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죽일 뻔한 어머니를 과거의 유시민이 살려냈다

정치가 내 삶을 좌우한다.

by 가나다 이군

현직 대통령이 난데없 비상계엄을 선포하여 스스로를 옭아매기 한 달 전의 이야기다.

파킨슨병과 약간의 치매 증상을 보이던 어머니가 동창 친구분들을 만나러 집을 나섰다가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에서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구조대의 도움으로 무사히 귀가는 할 수 있었지만, 그 이후로 한 달이 넘도록 음식을 넘기지 못하고 잠조차 주무시지 못하셨다. 급격한 건강악화로 거동조차 어려운 여든넷의 노인네를 모시고 여러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응급실이건 외래건 문전박대를 받고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1차 소견서를 받아서 나선 길이었음에도 소용이 없었다. 별수 없이 동네 내과에서 수면제가 든 위장약 이틀 치를 구한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울화가 치미는데 이천 명 의대정원을 고집하는 대통령과 반대 입장을 고수하는 의사를 탓하는 것 말고는 어찌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캐나다에 살면서 한국의 의료대란을 염려하는 소식은 들었지만 그저 남의 얘기거니 하며 넘겼는데, 그 뉴스가 나에게 닥친 일이 되어버렸다.


원인도 모른 채 해법도 없이 하루가 다르게 병세가 심해졌다. 그런 어머니를 홀로 두고 캐나다로 떠나올 수가 없어서 결국 지인의 추천을 받아 인근의 요양원으로 모셨다. 작은 규모의 사설 요양원이어서 그런지 절차는 복잡하지 않았지만 그동안 관심조차 가져보지 않았던 노인 요양 제도는 매우 낯설었다. 증상에 따라 요양등급이란 게 있고 등급별로 비용 등의 혜택이 차등적으로 반영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어머니에게도 이미 부여된 등급이 있었다. 이렇게 처음 접한 노인 복지 제도는 생각보다 훨씬 체계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요양시설에 대해 알아볼 여유도 없이 어머니를 모셨기에 그날 밤에 장남으로서 고려장을 치렀다는 자괴감을 끌어안고 노인 요양 제도에 대해 찾아보게 되었다. 그런데 새삼스럽게도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노인장기요양보호법, 기초노령연금법, 그리고 고령자고용촉진법 이른바 노인 3 법이 등장한다. 출판이나 미디어를 통해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현재의 유시민이란 인물만 생각했지 현실 정치인, 그리고 복지 행정가로서의 과거의 그를 잊고 있었다.


이 제도들은 독일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한 유시민 전 장관이 참여정부 시절 온갖 반대와 험한 소리를 들어가며 기초를 마련였다. 히 노인 장기요양보험의 경우 2008년 제도가 시행된 이래 점차 파킨슨병과 치매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노인성 질환을 대상으로 확대되고 서비스와 요양보호사의 처우도 개선되는 등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명실공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복지 제도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직접 체험하였듯이 전체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노인 가입자의 복지 향상은 물론 가족 부담과 사회적 비용의 절감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제도 덕에 현실적인 대안이 없었던 어머니를 큰 부담 없이 안전하게 모실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당장이라도 돌아가실 것 같았던 어머니의 건강도 요양시설의 도움으로 많이 회복되었다. 캐나다로 돌아오면서 생각해 보니 대통령과 의사들이 죽일 뻔한 어머니를 과거의 젊은 유시민이 살려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른바 복지 국가로 일컬어지는 캐나다의 촘촘한 복지 체계는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진 선물이 아니다. 수많은 정권의 교체 속에서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함께 사는 사회를 이뤄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지난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급격한 산업화와 성장 위주의 사회변화로 인해 복지에 대한 인식이 다소 뒤처지긴 했지만 한국 사회도 노인, 육아, 교육 등에 있어 캐나다와는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을 뿐, 제법 복지사회의 틀을 갖추어 나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가능성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번 경험을 통해 정치가 개개인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이렇게나 무섭고도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우리의 실생활과는 거리가 먼 그들만의 리그라고 느껴지는 정치판이지만 그래도 실상은 우리 개개인의 생활과 가장 밀접하게 닿아있다. 그래서 위정자들이 하는 행동, 의사결정, 말 한마디를 언제나 잘 살펴보고 따져보아야 한다. 그들의 어떤 정책 하나가 어머니의 생명과 나의 삶을 결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려나 일단 잘 뽑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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