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방탄소년단(BTS)을 듣는 이유

캐나다 아빠의 방탄소년단 2탄, 너희가 떼창을 아느냐

by 가나다 이군

캐나다 아빠의 방탄소년단 BTS 시리즈


제1 편 방탄소년단(BTS)이 캐나다에서 노가다하는 아빠의 주머니를 털고 있다

제2 편 아빠가 방탄소년단(BTS)을 듣는 이유 - 너희가 떼창을 아느냐




지난 글에 이어서 캐나다 아빠의 방탄소년단 시리즈 2탄, 아빠가 방탄소년단을 듣는 이유를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예고처럼 이 글이 3편까지 갈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언론은 물론 발 빠르고 저명하신 분들이 벌써부터 방탄소년단의 성공요인을 경영학, 사회학 혹은 인문학이라는 포장으로 분석하기 시작했고, 히딩크나 박지성이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많아질 텐데 괜히 덥석 나발 불고 나선 것이 아닌가 싶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남의 성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면서 잇속을 챙기는 사람들, 그중에 특히 (업계 종사자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컨설팅하는 사람들을 악어새라고 여겨왔습니다. 원래 능력자 악어 주변엔 이빨의 찌꺼기를 빼먹으려는 악어새가 들끓는 법이긴 하지만, 저 같은 문외한조차 악어새 대열에 뛰어드는 것을 보면 방탄소년단이 뭔가 해내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방탄소년단은 성공하지 않았다


또 한 가지는 방탄소년단의 성공은 현재 완료형이 아니라 미래 진행을 위한 현재형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만으로도 엄청나게 크고 많은 성과를 내었지만 아직도 그 끝을 모르고 나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무한한 장밋빛 미래만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나지는 않겠지만, 현시점에서 어느 정도의 한계 또한 노정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현재의 성과는 방탄소년단 만의 독보적인 이벤트일 뿐 K-pop 전반적인 외연의 확대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과연 K-pop이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 각각의 사회에 주류 문화로 편입한 것일까요?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겁니다. 주류 문화라는 게 그렇게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자리 잡는 건 아닐 테니까요. 오랜 시간 동안의 담금질이 있어야 가능한 얘기입니다. 심지어 언어마저 다른, 한국의 10대 대중문화가 대중문화의 타노스 같은 미국을 상대로 말입니다.


British Invasion Comicbook 표지 (이미지출처 my comicshop.com)


비틀즈로 대표되는 브리티쉬 인베이젼도 비틀즈 개인이나 한 번의 이벤트가 아니라 영국의 음악이 이전부터 뿌리내려 있었고 또 동시다발적으로 그리고 이후에도 꾸준히 이어져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하나의 스트림 같은 것이었습니다. 물론 방탄소년단도 어느 날 갑자기 슈퍼히어로처럼 나타나 미국과 세계를 점령한 게 아니라 그동안 코웃음과 비아냥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미국 팝 문화 시장의 문을 두드렸던 선배 가수들의 밑거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특히 외신들이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대표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듯이 말입니다. (싸이는 방탄소년단의 등장을 부르는 세례자 요한이었다고나 할까요.)


물론 방탄소년단이 팝의 본고장에 주류가 되었다는 호들갑도 아니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요구도 아닐뿐더러 방탄소년단이 K-pop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얘기는 더더욱 아닙니다. 다만, 이러한유를 핑계 삼아 이 글에서는 가능한 한 K-pop과 방탄소년단을 분리해서 언급하고자 합니다. 주류 문화에서 바라보는 대상은 아직 K-pop이 아니라 방탄소년단 현상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시야와 관심의 정도가 점점 그리고 빠르게 넓어지겠지만 아직까지 그들에게는 방탄소년단 콘서트에 몰린 열성적인 소녀팬들에 대한 일시적인 가십거리 정도의 환심일 뿐입니다.


"어라, 이쁘장하게 생긴 동양 애들이 뭔가 좀 하는 모양인데... 아무렴, 메뚜기도 한 철인데 물들어 올 때 노 저어야지. 잘해 봐."


아마도 이 정도가 미국 문화 주류의 반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20년 전에 한국 대중가요사에서 겪었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미국 NBC 엘런 디제너러스쇼에 출연한 방탄소년단 (이미지 출처;구글검색)


지금 미국의 반응은 20년 전 우리의 주류 시장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20년 전 한국에서도 K-pop은 저급한 대중가요에 불과했고, TV 프로그램에 처음 등장한 서태지는 기존 가수와 평론가들로부터 동정표를 받고 낙제를 겨우 면했습니다.


흔히 한국의 아이돌 가수라면 그 원조를 에쵸티(HOT)로 얘기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기획 공정에 의해 '만들어진' 가수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틀린 시각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국 대중가요사에 있어서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은 서태지입니다. (오빠부대라는 팬덤의 시효, 그래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가요 응원 문화를 창조해 낸 조용필은 호모 에렉투스쯤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팬 문화를 조직화하고 뼈와 살을 발라 생기를 불어넣음으로써 팬덤을 문화로 까지 정착시킨 건 에쵸티가 맞다고 봅니다. )


물론 서태지에게도 명과 암은 있지만 어쨌거나 한국 가요사는 서태지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한국 가요사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왔고, 록과 랩과 힙합과 발라드, 심지어 국악까지 뒤섞이는 가요의 장르적 융합이 일어나고, 가요가 패션 화하고, 유통기한을 스스로 시전 하는 등 그로부터 한국 가요는 이전과는 현저히 다른 양상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가요에 랩이라고 불리는 '불'을 사용하는 법도 가져왔습니다. 가요에도 랩이 가능하고 또 먹힌다, 세계 특히 미국 팝 트렌드에 보조를 맞출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된 기념비적인 순간입니다. 비록 흉내를 내는 정도의 수준, 따라 하는 수준이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었기에 지금처럼 내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반작용 또한 발생했습니다. 한국에서의 K-pop은 그냥 애들이나 좋아하는 대중가요이고, 가사는 진지하지도 않으며, 음악은 힙합, 락앤롤, 리듬 앤 블루스 등속의 음악과는 달리 정체성이 없는 정체불명의 싸구려라고 했습니다. 음악을 좀 안다거나, 한다는 사람들은 그게 음악이냐고 폄하하기도 하고, 음악/문화 평론가들은 이런 음악이 TV를 점령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볼멘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마치 대중가요가 클래식에게 받았던 천대와 멸시를 K-pop에게 퍼붓기라도 하듯이 말입니다. 시어머니에게 당한 고충을 며느리에게 갚는 심정이었나 봅니다.(농담입니다^^)


가장 큰 힐난의 이유는 어설픈 모방에 한국적인 정서 혹은 그러한 모티프조차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K-POP이 추구해 온 무한 경쟁과 정체성의 결여는 아이러니하게도 K-POP이 스스로 용광로가 되고 블랙홀이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럴듯하게 표현하면 퓨전, 포스트모더니즘쯤 되겠지만 그냥 익숙한 대로 말하자면 전 세계 장르가 뒤섞인 짬뽕 같은 음악이 되었습니다.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데 더 들어보면 낯설고, 내 것인 가 싶다가도 내 것이 아닌 다른 어떤 것, 이것이 한국적 Pop의 장르라면 장르일 수 있겠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국뽕 할 거면 때려치워라.


그렇다면 방탄소년단의 음악이 한국적인가? 장르적 측면에선 한국에서 발생한 장르가 맞겠지만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그런 전통적인 한국적 음악은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한국 사람이 부르는 노래는 꼭 한국적이어야 할까요? 개인적으로는 이번 타이틀곡 '아이돌'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적잖은 우려가 있었습니다. 좀 떴다 싶으면 한국적인 어떤 것이 들어가야 한다는 강박관념, 그렇게 해야만 자랑스러운 우리 것이고(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애국하는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사고방식 때문에 헛발질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그들의 음악은 간간이 한국적인 추임새 요소가 들어갔을 뿐, 기본적으로는 누구의 것도 아니 말 그대로 세계의(짬뽕) 음악이었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내가 잘하는 걸 내세우기만 하면 남이 알아서 그걸 인정해 주지는 않습니다. 세계적인 무엇인가가 되려면 세계가 받아들일 수 있는 무엇인가를 제시해야 합니다. 음식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한국 사람 즐겨 먹는 우리식 그대로의 육개장이 세계에 먹힐까요? 방탄소년단이 세계적인 관심을 끌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정서적 공감대든 뭐든 간에, 그들에게 인정받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 무엇인가를 제시하였다는 데 있습니다. 결코 한국적 요소가 들어가면 안 된다거나 수준이 떨어진다는 얘기가 아니라, 무조건 그런 요소가 들어가야한다는 당위성에 대한 되새김 정도라 봐주시면 될 듯합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잠시 삼천포로 빠져버렸습니다.



그런데 싸구려 대중가요라고 폄하하며 외면하던 아빠들이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마치 자기 일인 양 흥분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각설하고, 앞서 언급했듯이 기성세대에게 K-pop은 10대 소녀들이나 좋아하는 외모 중심의 싸구려 대중음악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싸구려 대중가요라고 폄하하며 외면하던 기성세대의 아저씨들이 걸그룸도 아닌 방탄소년단의 일거수일투족에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마치 자기 일인 양 흥분하고 있습니다. 딸이 좋아하니까 궁금해서 알게 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건 미국이나 캐나다 아빠들이 하는 얘깁니다. 한국의 아빠들은 조금 다른 배경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두 가지의 선입견에서 출발합니다.


첫 번째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아이돌 그룹에 대해 음악을 하는 가수가 아니라 음악을 볼모로 삼은 연예인에 불과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선입견입니다. (미국이나 캐나다 아빠에게는 아직 K-pop이나 방탄소년단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이 각인되지 않았기에 어떤 선입견도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이제 조금씩 생겨나겠지요) 한국의 아이돌 그룹이란 '생산라인에서 포장까지 마치고 라벨 붙여서 나오는 공산품'이라고 생각하거나, '피땀 눈물', '러브 유어셀프'처럼 남의 것 베끼기만 하면서('Blood, Sweat and Tears'는 미국 재즈 록 그룹의 이름이며, 'Love Yourself'는 저스틴 비버, 'You('ll) Never Walk Alone'은 Gerry & The Pacemakers의 노래 제목입니다) 막연하게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광대 나부랭이로만 알고 있던 아빠들이, 관심을 가지고 방탄소년단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제법 실력을 갖춘 준비된 아이들이었다는 점입니다. 가창력이나 안무 실력뿐만 아니라 음악적 고민도 있고 깊이도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성취도도 높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일례로 박찬호 씨(50세, 가명)는 방탄소년단의 라이브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빠져들었다고 말합니다.


"아이돌 가수들은 노래나 음악 실력보다는 외모와 춤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무대를 보면서 내심 쥐구멍 찾을 걱정부터 했지요. 미국 애들한테 립싱크 들키는 거 아냐? 라며. 그런데 웬걸요? 춤을 추면서 그 어려운 노래를 라이브로 하더라고요. 처음엔 긴가민가 해서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몇 편 찾아봤는데 콘서트에서도 정말 라이브를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아, 얘네 진짜다 싶었습니다."


두 번째는 미국 팝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사대주적 선입견입니다. 한때 기성세대에게는 우리 것은 촌스런 것이란 풍조가 있었습니다. 방화는 어찌해도 안 되는 것이고 가요는 그저 뽕짝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자격지심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국산 영화나 가요는 외면당했고, AFKN의 솔리드 골드라는 음악 프로그램을 즐겨보거나 전영혁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귀 기울이며 왠지 소개팅 같은데 나가서는 '프로그레시브 롹이나 리듬 앤 블루스를 좋아해'라고 해줘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FM 라디오를 틀면 하루 중에 낮 12시부터 2시까지,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정도가 가요 시간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팝과 영화음악의 시간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팝의 본고장에서 날아오는 뭔가 새로운 조류를 예의 주시하며, 빌보드 차트 몇십 위에 올랐던 일본의 라우드니스 같은 밴드를 시기 어린 눈으로 엄청 부러워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런 문화적 억눌림 혹은 사대주의로 문화상품을 소비하던 그런 기성세대에게 빌보드나 그래미 어워드는 우리 생에 가볼 수 없는 그런 요원한 성지였습니다.


그런데 그 요원함과 부러움의 판을 휘젓는 아이들이 나타난 겁니다. 탑소셜 아티스트 등 듣보잡 상을 받으며 소문이 퍼지던 초기까지만 해도 '그건 메인 스트림이 아니잖아, 핫 100 정도엔 올라야지'라고 애써 외면했던 아빠들이 그들의 주장대로 빌보드 앨범 차트와 싱글 차트 진입을 접하며 입이 벌어진 것입니다.


굳이 빗대어 보자면 공부도 잘하고 놀기도 잘하던 옆집 아무개를 항상 부러워서 하면서도 감히 그 무리에 끼지 못하고 바라만 보던 처지였는데,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우습고 하찮게 여기던 사촌 조카 한 놈이 그쪽 집안 한가운데서 한바탕 난리를 만든 겁니다. 통쾌하기도 기특하기도 하고, 어떻게 이게 가능해? 라며 신기하기도 한 겁니다. 물론 이 기성세대에게는 국뽕의 잔재가 남아있다는 것도 꽤나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혼란스러운 겁니다. 그래서 자기 살 꼬집어 보듯이 신문기사를 찾아보고 인터넷을 검색하는 겁니다. 감히 범접할 수없었던 빌보드 1위를 연속으로 달성하고, 거기서 신곡 발표회를 하다니. 이 사람 입장에서 이 조카 놈이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하나씩 하나씩 조금 더 따져 봅니다. 아빠는 왜 방탄소년단에 빠졌을까요?


처음 접하는 경로와 이유는 제 각각이겠지만 박세리(50세, 가명) 씨의 경우는 조금 더 사소한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소한 이유가 아저씨들에게 더욱 큰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래 이미지를 보면 금세 알아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빠 세대에는 노래책을 펼치면 팝송 가사는 한글 음역으로 달려 있었습니다. 몇몇 곡은 남는 공간에 가사 내용이 번역되어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한글로 표기된 발음을 따라 불렀습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전후가 바뀌어 그쪽 나라에 있는 애들이 우리 가요를 영어 발음으로 따라 부르고, 그쪽 밴드들이 우리의 가요를 카피하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그들의 안마당에서 그들의 것이 아닌 것으로 그들이 따라 하게 만들다니 얼마나 감회가 새롭겠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더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아래 이미지는 유튜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면입니다. 곡의 전개에 맞춰 그 파트를 담당하는 멤버의 사진이 활성화되면서 한글 가사의 자막이 흐릅니다. 그 밑으로 한글을 영어 발음으로 옮긴 가사가 있고, 그 밑으로 가사의 의미를 최대한 원뜻에 가깝게 신경 써서 번역해 놓았습니다. K-pop의 저변 확대와 가사의 의미에 전략적인 포인트를 함께 두었던 방탄소년단의 팬덤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되는 장면입니다.



별거 아닌 것 같은 이 화면은 사실은 문화 전파 측면에 있어서 핵폭탄 같은 부분입니다. 하나의 문화가 다른 구성체 혹은 집단으로 전파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텍스트 화이며 이것은 의미의 전달 즉, 메시지의 전달입니다. 불교와 기독교가 불경과 성서의 번역을 통한 대중화로 세계 종교가 될 수 있었고, 르네상스 또한 그리스 문화가 텍스트로 유럽에 전파되면서 비로소 가능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한 문화가 다른 문화에 수용되는 과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이 작업을 아미로 불리는 방탄소년단의 팬들이 직접 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방탄소년단의 글로벌 인기는 이렇게 가능했던 겁니다.


이번엔 어쩌다가 방탄소년단 인기의 비결과 문화 전파 측면으로 얘기가 새 버렸습니다. 다시 본류로 돌아가자면, 확실히 고등학교 교내 밴드 활동을 경험한 김건모(50, 가명)씨의 감회는 남달랐습니다. 그의 고등학교 시절은 팝송을 '어느덧 대전 하이웨이~' '냄비 위에 밥이 타' '아빠 바지 엄마 바지'로 부르던 시절이었습니다.


"저희 고등학교 밴드 시절에 연습하고 불렀던 곡은 전부 팝이나 롹이었어요. 가요는 어쩔 수 없이 한두 곡 선곡했을까? 가요를 부르면 밴드의 급이 떨어진다고 여겼던 것 같아요. 그런데 웃기는 건, 영어 가사를 제대로 알거나 외워서 부르는 경우는 많지 않았죠. 저희 팀 보컬도 그런 친구였는데, 웬만하면 제대로 외워서 부르면 좋겠다고 하니까 뭐라고 했는 줄 아세요? 야, 어차피 제대로 해도네들도 못 알아들어. 롹은 느낌이야. 그거면 충분해."


그러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가사를 몰라도 음악을 좋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미국 애들)은 몰랐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렇게 문화적 자존심이 강한 미국에서 한국어 노래에 열광하고 또 따라 부른다는 것은 그들도 우리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페이스북 친구가 공유한 유튜브 동영상을 봤는데 미국 밴드가 방탄소년단의 곡을 카피해서 부르더라고요. 거의 정확한 발음으로 말이죠. 카피는 우리나 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정말 말 그대로 상전벽해의 느낌이었습니다."


'우린 저 높은 곳으로 갈 수 없어'라고 일말의 자괴감을 지니고 있던 아저씨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는 겁니다. 일제의 억압을 받다가 해방을 맞이한 기분이라면 지나치게 앞서 간 얘기가 되겠지만 그 정도의 센세이션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김건모 씨는 이와 더불어 또 하나의 관점을 얘기했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내한공연이라도 성사되면 열일을 제쳐두고 참석하는 사람들입니다. 한국의 자랑스러운 공연문화 떼창을 주도하는 장본인들이죠. 유명 스타들이 한국에 자주 방문하지는 않지만 한 번 공연을 하게 되면 자주 오게 되는 이유가 바로 떼창에 받은 감명 때문이란 얘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방탄소년단의 이번 미국 공연 동영상을 보니까 그 많은 미국 팬들이 한국말로 떼창을 하고 있더라고요. 이런 날도 올 수 있구나. 정말 가슴 떨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콜드플레이 내한 공연 장면 (이미지 출처- 현대카드)


방탄소년단에게는 가장 한국적인 가락이나 음악적 전개는 적었을지 몰라도 가장 한국적인 공연 문화인 떼창의 체험이란 핵무기가 있었습니다. 떼창은 공연을 출연자와 관객이 함께 공유하는 놀이로 받아들이는 한국 고유의 공연 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관객은 관조적인 자세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공연에 동참하고 무대 위의 가수와 하나가 되는 공연, 사실 공연이라기보다 놀이에 가까운 모습은 마당놀이나 탈춤 등속의 전통문화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듯 떼창으로 대변되는 우리의 공연 문화는 김건모 씨의 말처럼 유수의 내로라는 세계적인 가수들도 일단 맛을 한 번 보면 빠져나갈 수 없는 독특하고 강렬한 임팩트를 제공합니다.


그럼 떼창은 어떻게 해서 방탄소년단의 미국 상륙을 도왔을까요? 그걸 알려면 K-pop의 주 소비층 인 소녀팬들이 방탄소년단에게 열광하는 이유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빠의 시선을 따라가기에 앞서 잠깐 딸의 시선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외신들이 앞다투어 아미에게 물었습니다. 왜 방탄이냐고.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우리는 한국어를 전혀 모르지만 그들의 노래를 느낄 수 있고 그들의 메시지를 알 수 있다고.


외신에서 인터뷰한 아미들의 답변을 들어보면 "그들은 무작정 사랑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우리와 감정을 공유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선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한국어를 모르지만 그들의 진심을 느낄 수 있고, 그것은 나를 변화시킨다." 대부분 이런 답변이 돌아옵니다. 여기서 중요한 키워드는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운동 가요도 아닌 대중가요를 부르는 가수에게 메시지를 주요 요인으로 꼽다니요.


결국 가사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언제부턴가 가요도 가사에 별로 힘을 들이지 않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노력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아니라 직선적이고 단선적인 댓구의 나열이나, 후크에 맞물리는 자극적이고 무의미한 의성어 또는 의태어로 점철되었고 심화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방탄소년단 또한 여기서 완전하게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다만, 그들은 여기서 딱 한 발자국 나아갑니다. 남발되는 뻔한 얘기가 아닌 진심이 느껴지는 서정적 스토리를 담아낸 것입니다.


곡으로 끌리는 노래는 감각으로 전달되는 것이고, 가사로 파고드는 노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특히 개인적인 어떤 회상이나 기억과 결합하게 되면 가히 폭발적인 감정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특히나 그들이 한창 사춘기를 보내는 소녀들이라고 한다면 말이죠. 뿐만 아니라 방탄소년단의 가사 전달력은 나이 오십 먹은 아저씨가 듣다가도 '맞아 그랬지' 하며 울컥할 정도의 힘을 발휘합니다.


방탄소년단 가사의 첫 번째 무기는 아마도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에선 벌써 사라진 은유적 노랫말, 그것도 한국적 서정성이 먹히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꿈은 사막의 푸른 신기루

저기 멀리서 바다가 들려

- Euphoria 中


눈을 뜬다 어둠 속 나 심장이 뛰는 소리 낯설 때

마주 본다 거울 속 너 겁먹은 눈빛 해묵은 질문

니 삶 속의 굵은 나이테 그 또한 너의 일부

차가운 밤의 시선

차가운 날 감추려

몹시 뒤척였지만

수많은 별을 맞기 위해 난 떨어졌던가

저 수 천 개의 찬란한 화살의 과녁은 나 하나

- Answer: Love Myself 中


필 땐 장미꽃처럼

흩날릴 땐 벚꽃처럼

질 땐 나팔꽃처럼

아름다운 그 순간처럼

- Magic Shop 中


여긴 온통 겨울 뿐이야

8월에도 겨울이 와

허공을 떠도는 작은 먼지처럼

날리는 눈이 나라면

조금 더 빨리 너에게 닿을 수 있을 텐데

시린 널 불러 내 본다 연기처럼 하얀 연기처럼

- 봄날 中


위의 가사들은 예를 들기 위해 일부러 찾아내서 고른 문장이 아니라 무작위로 틀어진 노래에서 들리는 대로 받아 적은 것입니다. 마치 한 편의 시집을 옮겨 놓은 듯 수많은 은유와 상징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말글이 뜻하는 그대로의 정서를 담아 외국어로 번역되고, 이를 접한 소녀들은 한 편의 문학작품을 접하듯 감동하고 빠져드는 것은 아닐까요. 아빠가 그맘때 헤르만 헤세나 윤동주의 작품을 보고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개인적으로 아미들에게는 노벨문학상을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미에게는 노벨문학상을 줘야 합니다.


그런데 위의 사례에서는 방탄소년단이 얘기하는 메시지는 빠져 있습니다. 그들의 메시지란 특별히 러브 유어셀프 연작에서 강하게 찾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3장의 앨범을 관통하는 노랫말이나 유엔에서의 RM의 연설 내용이 모두 일맥상통합니다. RM의 연설문은 그들 노랫말의깁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러고 보니 방탄소년단은 유엔 총회에서 자신들의 앨범에 대한 소개를 한 모양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기획에 의한 작위적인 시작이었을 테고 어찌어찌하다 보니 이렇게까지 되었겠지만, 그 포인트를 잡아내고 진정성을 제대로 담아낸 노력은 칭찬받아 마땅할 만한 성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여기서 그들의 메시지 내용에 대해 일일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 메시지의 수용자에 대해서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 그들은 내용도 제대로 알 수 없고 한갓 대중가요 가사에 불과한 노랫말에 그토록 반응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토록 열광하는 이들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방탄소년단의 팬층은 일단 10대 중심의 여성, 소녀팬이 주축입니다. 그리고 백인보다는 아시안계와 남미계 혹은 아프리카계의 인종이 압도적입니다. 실제로 해밀턴에서 직접 확인한 바로도 거의 3백 미터에 이르는 긴 줄에서 남성이나 30대 이상의 성인을 보지 못했습니다. TV에 나오는 팬들 역시 거의 모두가 소녀/여성팬입니다. 남녀 혹은 인종에 대해 인구학적으로 얘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순서를 바꿔서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아시아나 남미, 혹은 아프리카 등지에서 미국으로 건너와서 살고 있는 10대 소녀들이 방탄소년단의 메시지에 감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감내하고 있는 사회적 차별과 불안, 좌절에 대해 자신을 사랑하라는 방탄소년단의 메시지가 그들에게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혹시 지난 1편 마지막에 언급한 한국 고등학생의 글이 기억나시나요? 그들은 방탄소년단에게 고맙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에게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되었을까요. 방탄소년단 노랫말 중에 가장 많이 들리는 가사는 아마도 '괜찮아'일 듯 싶습니다.


넘어져도 괜찮아

좀 다쳐도 괜찮아

- Run


믿어도 괜찮아 널 위로해 줄 magic shop

넌 괜찮을 거야 oh 여긴 magic shop

- Magic Shop


멈춰서도 괜찮아

꿈이 없어도 괜찮아

꿈의 이름이 달라도 괜찮아

- 낙원


괜찮아 우리가 아니어도

괜찮아 오직 나만의 나의 구원이잖아

- I'm fine


괜찮아 자 하나 둘 셋 하면 잊어

- 둘! 셋!


살다 보니 어쩌면 가장 위안이 되고 가장 듣고 싶은 말 중에 하나는 '괜찮아'일 겁니다. '공부 좀 못하면 어때, 괜찮아.' '좀 부족해도 괜찮아.' 방탄소년단은 어찌해도 너는 그 자체로 완성된 너라고, 어제의 너도, 오늘의 너도, 내일의 너도 모두 너이고, 실수하는 너도 모두 너라고 그러니 괜찮다고 다독이고 어루만져줍니다. 그게 힘이 되고 용기가 되고 활력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요. 뭘 해도 괜찮다며 언제나 내 편이 되어 줄 것만 같은 존재가 있다면 사랑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여기에 한국에서도 비주류 기획사에서 출범한 방탄소년단 만의 히스토리도 한몫합니다. 아미를 위시한 방탄소년단의 팬덤은 한국에서도 비주류였던 방탄을 이렇게 세계적인 스타로 커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마치 어미새가 된 듯 대견하다며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금수저가 성공한 얘기는 베스트셀러가 될 수 없습니다. 개천에서 용이 난 얘기여야 하는데 방탄소년단이라고 별거 있었나요? 그저 여느 K-pop 가수와 별반 다를 거 없이 데뷔해서 그럭저럭 지내고 있었지요.


방탄소년단이 세계적인 이슈라고는 하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조용하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대중음악 주 소비층 인 10대 들에게 방탄소년단은 여느 아이돌 그룹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그냥 흔한 아이돌 중에 하나일 뿐이기 때문일 겁니다. (마치 메탈리카는 그냥 우리가 보유한 여러 헤비메탈 밴드 중에 하나 일 뿐이라서 별로 특별할 것도 없어 처럼 들리는군요) 따지고 보면 한국의 아이돌 중에서 방탄소년단만큼 춤 잘 추고 노래 잘 부르는 그룹이 어디 한둘이며, 방탄소년단만큼 노력하지 않은 그룹이 어디 있겠습니까. 게다가 각자의 지지기반도 확고해서 엑소가 조금 주춤한 틈을 타서 방탄이 떴다고 거들떠보지도 않거나, 엔씨티 등의 신무기로 갈아타서 대응태세를 강화하기도 합니다. 당연히 철저하게 방탄의 입덕을 거부하는 무리도 있습니다. 물론 다양성 측면에서 당연하고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BTS 데뷔시절(이미지출처:Jimin(BTS) 트위터 계정)


하지만 방탄소년단이 힙합을 한다고 할 때도 힙합신에서는 그냥 K-pop이나 제대로 하라고 비아냥 거렸고, K-pop에선 작은 기획사 출신으로 공룡 기획사 틈바구니에서 버티기도 버거웠을 것입니다. 지방 핸디캡, 마이너에서의 출발 등 그들이 극복해야 할 과제도 많았지만 결국 그러한 억눌림을 이겨내고 지금의 방탄소년단 BTS가 되었고, 마치 축구의 박지성처럼 외국에서 먼저 인정받고 금의환향하는 경우가 되었습니다.


솔직히 예견된 성공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은 음악에 대한 열정과 노력으로 차근차근 준비되어 있었기에 기회가 왔을 때 낚아챌 수 있었습니다. 끔찍한 농담이지만 생각해 보건대 영어를 준비한 RM이 아니었으면 미국 진출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함께 한 아미들은 한편으론 자신들이 키워냈다는 어미새의 심정을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걔네들 내가 키웠어." 정도는 아니더라도 "방탄이 뜨는 데 나도 한몫했지" 뭐 이런 정도....


이런 경험은 방탄소년단의 성과를 자신의 성취로 대리 만족하는 효과로도 나타납니다. 이 세상에서 나도 어떤 의미가 있다고 느끼는 등 무엇인가에 짓눌린 삶에 불빛을 찾던 사춘기 소녀들의 감성에 카타르시스를 던집니다. 그리고 이들의 경험에 드디어 떼창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등장합니다.



모래알처럼 각자의 삶에 지친 사람들이 방탄소년단을 통해 유대와 연대의 소중한 경험을 체험하면서 나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떼창의 효능은 한마디로 공동체의 경험입니다. 방탄소년단(혹은 K-pop) 콘서트를 참관하는 팬들이 느끼는 가장 강력한 카타르시스는 '난 혼자가 아니야.'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았어.'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방탄소년단의 노래처럼 그들은 You Never Walk Alone을 깨닫게 됩니다. 그들의 삶 속에서 문제뿐만 아니라 K-pop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주위의 비아냥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각인은 이전보다 적극적이고 열성적인 관심과 참여로 이어집니다.


공연 관련 동영상을 들여다보면 이 친구들은 콘서트를 보는 것만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다는 그 자체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확연하게 알 수 있습니다. 공연장 주변에선 정확하거나 혹은 어설픈 발음으로 '김남준, 김석진, 민윤기, 정호석, 박지민, 김태형, 전정국, BTS!'를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들이 함께 하기를 준비하는 목소립니다. 혼자 보고 눈과 귀에 담아 오는 콘서트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대상을 같이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놀이와 같이 즐기는 축제와 같은 시간. 그들은 공통된 행동과 발성을 통해 깊은 유대의 경험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특히나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서구 문화적 바탕 위에 온갖 사회적 차별로 벽이 세워진 미국 같은 나라에서의 이러한 체험은 이것을 경험한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 다시는 무의미한 예전의 문화로 되돌아가지 못하게 됩니다. 이는 방탄소년단과 K-POP이 더욱 성장할 수 있는 요인이자 동력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제 전 세계의 팬들이 스스로 방탄소년단의 팬임을, K-pop의 팬임을 밝히는 걸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방탄소년단의 이번 월드 투어는 전 세계의 수많은 K-pop 팬들이 사도 바울이 될 것을 선언하는 자리입니다.


작금의 방탄소년단의 현상은 의도하지 않은 성공에서 출발했지만 의도만 하지 않았을 뿐 이미 준비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특히 그것이 빅 컴퍼니에서 짜여진 시나리오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의 노력과 그 진정성이 대중에 의해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아직 그들이 전적으로 그들의 음악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노래와 가사의 특징적 부분들을 따져보면 유사 어구의 반복 등 누군가 지도(?)하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는 음악인 중엔 악보조차 모르는 작곡가도 많습니다. 비틀즈의 존 레넌도 악보조차 볼 줄 모른 채로 데뷔했다고 했을 정도니까요. 방탄소년단은 아직 만들어지고 있는 진행형의 아이돌이고 여전히 담금질 중인 쇳덩어리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다시 아빠 얘기로 돌아와서 마무리를 하자면 방탄소년단의 행보는 아빠 세대, 아니 그 이전 세대부터 가져왔던 문화적 열등감을 한방에 날려 보내는 쾌거입니다. 한국이란 나라 사람들이 경제, 스포츠, 민주화 무엇 하나 빠지지 않고 세계 수준을 따라잡았는데, 유독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문화 분야에 있어서만은 진전 없는 제자리걸음이었습니다. 이것이 사대주의가 되었건 열등감이든 간에 훌훌 벗어던지고 맞짱 한 번 뜰 가능성이 보인다는 점에서 방탄소년단의 성과를 주시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수확은 이제 전 세계의 팬들이 스스로 방탄소년단의 팬임을, K-pop의 팬임을 밝히는 걸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언더에서 음지에서 숨어 지내며 마치 서자처럼 설움 받던 아미들이, 그리고 K-pop 팬들이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RM의 UN 연설에서의 피날레처럼 스피크 유어셀프 Speak Yourself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K-pop의 본격적인 상륙 작전은 여기서부터 출발입니다. 그 선봉엔 당연히 방탄소년단 BTS가 있습니다. 덕분에 아빠도 방탄소년단을 향한 수줍음을 사뿐히 즈려밟고, 살짝 입가에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



P.S. 혹은 뱀발;

방탄소년단은 애국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들의 군대 면제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방탄소년단은 그들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군대 보내면 안 됩니다. 방탄복은커녕 전투복도 입혀서도 안 됩니다. 그들이 애국하는 길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가 한국 가사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한글을 익히고 한국을 자랑스럽게 하는데, 세종대왕이 보셨다면 '방탄공'이란 시호를 하사 하시지나 않았을런지..



[깍두기 하나 추가]

[승지원 in 캐나다] BTS 이야기 # 방탄소년단 BTS가 어쩌다 운 좋게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일회성 인기가 아니라는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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