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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Jan 24. 2019

첫째를 둘째처럼 키울 수만 있다면

엄마는 왜 자꾸 나만 혼내?


며칠 전, 육아동지 J를 만났다. 우린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살아가는 얘기들을 나눴다. 나의 둘째 아이와 J의 첫째 아이는 동갑이고 어린이집 같은 반이다. J는 작년에 내가 했던 이야기가 기억에 오래 남는다 했다. 그 때 내가 그랬단다.


나는 둘째는 발로 키워. 그 만큼 쉽다는 게 아니고, 내 두 손과 모든 관심이 온통 첫째에게 가 있으니 둘째는 할 수 없이 발로밖에 못 키운다는 뜻이야. 내 신경의 85퍼센트는 첫째를 향해 있어서 둘째의 몫은 별로 없지.


당시 나의 이야기를 복기한 J가 덧붙였다.


-그 때 그 말이 요즘에서야 실감이 나. 첫째를 키우면서 보니 진짜 나도 둘째는 발로 키우고 있는 거 있지.



아마 작년 쯤 저런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첫째 6세, 둘째 4세일 때. 아이들이 한 살 씩 더 먹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내 삶의 패턴은 첫째 위주로 돌아가고 있고, 둘째는 그 때 그 때 상황에 맞게 '적당히' 키워지고 있다.


부모에게 안겨진 첫 번째 아이. 그 어떤 말로도 형용하기 힘든 커다란 의미. 그 땐 둘째나 셋째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니, '첫째 아이'일지 '유일한 아이'일지 모르는 어화둥둥 내 사랑. 불면 날아갈까 만지면 깨질까, 소중해서 어쩔 줄 모르는 금지옥엽 내 새끼.

자연히
부모의 관심, 기대, 부담, 질책, 희망까지도 한 몸에 받게 되는 이 세상 많은 첫째들.




근데 엄마는 왜 자꾸 나만 혼내?


아이들을 재우려고 불 끄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문득 첫째 아이가 담백한 어조로 물었다. 동생한테는 안 그러잖아, 엄마. 나는 흠칫 놀랐다. 그 동안 자신과 동생을 대하는 엄마의 태도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는 게 미안하면서도 두려웠다. 행여 아이의 '엄마는 나만 혼낸다'는 인식이 나도 모르게 끼칠 후폭풍이 있을까 싶어서.
 

동생은 아직 어리잖아. 저런 행동을 하는게 당연하지. 하지만 너는 벌써 일곱 살 오빠잖니. 어쩌고저쩌고 나름대로 이유를 대가며 둘러댔지만, 차분한 아이에 비해 난 허둥지둥 변명하기에 급급했다.



어찌어찌 아이들을 재우고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았다. 첫째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혼을 전혀 내지 않고 키울 수는 없지만 분명 두 아이 사이에 빈도 차이가 나고 있었다. 7세에게 요구되는 태도와 5세에게 요구되는 태도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4세였던 첫째에게 지금 5세인 둘째보다 더 훈육을 많이 했던 것만은 확실하다.


반면 첫째에게 기대나 관심이 집중되는 만큼 둘째에게는 그렇지 않다. 뭘 못해도 '그런가 보다', 뭘 잘해도 '그런가 보다', 어쩌면 잘하는지 못하는지 인식도 잘 안될 때가 많을 지경이다. 첫째 때는 작은 것 하나하나 인터넷 검색 눈 빠지게 하고 다른 아이들에 비해 조금 늦으면 큰일이 난 줄 알지만, 둘째는 이미 마음의 여유부터 다르다. 두 돌이 지나면서부터 숫자와 알파벳을 읽던 첫째에 비하면, 네 돌이 다 되어가는 5세에도 한 자리 숫자조차 헷갈려 하는 둘째는 까막눈이나 다름없는 요즘의 상황. 그 마저도 마냥 귀여워보이고 허용적인 나의 이중잣대. 아이는 벌써 눈치채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첫째에겐 지나치게 엄격하고 둘째에겐 한없이 관대하다. 첫째와 둘째의 물리적 나이와는 상관없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 기준과 시선 자체가 왜곡되어 있는 때문일 게다. 나의 일곱 살은 기억도 잘 나지 않을 만큼 어리디 어린 나이인데, 왜 난 그런 일곱 살의 '큰 애'를 자꾸만 '다  애' 취급하는 것인지.



첫째 아이를 둘째, 또는 셋째처럼 키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발로 키우듯 '적당히' 키울 수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아이에게 향하는 관심도 조금 내려놓고, 부담도 조금 덜어주고.

망할 놈의 '다 큰 아이 취급'은 집어치우고.




2019년 1월

매일 다짐하고 매일 반성하고 매일매일이 쉽지 않은,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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