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지도밖의 길에서도 멈추지 않는 이유

by 류주복

남산에서 반공 교육을 받고 단수 여권을 발급받던 시절, 김포공항을 떠나 도착한 유럽의 공기는 낯설고도 뜨거웠다. 입사 동기들과 동고동락했던 6개월간 실전 역량을 쌓았고, 벨기에 라훌프의 숲속 감옥 교육 센터에서 밤늦게까지 문제와 씨름했으며, INSEAD에서는 전략적 딜 전문가로 거듭나는 과정을 거쳤다.


인상 깊었던 교육훈련 프로그램 몇 개를 시간 순서로 기록해 본다.


1. MRP 시스템 연수


첫 직장이었던 삼미정공 시절, 독일 FAG 본사로 MRP 시스템 연수를 떠났다. 해외여행 자율화 직전이라 여권 하나 만드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었다. 남산에 있던 모처에서 반공 교육까지 이수해야 했고, 그렇게 손에 쥔 것은 유효기간 1년에 딱 한 번만 나갈 수 있는 단수 여권이었다.


김포공항을 떠난 비행기는 알래스카를 거쳐 파리에 닿았고,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향했다. 거기서 두 시간 남짓 아우토반을 시속 200km로 달려 도착한 곳은 FAG 본사가 있는 슈바인푸르트였다.


독일 통일 전 동독 접경지대에 있던 슈바인푸르트는 2차 대전 당시 군수 공장이 밀집해 연합군의 집중 폭격을 받았던 아픈 역사를 품은 도시다. 하지만 내 눈에 비친 모습은 서울 탄천만 한 마인강이 도심을 가로지르는, 참으로 평화로워 보이는 소도시였다.


우리가 배운 것은 Honeywell사의 서버에서 구동되던 HDMS라는 시스템이었다. 기초 지식도, 의지도 부족했던 우리 팀을 가르치느라 영국에서 온 미국인 강사가 꽤 애를 먹었을 것이다. 그중 내가 착하게 보였는지 방과후 공부까지 시켜 줬다. 지금 생각하면 이상하고도 고마운 기억이다.


교육 기간 중 주말이면 FAG 직원의 안내로 주변 도시들을 방문했다. 특히, 백설공주나 개구리왕자가 금방이라도 나올 것처럼 중세의 공기가 곳곳에 그대로 멈춰 있던 로텐부르크가 기억에 선하다.


투박하지만 맛있었던 소시지와 훈제 족발, 정통 독일 맥주 그리고 샤브샤브를 닮은 플라이드 퐁뒤까지, 야릇한 맛의 사슴 스테이크만 빼고 음식도 괜찮았다. 무엇보다 매주 수요일 저녁, 잔을 비울 때마다 술값이 반값으로 줄어들던 슈바인푸르트 뒷골목 펍의 해피타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아련한 추억이다.



2. IBM 신입사원 교육


입사 합격증을 손에 쥐고 동기들이 처음 모인 곳은 서울 외곽의 W호텔 로비였다. 그곳에서 일주일간 회사 소개를 포함한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뒤, 여의도 IBM 빌딩 교육센터에서 6개월간의 신입 사원 기본 교육이 시작되었다.


흔히 IT 기업이라 하면 컴퓨터 전공자가 주를 이룰 거라 짐작하지만, 50여 명의 동기 중 컴퓨터 전공자는 단 몇 명뿐이었다. 경영, 경제, 인문사회, 공학 등 실로 다양한 전공자들이 한데 모여 'IBMer'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이 신입 사원 육성 프로그램은 ELT(Entry Level Training)라 불렸다. 6개월 동안, 한국에서 6주, 아시아태평양 본부가 있던 싱가포르 교육센터에서 3주간 해외 신입 사원들과 함께 받는 교육을 3회 반복하는 글로벌 커리큘럼이었다.


일본과 호주를 제외한 아시아 전역의 신입 사원들이 싱가포르로 집결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했다는 한국 신입 사원들의 자부심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다른 나라 동기 중에는 고위 공무원, 재벌가의 자제들이 수두룩했고, 대부분 영어가 능통한 해외 유학파 출신들이었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왕족도 있다고 들었다.


머글 출신의 한국과 대만 동기들이 잡초 같은 근성으로 공부보다는 어울려 노는 데 주력했던 반면, 홍콩과 싱가포르 동기들은 무척이나 학구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반전은 시험 결과였다. 매주 치러지는 테스트의 상위권은 늘 한국 동기들이 휩쓸었고, 그럴 때마다 타국 동기들의 시기 어린 눈총을 받기도 했다.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사지선다형의 시험에 최적화된 민족이 아니던가. 성적 상위 10%에게는 크로스 볼펜이 부상으로 주어졌는데, 아쉽게도 나는 셀프 시상을 해야 했다.


세 차례에 걸친 싱가포르 출장 교육의 핵심은 기술적인 지식보다 비즈니스 에티켓, 미팅 스킬, 세일즈 프레젠테이션 등 실전 역량에 맞춰져 있었다. 제품에 대한 깊이 있는 기술 교육은 현업 부서에 배치된 후 각자의 직무에 따라 채워나갈 영역이었다.


ELT 과정을 채 마치기도 전에 회사의 결정으로 조기 부서 배치가 이루어졌다. 나의 첫 부서는 제조유통 산업본부 산하의 CIM 사업부였다. 그렇게 제조업 산업 전문가로서 IBM에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3. MAPICS 시스템 교육


IBM에서의 첫 보금자리인 CIM 사업부에서 내가 맡은 업무는 MAPICS 시스템의 기술 및 영업 지원이었다. 고객들에게는 이미 MAPICS 전문가로 소개되었지만, 실상은 선배들의 개인 레슨과 독학으로 버티던 반쪽짜리 서당개 신세였다. 그러다 사수의 적극적인 추천 덕분에 드디어 독일에 있는 IBM 뵈블링겐 연구소로 정식 교육을 떠나게 되었다.


뵈블링겐 연구소는 유럽 컴퓨터 산업의 심장이자 IBM 메인프레임과 리눅스 전략을 이끄는 핵심 거점이었다. 미국 외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그곳의 강의실은 백발이 성성한 베테랑들로 가득했다. 동양에서 혼자 온 새파란 신출내기가 기특했는지, 그들은 연신 친절한 배려를 건네며 나를 교육의 흐름 속에 기꺼이 끼워주었다.


문제는 교육이 아닌 첫 주말 토요일, 하이델베르크 관광길에서 터졌다. 호텔에서 택시로 진델핑겐 역에 가서 슈투트가르트 경유, 하이델베르크까지는 기차로 잘 도착했다.


하이델베르크 기차역에서 내려 한국에서 챙겨온 관광 지도를 나침반 삼아 고성을 향해 당당히 걸음을 뗐으나, 이상하게도 걷다 보면 늘 엉뚱한 막다른 길이었다. 다시 역으로 돌아와 방위를 확인하고 출발하기를 수차례. 결국 지나가던 현지 아저씨를 붙잡고서야 진실을 알게 되었다.


"애초에 지도에 표시된 기차역 위치가 틀렸어. 넌 지금 지도 밖을 헤매는 중이야." 친절한 아저씨의 자전거 뒷자리에 실려 고성 구경은 겨우 마쳤지만, 진짜 고난은 돌아오는 길에 시작되었다.


기차를 갈아타고 숙소가 있는 진델핑겐 역에 무사히 내렸을 때, 나는 작은 소도시라는 안도감에 취해 "호텔까지 걸어가 보자."는 무모한 결정을 내렸다. 해가 지고 사위가 칠흑같이 어두워지자 길은 삽시간에 미로로 변했다. 주택가는 사라지고 끝이 보이지 않는 높은 담벼락이 앞을 막아섰다. 벤츠 공장이었다.


영하의 추위 속에서 아우토반을 질주하는 자동차 불빛만을 이정표 삼아 걷고 또 걸었다. 둘레만 10km에 달한다는 거대한 벤츠 공장 외벽을 따라 유령처럼 헤매기를 몇 시간. 간신히 출발했던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자정이 다 되어 있었다.


허기와 추위와 기진맥진함이 극에 달했을 때, 멀리서 구원처럼 맥도널드의 노란 로고가 번쩍였다. 허겁지겁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가 햄버거 세트를 움켜쥐고는 대기 중인 택시에 몸을 던지듯 실었다. 그러고는 비장하게 외쳤다.


"세나토르 호텔! 플리즈!"


택시 기사는 백미러로 나를 슬쩍 훑어보더니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차가 엔진 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하지만 바퀴가 채 몇 바퀴 구르기도 전, 택시는 끼익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기사가 무심하게 턱끝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거기엔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호텔의 간판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기사의 눈빛은 마치 "이 동양인은 택시타고 햄버거 사러 가는 부자인가?"라고 묻는 듯했다.


자랑할 만한 얘기는 아니라서 혼자서만 가끔 피식거렸지, 수십 년 동안 잘 하지 않았던 이야기이다.



4. 컨설팅 방법론 교육


IBM 컨설팅 그룹(ICG)으로 팀을 옮기며, 오직 컨설턴트 직무에만 허락되었던 전문 방법론 교육을 받게 되었다.


모든 컨설턴트의 필수 관문인 '컨설팅 기초 교육'은 뉴욕 팰리세이즈에 위치한 IBM 임원 브리핑센터에서 진행되었다. 2주간 몰입했던 과정은 '과제 중심 문제 해결 방법(Issue based Problem Solving)'이었다.


과제 정의부터 가설 설정, 데이터 검증, 결론 도출, 그리고 최종 보고서 작성까지 이어지는 논리의 정석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오전에는 쉼 없는 강의가 이어졌고, 오후에는 늦은 저녁까지 그룹 토의와 발표가 반복되는 강행군이었다.


훗날, 이 과정을 한국 직원을 위한 1주일 단기 커리큘럼으로 재구성해 운영했는데, 당시 실시한 교육 중 역대 최고 수준의 만족도를 기록하며 그 가치를 증명하기도 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매일 늦은 저녁 식사를 했던 초밥집이 있었다. 2주간 우리 일행에게 영어로만 얘기하던 주인 부부가 한국어로 말을 걸어왔을 때 깜짝 놀랐다. 딸 교육을 위해 한국 대기업 부장 자리를 박차고 이민을 왔다는데, 스시 맛에 자신이 없어서 한국인 손님이 오면 한국 사람이 아닌 척했다고 한다. 그런데, 맛이 없었다면 우리가 굳이 매일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초를 다진 후, 경영혁신 컨설턴트로서 다시 방법론 심화 교육이 이어졌다. 장소는 SAP R/3 PP 인증 교육을 받았던 벨기에의 IBM 라훌프 교육센터였다. 일명 '라훌프 감옥'이라 불릴 만큼 악명 높은 몰입도를 자랑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프로세스 모델링을 비롯해 SWOT, 근본원인 분석, 5-Force 경쟁세력 모델, 가치 사슬, 핵심 성공요인, 매스 커스터마이징, 전략적 정렬 등 방대한 분석 기법과 실제 경영혁신 사례들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역시 오전 강의와 오후 그룹 토의 및 발표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치열한 일정이었다.


벨기에의 국민 음식으로 뮐 마리니에르라는 음식이 있는데, 겉보기는 홍합탕과 똑같이 생겼지만 맛은 전혀 딴판이어서 다시 먹고 싶은 생각은 없다. 주말엔 중국에서 온 직원과 함께 차를 빌려 암스테르담까지 여행하고 왔다. 반고흐 미술관과 운하, 홍등가가 인상적이었다.



5. SAP R/3 PP 인증 컨설턴트 교육


H중공업 조선사업부 프로젝트가 한창이던 시절, 국내에는 SAP R/3가 본격적으로 상륙하고 있었다. 당시 총괄 PM의 배려 덕분에 프로세스 혁신 단계 이후의 정보시스템 설계 단계를 대비한 SAP R/3 PP 인증 컨설턴트 교육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교육 장소는 벨기에 브뤼셀 남동쪽 숲속에 위치한 IBM 라훌프 교육센터였다. 1990년대까지 전 세계 IBM 직원과 고객 교육의 성지로 불렸던 이곳은, 역설적으로 "주변에 할 게 아무것도 없어서 할 수 없이 공부를 하게 된다."는 천혜의 감옥으로 더 유명했다.


큰길에서 20분 넘게 숲길을 걸어 들어가야 나타나는 캠퍼스는 지형을 따라 낮게 깔린 건물들과 그 사이를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산토끼들이 어우러진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하지만 그 평화로움은 고강도 교육에 지친 교육생들이 잠시 숨을 돌리는 산책로에서나 누릴 수 있는 사치였다.


라훌프의 생활은 철저히 실용적이고 평등했다. 임원부터 신입사원까지 모두가 같은 식당과 숙소를 사용했는데, 특히 숙소는 장식이 전무한 1인실로 TV조차 없었다. 책상, 침대, 샤워실 그리고 창문 하나가 전부인 4평 남짓한 숙소는 "이곳은 즐기는 곳이 아니라, 오직 사고하고 학습하는 곳이다."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숲이 내다보이는 중앙 식당은 단순한 식사 공간이 아닌 확장된 교실이었다. 아침에는 강사와 교육생이 격의 없이 섞여 식사했고, 점심에는 그룹별 케이스 토론이, 저녁에는 맥주 한잔을 곁들인 자유 토론이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4주 내내 저녁에 비프스테이크만 먹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식당에서는 두 종류의 저녁 메뉴가 제공되었다.


매일 똑같은 맛의 비프스테이크가 고정으로 나왔고, 다른 하나는 매일 종류가 바뀌는데, 재료가 무엇들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내 취향은 아니었다. 오죽하면 "낮에 건물 사이를 뛰어다니던 산토끼가 저녁 접시 위에 올라온다."는 농담이 돌 정도였다.


그때는 몰랐던 사실이지만, 우리가 토끼(Rabbit)라 부르는 식용 집토끼는 산토끼(Hare)와 번식조차 되지 않는 별개의 종이라고 하니, 그저 고된 교육 중 터져 나온 교육생들의 애환 섞인 유머였으리라.


MRP 시스템 프로젝트 경험이 많았던 터라 초반엔 다소 방심했다. 그러나 첫 주 모의 인증시험에서 낙제 성적표를 받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험은 MRP 이론뿐 아니라 R/3 화면의 세세한 구성까지 묻는 고약한 문제들로 가득했다. 100점 만점에 60점대라는 충격적인 점수는 스스로를 강행군의 길로 밀어 넣었다.


2주 차부터는 강의와 토론, 발표의 무한 반복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통째로 외워버리는 한국식 암기법까지 동원했다. 4주간의 일정이 이어지다 보니 머리카락이 덥수룩해져 주말에 겨우 이발소 예약을 잡아야 할 정도였다.


마침내 브뤼셀 SAP 센터에서 치른 최종 시험. 다행히 주입식으로 암기하는 한국식 정답 찾기 중심 공부 방법이 오지선다형 시험에서 효과를 발휘했고, 기분 좋은 예감과 함께 시험장을 나설 수 있었다.


귀국길, 비행기 바퀴가 지면에서 떨어지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착륙하는 충격에 눈을 뜰 때까지 단 한 번도 깨지 않았을 만큼, 라훌프에서의 시간은 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게 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IBM 내부에서 "라훌프에서 교육받았다."는 말은 컨설턴트로서 한 단계 격상되었음을 상징하는 훈장과도 같았다.


이제 라훌프는 더 이상 IBM의 교육센터가 아닌 일반 호텔로 변모했지만, 지도 위에서 사라진 그 장소의 이름은 내 기억 속에서 여전히 전문가로 거듭나던 신화적인 공간으로 남아 있다.



6. 세일즈 방법론 교육


IBM은 오랜 B2B 세일즈 경험을 집대성하여 ‘고객 중심 세일즈 방법론’을 구축했는데, 이것이 바로 SSM(Signature Selling Method)이다. SSM의 핵심은 단순히 ‘물건을 잘 파는 기술’에 있지 않다. 고객의 실제 구매 여정(Buying Journey)에 맞춰 우리의 세일즈 활동을 설계하고 관리하는 체계라는 점이 본질이다.


SSM이 추구하는 핵심 철학은,

.고객 중심 : 제품의 기능이 아닌, 고객의 비즈니스 문제 해결에 집중

.일관성 : 전 세계 모든 IBM 세일즈 인력이 동일한 단계와 기준에 따라 세일즈 수행

.재현 가능성 : 성공적인 사례를 체계화하여 누구나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가이드


여기에는 “세일즈는 개인의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표준화되고 관리 가능한 과학이자 프로세스다.”라는 IBM의 철학이 투영되어 있다.


SSM은 크게 세 개의 방대한 지적 자산 요소로 구성된다.

.프로세스 : 고객의 구매 단계와 완벽히 동기화된 세일즈 단계 정의

.실행 도구 : 단계별 체크리스트, 템플릿, 가이드라인 등. 예) BANT, 구매성향분석, Power map

.관리 체계 : 조직 차원의 리뷰 미팅 및 성과 관리 체계


물론, 이 모든 과정은 IT 시스템을 통해 실시간으로 지원되어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을 가능케 한다.


SSM을 본격적으로 전사에 도입하기 전, 나는 일선 세일즈 조직에 이 방법론과 툴 사용법을 전파하는 강사 요원으로 차출되어 집중 교육을 받았다.


교육 과정 중 가장 흥미로웠던 대목은 SSM의 각 단계에 '병법 36계'를 대입해 설명한 부분이었다. 자칫 딱딱할 수 있는 세일즈 전략을 동양의 병법과 매칭하여 구체적인 행동 예시와 전술로 풀어낸 지점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비즈니스 전쟁터에서 승리하기 위한, 이 정교한 프레임워크는 훗날 타고난 세일즈 기질이 없는 내 세일즈 경력에 든든한 기초가 되었다. “세일즈는 개인의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표준화되고 관리 가능한 과학이자 프로세스다.”라는 IBM의 철학이 상당 부분 맞다고 생각한다.


다른 글에서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이 흥미로운 방법론을 정리해 보려 한다.



7. Master Deal Maker 교육


IBM GBS의 컨설팅 파트너로 활동하던 중, 글로벌 협업 경험을 높이 평가받아 IBM GES(Global Engineering Services)의 초대 한국 세일즈 총괄 임원이라는 중책을 맡게 되었다.


GES는 IBM의 방대한 R&D 지적 자산을 서비스화해 고객에게 제공하는 첨단 부서였다. 주요 자산으로는 게임 콘솔(Xbox 360, PS3 등)과 가라오케 기계에 탑재되던 POWER 기반 CPU, 슈퍼컴퓨터용 Cell 프로세서, 300mm 웨이퍼 반도체 공정 노하우, 그리고 각종 내장형 소프트웨어와 음성 인식 기술 등이 있었다.


국내 고객사와 초대형 계약을 성사시킨 후, 매니저의 추천으로 MDM(Master Deal Maker) 교육에 참여하게 되었다. 일종의 포상 교육이라 생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발을 들였으나, 그 오판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총 6개월에 걸친 이 과정에는 아시아 전역의 노련한 딜 메이커들이 집결했다. 초기 2개월의 원격 학습을 마친 뒤 향한 곳은 상하이의 한 비즈니스 스쿨이었다. 오전에는 재무제표를 통해 기업의 건강 상태를 정밀 진단하는 법을 배웠고, 오후에는 익명 기업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잠재적 문제점을 찾아내고 해결 가설을 세우는 끝장 토론이 이어졌다.


다시 2개월 뒤, 베이징의 비즈니스 스쿨에서 2차 집합 교육이 시작되었다. 이번 과제는 앞서 분석한 기업을 대상으로 초대형 비즈니스 제안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전략적 통찰을 담은 제안서 초안을 만들고 발표하며, 날카로운 피드백 속에서 제안의 완성도를 높여갔다.


마지막 관문은 싱가포르의 인시아드(INSEAD) 비즈니스 스쿨이었다. 이곳에서는 가상의 고객사와 최종 계약을 체결하기 위한 극한의 협상 시뮬레이션이 기다리고 있었다.


INSEAD 교수진은 때로는 냉철한 코치로, 때로는 까다로운 고객사 CEO와 CFO로 분해 나를 압박했다. 교육 마지막 날, 그들로부터 최종 계약서 사인을 받아내고서야 비로소 'Master Deal Maker' 자격증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수많은 세일즈 교육을 거쳤지만, MDM 코스는 초대형 전략적 비즈니스를 발굴하고 최종 계약에 이르기까지의 거시적 안목을 길러준 결정적 계기였다. 비록 정식 학위는 없으나, '미니 MBA'라 불러도 손색없을 만큼 알차고 보람찬 성취였다.



독일의 오래된 산업 도시에서 싱가포르의 팽팽한 협상 테이블까지, 나의 커리어는 끊임없이 새로운 지도를 손에 넣고 미지의 목적지로 자신을 던지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치밀하고 촘촘한 교육훈련 프로그램은 단순한 지식을 넘어, 복잡한 문제를 논리로 격파하는 법과 숫자에 숨겨진 진실을 읽는 안목을 가르쳐주었다.


이제 내 손에 파란색 매뉴얼은 없지만, 치열했던 습득과 실패의 기억은 본능이 되어 흐른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하이델베르크와 진델핑겐과 라훌프를 만난다. 때로는 헤매기도 하며 좌절도 하겠지만, 그 길을 끝까지 걸어본 자만이 자신만의 Master Deal을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혹여 지금 지도 밖을 서성이는 이들에게 이 기록이 작은 위로와 동기부여가 되기를 바란다. 잠시 길을 잃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 모든 방황이 결국 당신을 가장 높은 곳으로 인도할 가장 가치 있는 경로가 될 것이기에.


작가의 이전글11. 나이로 모실까요, 원칙으로 모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