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아 바로 보기

실패도 주님이 하신일

by 헬렌


창세기 29:16-18 KRV

라반이 두 딸이 있으니 형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레아는 안력이 부족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야곱이 라헬을 연애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봉사하리이다


창세기 29:25 KRV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께 봉사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찜이니이까



야곱은 라헬을 원했는데 아침에 눈을 떠보니 레아가 아닌가?

얼마나 황당했을까? 얼마나 분했을까? 얼마나 좌절됐을까?


야곱은 라헬을 좋아하고 라헬을 원했다.

당연하지 아니한가?

곱고 아리따운 여인을 좋아하는 게, 그 여인을 구한 것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우리도 눈에 보기 좋은 라헬을 구한다.

곱고 아리따운 라헬을 좋아한다.

누구나 성공을 구하고 건강을 구하고 행복을 구한다.

그러나 우리 손에 쥐어지는 것은 레아이다.

야곱이 억울해하고 외삼촌 라반을 향해 분노했던 것처럼 우리도 라헬을 구했건만 이 레아 때문에 좌절하고 실망하고 분노한다.

다시 라헬을 얻기 위해, 라헬이 내 손에 들어올 때까지 노력하고 포기하지 않는다.


야곱은 왜 이리도 험난한 인생을 살았을까?

야곱에게 사랑받지 못한 여인, 레아는 누구인가?


레아는 유다를 잉태한 여인이다.

메시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족보의 반열에 서게 되는 여인이다.

하나님이 세우신 여인이다.

야곱은 이런 여인을 못 알아본 것이다. 도저히 알아볼 수없었다. 외모는, 눈에 보이는 것은 볼품없었으니까...

눈에 보이는 곱고 아리따운 여인만을 구하고 평생 그 여인만을 사랑하며 살았다.

죽을 때가 돼서야 알았을 라나?


조상의 묘소에 야곱과 함께 장사된 여인은 라헬이 아니라 레아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평생 라헬만을 사랑했는데 왜 라헬이 아니고 레아인가?

하나님이 정하신 여인은 라헬이 아니라 레아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만을 좇고 있지는 않는가?

곱고 아리따운 것을 가지려고 애쓰고 있지 않은가?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야곱은 이 아침에 좌절하고 분노에 차 있었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셨다.

레아를 통해 엄청난 일을 하셨다.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이루셨다.

라헬이 아닌 레아를 통해 메시아 예수님을 이 땅에 오게 하셨다.


내 인생은 언제나 풀리려나..

내 삶은 언제까지 찌질할 건가..

나의 실패, 상처, 좌절,...

내 손에 쥐어진 것은 아리따운 라헬이 아닌 볼품없는 레아이지만 이 레아가 하나님의 작정하심, 그분의 뜻일진대

이 레아를 통해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이루시는데

무엇이 걱정인가?

무엇이 고통인가?

이게 왜 실패인가?

이게 왜 상처인가?


내가 눈에 보이는 성공을 구했기에 나의 실패와 상처와 아픔이 고통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실패가 실패가 아닌 하나님이 하신 일,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고 계신 하나님의 섭리임을 안다.


이제 이 실패의 시간에 주님과 함께 하니, 아니 단지 곱고 아리땁지 않은 레아일 뿐이니,

주님이 엄청난 일을 레아를 통해 하셨던 것처럼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주님이 지금 엄청난 일을 하고 계시니 형통할 뿐 아니라 이제는 평탄한 길을 갈 수 있을 것 같다.

할렐루야!


창세기 49:29-31 KRV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내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부여조와 함께 장사하라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 소유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곳에 장사하였노라


창세기 35:19-20 KRV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




레아 바로 보기 에필로그


저는 형통한 삶을 위해 참 많이 기도했던 것 같습니다.

저를 위한 기도뿐 아니라 남편을 위해 아이들을 위해 주위사람들을 위해...

그래서 그들의 성공과 행복과 건강을 위해 참 많이도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성공과 행복만이 형통한 삶이 아니란 걸 알았습니다.


형통한 삶이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의도한 삶을 사는 것이 형통한 삶입니다.

그러고 나니까

그렇게 힘들고 아팠던 나의 삶이 주님이 의도하신 삶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제 삶이 주님이 함께하신 형통한 삶이란 걸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하나님의 뜻하신 사건들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제 삶은 평탄하지는 않다고 여겼습니다.

하나님이 형통한 삶은 살게 하셨지만 평탄한 삶은 살게 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레아의 삶가운데 계셨던 하나님을 보면서 레아가 이 하나님을 알았더라면...

자신의 태에서 메시아가 탄생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아니 몰랐더라도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알았더라면

그렇게 남편의 사랑만을 갈구하며 살지는 않았을 텐데...

그렇게 동생을 질투하며 살지는 않았을 텐데...

눈에 보이는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세상, 하나님의 나라를 보며 살 수 있었을 텐데...

그러면 얼마나 많이 그녀의 인생은 평안했을까.

나의 삶이 비록 성공과 풍요로움이 있는 눈으로 보기에 아리따운 라헬은 아닐지라도

주님이 함께한 삶, 주님과 함께 걷은 인생은 얼마나 평안할까.

이것이 평탄한 인생이 아닌가!


이제는 알았습니다.

내 인생에 행복과 성공뿐 아니라 불행과 실패가 온다 해도 하나님이 작정한 하나님이 뜻하신 인생은 형통한 인생이요,

하나님과 함께하는 인생은 평탄한 인생임을...

이제는 평탄한 삶도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할렐루야!


여호수아 1:8 KRV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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