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 눈을 치우며

by 가나다 이군

언 눈을 치우며


어차피 이미 날은 풀렸고

오늘내일 비까지 예보되어 있으니

내일 아침이라도 눈은 모두 녹아버릴 터인데

해저녁 퇴근길에 굳이 삽 들고 나서서

겨우내 얼어있던 뒷마당 눈더미를 걷어낸다

그런다고 봄이 한 발짝 서둘러지는 것도 아니고

따지고 보면 어차피 봄은 이만치 와 있는데

고걸 못 기다리고 안달 내는 자신이 못내 우스워도

오늘도 또 삽질이다

그랬다. 빈 잔은 바로 채워야 하고

채운 잔은 또 그냥 보고 있지 못하는 성질이

오늘도 삽을 들게 하는 모양이다

마치 이 잔을 비워야만 인생의 새 장이 열리고

마치 이 눈을 치워야만 새 봄이 오기라도 하는 듯이

마치 이 쪼가리 눈조각이 꽃이 오는 길을

막고 있기라도 하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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