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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책 Feb 28. 2024

인어할매

5월의 봄밤이었다. 봄이 제철인 도다리를 먹어야 한다는 손님들로 토요일 저녁 어시장은 북적였다. 내가 일하는 영경횟집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미친 듯이 도다리회를 뜨고 있었다. 한창 바쁜데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도와주세요. 영경 님. 도와주세요.”

도와달라고? 너무 바빠 헛소리가 들리나 싶었다. 하지만 소리는 점점 크게 들려서 대체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찾기 시작했다. 

“여기예요. 여기. 수족관 안이에요.”

뭐지? 내 마음의 소리가 들리나. 수족관을 들여다보니 도다리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네. 저예요. 영경 님. 제가 당신을 불렀어요.”

세상에. 도다리 소리가 들리다니. 미쳤나 봐. 요즘 너무 피곤했나. 

“아니에요. 제가 부른 게 맞아요. 제소리가 닿기를 계속 연습하고 있었어요. 저를 따로 다른 수족관으로 옮겨 주시겠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도다리회 뜬다고 바빠 죽겠는데 이 도다리는 대체 왜 저러는 거야. 네가 진짜 내는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시끄럽다. 정신이 없어.

“일단 저를 옮겨주시면 조용히 하고 있을게요. 오늘 영경 님 손에 회가 되고 싶진 않아서 소리를 꼭 내고 싶었어요. 부탁드려요.”

그래. 일단 너를 옮기고 주문받은 회를 쳐내자. 저 시끄러운 도다리를 비어있는 수족관에 옮겨놓고 다시 도다리회를 뜨기 시작했다. 드디어 도다리 소리에서 해방되었다. 


영경횟집은 10시가 마감 시간이지만 오늘은 숨 쉴 틈이 없던 토요일 저녁이라 주방과 홀 모두 다 정리하고 보니 어느새 11시가 넘었다. 오늘도 정신없이 하루가 마무리되어 간다.

“누나. 오늘도 수고 많았어. 내일은 조금 더 일찍 문을 열어야 할 것 같다.”

영준이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내 앞에서 담배 좀 피우지 말라고 그렇게 잔소리해도 들어먹지 않는다. 담배 냄새를 맡기 싫어서 숨을 참으며 대답한다.

“그래. 영준아. 너도 수고 많았다. 내가 조금 더 일찍 오면 되지. 나이 들면 새벽잠도 없어지더라. 푹 쉬고 내일 보자. 먼저 들어가.”

열 살 차이 나는 남동생 영준. 영경횟집의 사장이다. 

뭘 모르는 사람들은 영경횟집의 사장이 영경. 나인 줄 알았다. 첫딸인 내가 태어난 해에 아빠와 엄마가 시작한 영경횟집. 아빠는 내 이름과 같은 이름으로 횟집 이름을 지었다. 내 이름과 같아서일까. 고등학생 때 돌아가신 아빠 대신 주방 일을 도우러 갔다가 평생을 영경횟집과 함께하게 될지는 몰랐다. 내 나이가 벌써 예순둘이라니. 

가게 문을 잠그려고 마지막 확인을 하는데 어디선가 또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영경 님. 도와주세요.”

아. 저 도다리. 정신없는 사이에 잊고 있었네. 내가 미친 건지. 환청이 아닐까도 했는데 한 번 확인이나 해보자. 수족관에 가서 도다리를 보았다.  

“저를 영경 님 집으로 데려가 주세요. 드릴 말씀이 있어요. 부탁드려요.”

아. 작지도 않은 저 도다리가 대체 왜 저러는 거야. 그냥 여기서 말하면 안 되니?

“여기가 불안해요. 꼭 데려가 주세요. 제발.”

제발까지 나오다니. 그래. 일단 가보자. 큰 반찬통에 수족관 물을 담고 도다리를 옮겼다. 무거워서 집까지 걸어서 가기는 글렀네. 오늘은 택시를 타야겠다.


집에 도착했다. 유일한 재산인 24평 아파트. 엄마와 둘이 살다가 십 년 전 엄마가 돌아가신 후 나는 이 아파트를 물려받고, 영준은 영경횟집을 물려받았다. 시세로 따지면 이 아파트가 조금 더 비싸지만, 영경횟집은 돈을 계속 벌 수 있으니 식구가 딸린 영준에게 당연히 영경횟집이 갈 거라 생각했다. 동생인 영준에게 월급을 받아야 한다니 한편으로는 억울하기도 했다. 

영준은 대학교도 나오고 다른 회사를 전전하다가 서른다섯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지자, 횟집에 기어들어 왔다. 엄마 몸이 불편하실 거라며 엄마 대신 계산대를 보기 시작했다. 엄마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홀을 도왔다. 영준이 보기 싫어서 횟집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해볼까도 고민했지만 사십 대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고졸 출신에 횟집 주방 일만 했던 내가 다른 일을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는 횟집이 망할까 봐 그만둘 수 없었다. 영준에게 오롯이 영경횟집을 맡길 수는 없었으니까.


식탁에 반찬통을 올려두고 뚜껑을 열었다. 살아있니? 도다리.

“네. 좁기는 하지만 전 괜찮아요. 정신없는 수족관보다 여기가 더 좋아요.”

너는 내 마음이 들리는 거야?

“네. 영경 님은 특별한 사람이니까요. 횟집에서 일하시면서 종종 물고기 소리를 듣지 않으셨나요?”

사실 한 번씩 약하게 물고기들의 소리가 들리긴 했지. 잘못 들은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었나?

“그래서 용궁에서 제가 왔어요. 영경 님께 우리들의 전쟁을 도와달라는 남해 용왕님의 전언을 가지고 왔습니다.”

용궁? 용왕? 전언?

“저는 남해 용왕님의 사자로 왔습니다. 곧 벌어질 동해와의 전쟁에 영경 님의 참전을 요청하는 전언을 가지고 왔어요.”

남해와 동해가 왜 전쟁하는 건지. 대체 무슨 소리야?

“올해 즉위한 동해 용왕님께서 우리 남해 용왕님의 딸 용녀님께 억지로 청혼하시는 바람에 바다 세계에서는 6월부터 전쟁을 시작합니다. 용녀님께서는 이미 정혼을 약속한 분이 계십니다. 절대로 패배해서는 안 되는 전쟁이라 부득이하게 육지 분들께 도움을 요청하고 있어요.”

아니. 내가 전쟁에 가서 무슨 도움이 된다고. 왜 나를 부르러 여기까지 온 거야.

“영경 님께서는 누구보다 칼을 잘 다루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우리들과 대화할 수 있는 인간은 찾기 어렵습니다. 제 목숨을 걸고 영경 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저와 함께 부디 전쟁에 참전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토요일 봄밤. 드디어 미쳐 버린 건가. 도다리와 대화를 하고. 도다리는 나를 전쟁에 참전하라고 하고. 믿을 수가 없네.

“저를 믿어주셔야 합니다. 저희를 도울 수 있는 인간은 많지 않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수영도 하지 못하는데 바다에 가서 전쟁을 어떻게 하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네.

“제가 가지고 있는 약을 드시면 땅에서 생활하시는 것처럼 바다에서도 똑같이 숨을 쉴 수 있고,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약이 어디에 있는데?

“잠시 저를 물 밖으로 옮겨주시겠어요?”

도다리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려두었더니 작은 알약을 뱉었다. 네 안에 있던 약을 나더러 먹으라고?

“저를 다시 물로 넣어주시겠어요? 이제 힘들어요.”

물에 다시 넣었더니 도다리가 또 설득하기 시작했다.

“전쟁에 참전만 해주시면 승패와 관계없이 보답으로 용궁의 보물을 드립니다. 인간이 좋아하는 금부터 보석까지 원하시는 만큼 드려요. 부디 일주일만 전쟁에 참전해 주세요.”

승패에 상관없이 보답이 있다니. 듣던 중 반가운 소리인데. 여태 마음속으로 물어보다가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물었다.

“그럼, 언제 출발하면 되는데?”

도다리가 뱉어놓은 약을 만지작거리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5월 29일 월요일 새벽 5시 합포수변공원. 반찬통과 배낭을 들고 택시에서 내렸다. 

시간과 위치는 잘 정해둔 거. 맞지?

“네. 5시 30분 빨간 등대 앞으로 영경 님과 저를 데리러 용궁에서 배가 올 거예요.”

배낭에서 회칼 가방을 꺼냈다. 방수되는 회칼 가방을 찾느라 고생 좀 했다. 입고 온 옷과 신발은 벗어서 배낭에 넣었고, 나는 검은 비키니 차림이 되었다. 언젠가는 입어보고 싶었던 비키니를 이렇게 입어보다니. 이른 시간이라 다행히 우리밖에 없어서 망정이지. 다른 사람이 이 모습을 봤다면 할머니가 노망 났다고 신고 들어가지 않았을까. 나무 뒤에 배낭을 잘 숨기고 회칼 가방을 들었다. 우리는 빨간 등대로 가야 한다.


영준에게 휴식과 여행을 핑계로 넉넉하게 이주일 휴가를 얻었다. 아니, 어쩌면 더 이상 영경횟집에서 일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파트에는 유언장을 남겨두었고 미리 공증해 놓았다. 6월 12일까지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전 재산은 마산애육원에 기부한다고. 전쟁이라는데 살아서 꼭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잖아. 그런데 왜 참전하냐고?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사십 대에 겁이 나서 다시 시작해 보지 못했던 삶. 육십 대가 되니 오히려 겁이 없어졌다. 살 만큼 살기도 했지. 

도다리가 준 약을 먹고, 물론 약은 깨끗하게 씻었다. 목욕탕에 가서 물속을 둥둥 떠다니니 기분도 좋고 허리도 덜 아팠다. 원 없이 칼질을 해보았지만, 바다 세계는 또 어떤지 도전해 보자. 운이 좋다면 용궁의 보물도 얻을 수 있잖아.


빨간 등대에 도착해 반찬통에 있는 도다리를 꺼내 바다로 보내주었다. 내 고향 마산 바다는 보기만 했을 뿐인데 처음으로 뛰어 들어가 보네. 첨벙!


나는 인어할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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