게 어울리는 삶인지.
밤이 깊어 갑니다. 흙벽 한 겹을 사이에 두고 내리고 있는 밤 비가 그대로 손끝을 촉촉이 적실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