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피득교수님은 한국어과 교수님이십니다.
증조모가 일제강점기 조선의 독립을 위해 수고하신 독립운동가 후손입니다.
대만에서 유학하셔서 중국어가 유창할 뿐 아니라 중국의 정치, 문화, 경제에 능통한 중국통이십니다.
초기에는 과기대의 외사처에서 학내 외 행정을 담당하셨습니다.
과기대 초기, 학교의 설립과 행정 기초를 세우는 일을 하니 교육, 건축 관련 간부들을 만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이런 만남의 자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중국의 술 문화입니다. 술자리에서 모든 일이 해결됩니다.
이 술 문화를 모르는 사람은 '왜 술자리를 만들고 술을 마시냐'라고 말하며 술자리를 피하기도하고
어쩔 수없는 술자리에서는 주는 술을 거부하는 용기와 믿음도 대단하지만 중국통인 김피득교수님은 중국의 술 문화를 너무나 잘 알기에 무작정 거부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하니 김교수님은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이 일은 교수님도 괴롭고 힘들었지만 사모님도 매일 가슴 졸이며 남편을 기다렸습니다.
술을 마시고 집에 오는 남편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인이, 아니 대대로 기독교집안의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 후손이 술을 마시니 누가 볼까 부끄럽고 창피했습니다. 더구나 선교사가 말입니다.
중국의 술 문화는 한국인들처럼 과음하여 비틀거리는 수준으로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술을 음식으로 생각하는 중국인은 접대와 좋은 인간관계를 위하여 술을 권합니다.
특히 비즈니스에서는 중국의 전통적인 문화로 인해 관행적으로 술을 마시고 일 이야기를 합니다.
베이징대 리칭예 교수는 “서로 건배를 하며 술잔을 비우는 것은 중국인들의 전통적인 의사소통 방식이자 문화”라고 말합니다.
이런 술문화를 잘 알고 있는 김피득교수님은 만나는 관계자들과 술을 마시며 학교 일들을 처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초창기 과기대는 많은 분들이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이름 없는 수고와 헌신으로 설립되었습니다.
김피득교수님과 같이 누군가는 했어야 하는 술상무직을 다른 사람의 눈총을 받으며 술상무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선교사가 잘 못 마시는 술을 마셔가며 과기대 설립을 위해 수고하신 김피득교수님, 존경합니다!
술상무 남편을 이해하고 기다려 준 사모님, 사랑합니다!
이렇게 과기대는 많은 분들의 수고와 희생으로 설립되었고 기라성 같은 헌신된 졸업생들을 배출하고 명문대로 발전해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