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의료 체계에 대한 오해와 진실
얼마 전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 활약하던 손흥민 선수가 부상을 당하자 수술과 치료를 위해 한국으로 귀국했었습니다. 사람들은 '영국이라는 선진국에서 왜 한국으로 치료받으러 돌아왔을까?'라며 의아해했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캐나다에 살면서 가장 아쉬운 부분 중에 하나가 바로 빠르고 정확한 한국의 의료 서비스였기에 손흥민 선수에게도 선택 가능한 선택지 중에 하나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전에 같은 부위의 부상을 수술했던 병원이고, 한국에선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 수준의 병원이었으며, 당연히 수술 후에 가족이 있는 한국에서 안정을 취하는 것이 심리적으로도 이점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인기 유튜버가 올린 동영상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는데, 그는 개인적인 시각이란 전제하에 영국 유학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몇 가지 이유를 제시했습니다. 그의 주장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영국의 의료 체계는 무상 의료 서비스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영국의 의료 서비스는 대기 시간이 길고, 의료 수준 또한 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손흥민 선수로서는 한국에서 빠르고 질 좋은 수준의 서비스를 받기 위해 한국을 찾았을 것이란 내용이었습니다.
아울러 영국에도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가 존재하긴 하지만 이러한 서비스는 돈이 많은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라고 밝히고 있었습니다. 물론 영국 의료 시스템에 대한 단편적인 경험이나 지인의 불평을 일반화하는 수준의 의견이었지만 그래도 오해의 소지는 있겠다 정도로 반응하고 넘어갔었습니다.
그러던 중 최근 코로나 사태에 대해서도 영국의 무상 의료 제도가 전염병 대응의 문제인 것처럼 보도하는 국내 언론 기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캐나다에서 살고 있는 저는 영국의 의료 시스템에 대해 아는 바나 경험한 바가 없습니다. 다만 캐나다 역시 무상 의료 서비스를 근간으로 하는 사회이다 보니 그 주장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또 실제로 캐나다에서도 앞에 언급한 유튜버의 주장과 같이 '너무 오래 기다린다' 거나 '의료 수준이 떨어진다'라는 불평과 불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다시 한번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져보게 되었습니다.
돈 없어서 병원 못 가는 사람 없는 나라 캐나다
캐나다에는 돈 없어서 대학 못 가는 사람 없고, 돈 없어서 병원 못 가는 사람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캐나다에서는 별도의 의료 보험을 가입하거나 의료 보험비를 납입할 필요 없이 세금만 내고 있으면 국적에 상관없이 누구나 무상으로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입원했던 환자도 처방전 한 장 들고 나오는 걸로 모든 퇴원 절차가 마무리됩니다. 그러다 보니 병원을 방문하면 팀 홀튼 커피숍은 있어도 수납창구는 없습니다.
저도 외상에 따른 외과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수천만 원에 이를 법한 수술 비용을 한 푼도 내지 않고 퇴원했었습니다. 만약 그때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면 저희 가족은 재정상 재기 불능 상태로 빠졌을지도 모릅니다. 캐나다에서는 적어도 미국과는 달리 보험이 없다고 병원 치료를 받지 못해 멀쩡한 10대가 죽거나 혹은 바이러스 검사에 3400만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비용이 청구되는 일은 없습니다.
대다수의 캐내디언은 이러한 자국의 의료 시스템에 대해 (세금에 따른) 재정적 부담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반면에 이용하기 까다로운 것도 사실입니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지만, 누구나 마구 이용할 수는 없도록 하는 현실적 한계와 의도적인 장치가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적지 않은 한국 사람들은 무상 의료 체계를 정점으로 하는 공공 의료 시스템의 확대 및 강화를 통해 국민의 질병을 무료 혹은 적은 비용으로 국가가 치료해 주는 방식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알고 보면 그 배경에는 예의 그 유튜버가 주장한 두 가지 이슈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이나 불평이 무상 의료 서비스를 비롯한 공공 의료 체계에 대한 고착화된 인식이자 비판의 도구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나아가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빠르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공공 의료보다는 영리 의료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의 의료 민영화 추진의 논리적 준거가 되기도 했습니다.
정권이 바뀌면서 의료 민영화와 공공 의료에 대한 이 같은 인식은 재정 부담이라는 이유로 경남의료원이 폐쇄되는 등 특정 정당 소속의 지자체장 중심으로 공공 의료 시설에 대한 축소, 폐쇄라는 형태로 추진되었습니다. 즉 영리 병원 설립에 대한 법적 기준 완화와 함께 공공 의료 시설에 대한 축소, 폐쇄는 한 가지에서 난 다른 얼굴인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공공 의료, 그중에서도 특히 무상 의료 체계에서는 절대적인 의료 수준이 낮아지고, 오랜 대기 시간의 원인이 되는 것일까요?
무상 의료 시스템이 의료 수준을 떨어뜨리는가?
뉴스위크지에서 매년 발표하는 세계 병원 순위(The world's best hospital)를 보면 2020년도 전 세계 병원 중 4위에 토론토 종합 병원(Toronto General Hospital-University Health Network)이 랭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24위에 서니브룩(Sunnybrook Health Science Centre), 29에 마운트 시나이 병원(Mount Sinai Hospital)이 있습니다. 손흥민 선수가 수술과 치료를 받은 아산병원은 37위에 있습니다. 영국 런던에 위치한 성 토마스 병원(St. Thomas' Hospital)은 33위입니다.
이 조사에서 참고할 수 있듯이 역시 영리 병원인 미국의 병원들이 상당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공공 의료 기반의 의료복지를 추구하는 국가의 병원들도 포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무상 의료 시스템이 의료 수준의 저하 원인이라고 단적으로 주장할 수 없는 근거입니다.
캐나다에서는 실력 있는 의사들이 미국으로 돈에 팔려가기 때문에 의료 수준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의사의 수준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의사의 자질을 돈이나 실력으로만 평가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요? 우리는 의사들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알고 있습니다. 지난해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의사들은 성명을 냈습니다. 의사들의 임금을 올려주겠다는 정부의 방침에 자기들은 충분히 대우를 받고 있으니 그 돈으로 더 필요한 곳에 쓰라는 내용인데, 이런 의사들에게 진찰을 받는 것과 환자를 돈으로 치부하는 의사를 만나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요?
무상 의료 시스템은 정말 오래 기다려야 하는가?
결론부터 언급하자면 의료 대기 시간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어느 나라, 어느 시기에나 상존하는 불만입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무상 의료 서비스를 실시하는 영국과 캐나다, 그리고 영리 의료 시스템의 최강자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까지도 이 문제에 있어서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제 경우에도 한국에서 병원에 갈 때마다 오히려 기다리다 병에 걸려 오겠다고 푸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방법이 있었습니다. 덜 기다리고 싶으면 돈을 더 쓰면 되었고, 거기에 돈을 더 쓰면 보다 경력이 풍부하고 저명한 의사 선생님의 수준 높은(?) 진찰을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캐나다에서도 그런 일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가 아는 표면상으로는 그런 절차는 없습니다. 응급인지 덜 위중한 지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누구나 똑같은 절차대로 똑같은 대우를 받습니다. 여기에는 공공 의료와 영리 의료 체계 사이에서 발생하는 상대적 속도감만이 있을 뿐입니다.
영리 체계에서 병원은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병실을 늘리고 의료 장비를 확충하고 의사를 늘립니다. 대기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고 그만큼 환자에게 더 많은 비용을 청구하게 됩니다. 이것은 좋은 의미에서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는 계제를 갖추게 됩니다. 환자는 돈을 더욱 많이 지불하면 더욱 빠르고 더욱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공공 체계에서는 일단 당장 죽게 생겼거나 응급 환자가 아니라면 수술 날짜 잡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보통 두세 달 기다리는 것은 물론 한두 달 안에 잡히면 대단히 성공적인 상황으로 치부되곤 합니다. 즉 캐나다에서는 환자의 응급 상태와 접수 순서에 따라 균등하게 의료 서비스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이 공공 의료 체계의 한계가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무상 의료 시스템의 한계(제약이 아니라)는 전 국민을 일정 수준 이상의 의료 서비스를 지원하기 위해 엄청난 재정을 유지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엄청난 양의 세금이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즉, 공공의료 체계에서의 예산 정책은 단순히 양뿐만 아니라 질과 수준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잣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국가 예산의 대부분을 의료 부분에만 쏟을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그 사회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예산 범위 안에서 의료 체계가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국민이 체감하는 의료 서비스는 그 사회가 받아들이는 사회적 합의 수준에서 머물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영리 의료 체계와의 명확한 선이 그어집니다. 영리 체계의 의료 서비스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고 대상이 되기 때문에 그 수요에 맞는 최고의 서비스를 위해 분발합니다. 그만큼의 높은 수익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좋은 의미에서의 선순환이 일어나는 측면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공공 의료 영역은 그 사회의 재정 역량에 따라 의료 수준이나 서비스의 질 저하 여부가 결정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공공 의료 체계의 국가들은 질병 예방에 집중하는 반면 영리 의료 체계의 국가들은 사후 치료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일례로 캐나다와 미국의 의료부문에 투입하는 예산의 규모는 비슷하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예산의 집행 내역을 보면 캐나다는 미국과 달리 비해 사전 예방 부문에 많은 예산을 집중한다고 합니다.
일부 주장에 따르면 공공 의료 체계를 근간으로 삼은 캐나다와 영리 의료 체계를 근간으로 하는 미국의 간극이 의료 서비스의 수준과 대기 시간이라는 차이를 가져왔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것은 대다수의 국민이 체감하기엔 좀 더 기다리는가, 아니면 조금 덜 기다리는가의 차이일 뿐 근본적인 요소는 아닌 것입니다.
무상 의료 시스템은 원인이 아니다
대기 시간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으려면 먼저 의료 서비스 공급과 소비 행태의 차이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이는 공공이나 영리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의료 절차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사회적으로 의료 서비스에 대한 역할과 기능에 대한 시각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캐나다는 많은 공통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의료 절차에 있어서는 매우 비슷합니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병원이라 하면 일단 감기나 약간의 상처 정도로 들르는 곳이 아닙니다. 응급한 상황이거나 생명이 매우 위중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보다 전문적이고 큰 의료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곳입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국민은 아프면 우선 병원이 아니라 마트를 찾아갑니다. 마트나 약국엔 처방전 없이 복용할 수 있는 웬만한 약품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버티다 몸 상태가 진정되지 않으면 우리의 1차 진료 기관에 해당하는 패밀리 닥터나 워크인 클리닉을 방문합니다. 여기서는 우리의 가정의학과 같은 의사에 의해 처방전이 필요한 약간의 진통제나 항생제 등을 처방받을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도 1~2시간 정도의 대기시간은 일상적인 일입니다.
문제는 이곳에서 진료할 수 없고 전문의를 필요로 하는 상황입니다. 패밀리 닥터나 워크인 의사의 진단서가 있어야만 전문의를 만날 수 있는데, 예약은 필수이며 보통 당일에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종합 병원이나 대형 병원과 같은 3차 의료기관에서는 패밀리 닥터나 워크인을 통한 진단서가 없으면 예약 자체가 잡히지 않습니다.
당장을 견디기 힘든 고통으로 괴로운 환자와 가족에게 몇 단계의 절차와 최소 며칠씩 걸리는 전문의와의 진찰 일정은 끔찍한 기다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서 대기시간의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백내장이 매우 급히 진행되고 있다는 진단서를 가지고 수술 날짜를 예약하는데 3개월 후에 일정이 잡히는 식입니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동네 건물마다 상가마다 XX 정형외과, OO 내과, △△ 이비인후과 등의 간판을 볼 수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전문의의 소견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대형 병원에서 최고 권위의 의사와의 진찰도 가능합니다. 이러한 프로세스는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워크인을 제외하고 길에서 볼 수 있는 병원(클리닉)은 대부분 치과 정도에 간혹 안과 정도에 불과합니다.
미국이나 캐나다와는 다른 한국의 이런 의료 서비스 공급 시스템은 매우 빠르고 정확한 진료와 진단을 가능케 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렇듯 대기 시간의 이슈는 영리/비영리의 구분과는 상관없는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 공급 절차에 달린 문제이며, 이 지난한 의료 과정을 돈으로 앞당길 수 있으면 앞당길 수 있다는 것이 영리와 비영리의 차이일 뿐입니다.
공공 의료 수준이 그 사회의 의료 수준
미국과 캐나다, 아니 전 세계에서 살고 있는 교민들 중에 치료 목적으로 한국에 방문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앞서 예를 들었듯이 미국에 살고 계신 분들은 미국 병원이 비싸서 못 가는 것이고, 캐나다에 계신 분들은 기다리다 지쳐서 한국으로 간다고 말하곤 합니다. 이는 한국 의료 서비스의 강점이 높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빠르고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임을 두말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는 한국의 의료 서비스가 아직은 부족하나마 단단한 공공 의료 영역의 기반 위에 한국식 영리 체계가 조화로운 상생의 틀을 갖춰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공공 의료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바탕에 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이 단단함에는 한국식 의료보험 체계가 큰 몫을 담당했습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대놓고 부러워했던 한국의 의료보험체계 또한 이러한 공공 정책의 일환이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한국은 전 국민 의료보험 체계에 따른 저렴한 비용으로 누릴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해결해야 하는 과제도 많습니다. 한국은 공공 의료시설이 전체 병원의 10%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OECD 평균은 70%이며, 심지어 미국도 24.9%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병상수, 예산, 의료진의 수도 영국 대비 10% 정도에 미치는 현실입니다.
완전 민영화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이러한 의견조차 영리 병원의 발목을 붙잡는다고 주장하지만,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듯이 공공 의료 서비스의 양적 질적 저하는 국민 건강 및 생명에 대한 위협을 초래한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번 코로나 사태는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적으로 공공 의료의 중요성을 더욱 각인시켜 주는 결과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결국 한 국가의 의료 수준은 특정 병원의 수준이나 병원의 영리/비영리 문제가 아니라 사회 모든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전반적인 공공 의료 수준이 그 사회의 의료 수준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끌어올리는 것은 위정자들의 주장이 아니라 실제로 공공 의료 부문에 투여되는 국가적 재정 능력에 달렸다는 사실입니다.
코로나-19의 교훈, 의료 시스템은 생명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는 공공/영리 구분할 것 없이 전 세계 의료 시스템이 모두 무너졌습니다. 영리 의료 체계의 선봉장인 미국은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를 받으려면 기백 만 원의 비용이 들었습니다. 60만 명의 노숙자를 포함하여 2500만 명의 국민이 의료 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있고, 비싼 병원비에 병원조차 가보지도 못하고 사망하는 사례도 발생했습니다.
한편 공공 의료 체계인 캐나다 역시 비용을 지불하지는 않지만 내가 원한다고 아무 때고 진찰을 받을 수 없습니다. 특히 한 사회가 감내할 수 있는 임계치를 훨씬 초과하는 이러한 비상사태에서는 넘쳐나는 환자들과 의료 인력 및 시설의 부족으로 의료 시스템 붕괴라는 참혹한 현실과 맞닥뜨린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코로나 사태는 의료 서비스의 영리 혹은 비영리의 문제보다도 얼마만큼 정부와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그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의료 체계를 공고히 했는가의 문제를 보여줍니다. 아마도 이번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면 세계는 공공 의료 부문에 대한 새로운 평가와 대책들이 마련될 것으로 보입니다.
의료 서비스는 교육이나 실업 등의 복지 부문과는 또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생명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해답의 실마리를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영리 의료 서비스와 공공 영역의 조화로운 발전이 그 답입니다. 그것은 공공 자원으로써 의료 서비스 체계를 공고히 확대 발전시키는 동시에 영리 부문에서 의료 서비스의 획기적인 양적 질적 향상을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몇 번의 경기만 뛰어도 세계 최고의 자동차를 구입할 수 있을 만큼의 주급을 받는 손흥민이 영국 서민들이 이용하는 무상 의료 시스템의 한계 때문에 한국을 선택했다고 보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는 주장입니다. 더욱이 그 한계라고 주장되는 내용도 무상 의료 체계로부터 비롯된 문제가 아니라는 측면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손흥민 선수는 이전에 같은 부위의 수술을 집행했던 경험과 수술 후의 안정적인 회복을 위해 최고 수준의 한국 의료 서비스를 선택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해 보입니다.
* 본 글에서 무상 의료 체계는 공공 의료 체계의 정점에 있다는 시각에서 혼용하여 사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