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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ckerair Apr 03. 2020

'인생 드라마' <멜로가 체질>은 왜 시청률이 낮았을까

많은 이들의 '인생 드라마'가 1% 대의 시청률을 기록한 이유

※<멜로가 체질>의 결말에 관한 내용이 있습니다!





<멜로가 체질> 5화. 고리타분해 보이는 방송국 임원들 앞에서 드라마 작가 임진주(천우희)와 PD 손범수(안재홍)가 드라마 편성을 위해서 프레젠테이션를 한다. 임진주 작가가 쓴 '서른 되면 괜찮아져요'라는 제목의 드라마는 '평범한 세 여성의 일과 사랑'을 담았으며 '당장의 떡밥이 아닌 감정 이입, 공감, 그리고 캐릭터의 힘'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멜로가 체질>을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서른 되면 괜찮아져요'라는 드라마 속의 드라마가 사실은 <멜로가 체질> 드라마 자체를 의미하는 메타포라는 걸.


<멜로가 체질> 마지막 회. 드라마 PD 손범수가 침울한 목소리를 숨기지 못하면서 작가 임진주에게 말한다. "작가님, 시청률 아무것도 아니에요. 요즘에 누가 가구 시청률을 봐? 우리 화제성 되게 높은 거 알죠?" 슬프게도 <멜로가 체질>을 본 사람이라면 역시나 알 수 있다. 이 대사에서 말하고 있는 드라마도 '서른 되면 괜찮아져요'인 것은 맞지만 사실은 <멜로가 체질>이기도 하다는 걸.



<멜로가 체질>은 많은 이들에게 '인생 드라마'라는 호평을 받는 드라마다. 호평은 현재 진행형이다. 방영한 지 6개월이 넘었지만, 현재까지도 넷플릭스의 '오늘 TV 프로그램 순위 10 차트'에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드라마 속 명대사를 담은 장면들이 많은 이들에게 짤로 제작되어 SNS에 공유되고 있다. 특히 나의 주변 사람들도 이 드라마에 '인생 드라마'라는 칭호까지 붙이며 추천해주었다. 그리하여 이 드라마를 보게 되었고, 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들이 가볍게 볼 수 있도록 만든 기획물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관계에 대한 고찰이 담긴 작품이기 때문이다.


나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았지만, 이 드라마가 남긴 수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멜로가 체질>은 1% 대의 가구 시청률을 기록했다. 극 중 손범수 PD의 대사처럼 지금은 가구 시청률이 드라마 흥행을 가늠하는 유일한 지표라고 볼 수는 없다. 지금은 화제성, PC 및 모바일 시청자 수, 다운로드 수 등 다양한 지표가 존재한다. 더군다나 드라마가 방영했던 금・토 밤 11시는 대한민국 TV에서 가장 재미있는 프로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시간대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멜로가 체질>을 보면서 1%대라는 가구 시청률이 어느 정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은 '인생 드라마'라고 말하며 열광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을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보았다.





한 회 정도는 넘겨도 될 만한 이야기


5화의 드라마 PT 장면에서 국장급 임원이 드라마를 두고 PD와 작가에게 지적한다. "드라마는 모름지기 다음 회가 궁금해야 하는데...한 회 정도는 안 보고 넘겨도 될 만한 시리즈물, 뭔가 불안하지 않아요?" <멜로가 체질>의 대사들은 꽤나 디테일이 살아있다. 그래서 이 국장급 임원의 대사를 들으면, 이병헌 감독이 실제로 <멜로가 체질>의 프레젠테이션을 하다가 이 대사를 들은 게 아닐까 싶은 합리적 의심이 든다.


드라마의 주인공인 임진주, 이은정(전여빈), 황한주(한지은)은 각자의 '멜로'를 가지고 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인공 임진주는 PD 손범수에게 마음을 느끼지만 역시 드라마 PD이자 전 남자친구인 김환동이 내심 신경 쓰이기도 한다. 그리고 손범수와 김환동은 나름 대로 임진주를 놓고 신경전 아닌 신경전을 펼치기도 한다. 하지만 임진주는 김환동이 그저 전 남자친구라는 사실 때문에 신경쓰일 뿐 연인으로서는 일말의 애정도 없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시청자 입장에서 보면 삼각관계는 아니고 그저 자연스럽게 임진주랑 손범수가 연인이 될 거라고 예측할 수 밖에 없다. 여자 주인공이 어떤 남자와 이어질까 추리하게 되는 긴장감이 보통 멜로드라마에는 있기 마련이지만, <멜로가 체질>에는 그런 긴장감이 없다. 



이은정은 세상을 떠난 남자친구 홍대와의 '멜로'를 보여준다. 이은정의 혼란스러운 기억과 내면으로 인해 유령 홍대는 계속 소환된다. 하지만 결국 자신을 직접 마주하고 병원 치료를 병행하며 홍대가 실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우악스럽지만 엉뚱한 매력을 지닌 상수와 썸을 시작하게 된다. 황한주는 회사의 신입 사원인 추재훈과의 '멜로'가 그려진다. 상사와 부하 직원 관계라는 점에서 황한주와 추재훈은 회사 내의 멘토와 멘티이기는 하지만 연애 관계에서도 황한주는 멘토 역할을 한다. 이들의 관계는 드라마 내내 썸처럼 그려지지만 결국 마지막화로 갈수록 황한주는 더욱 멘토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스스로 성장한다. 멘티인 추재훈도 복잡했던 자신의 내면을 차차 정리한다.


<멜로가 체질>에서 '멜로'의 지향점은 여러 가지 멜로의 본질을 보여주고자 하는 목적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임진주의 '멜로'는 손범수와의 관계를 통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때의 설렘을 보여주고, 전 남친 김환동과의 관계는 과거의 사랑을 잊고 정리하는 성숙함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이은정의 '멜로'는 실존하지 않는 사랑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정신적인 측면에 대해서 말하고, 황한주의 '멜로'는 타인의 어리숙한 사랑을 보면서 성찰을 얻는 성장에 대해서 말한다. 이러한 주인공들 이외에도 다양한 조연들의 '멜로'도 소홀히 하지 않고 보여준다(중년 부부, 동성애자, 연예인과 매니저 등).



결론적으로 이야기의 진행으로만 놓고 보면 예측 가능한 테두리 안에 있기에 그저 평이하게 전개된다고 볼 수 있다. 여느 멜로 드라마처럼 시청자가 러브라인을 추리할 수 있는 이야기도 아니고, 서사를 뒤흔들 만한 '사건'도 특별히 존재하지 않는다. 당연히 자극적인 클라이맥스도 없다. 오히려 선호하는 방향은 무자극에 가깝다. 시청자로서 누구와 누가 이어질까 맞출 수 있도록 만들어낸 추리 요소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슬프게도 국장은 한 회 정도는 넘겨도 된다고 말했나 보다. 그 대사가 실제 <멜로가 체질>의 프레젠테이션에서 나왔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수다 블록버스터의 명과 암


'본격 수다 블록버스터'. <멜로가 체질>이 강조하는 캐치프레이즈다. <멜로가 체질>의 인물들은 거의 모두 말을 엄청나게 잘한다. 심지어 황한주의 아들인 초등학생 인국이조차 말을 잘한다. 무엇보다 모든 인물이 엄청난 양의 대사를 내뱉는다. 그래서 드라마에서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의 티키타카를 보는 재미가 있다. 이 드라마의 수다는 엄청난 분량을 자랑하기 때문에 '수다 블록버스터'라는 명칭이 납득 가능하다.


그런데 그저 대사만 많은 드라마는 아니다. 주인공들을 포함하여 조연들까지, 대부분의 인물은 스스로의 사유와 경험을 통해서 만들어낸 자신만의 말을 할 줄 안다. 특히 인생과 연애를 주제로 한 아포리즘 카테고리에 속하는 대사들은 <멜로가 체질>이라는 작품의 상징과도 같다. 드라마에서도 이러한 대사들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매번 드라마의 한 회차가 끝날 때마다 그 회차의 명대사를 3~4개씩 드라마의 장면과 함께 보여주기도 했다. 이러한 대사들은 <멜로가 체질>의 팬들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다. 또한, 현재 드라마가 SNS에서 바이럴 되고 있는 이유이며 여전히 넷플릭스에서 대중들이 즐겨보는 요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멜로가 체질>은 대사가 많아도 너무 많다. 당연히 '본격 수다 블록버스터'니까 대사가 매우 많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 드라마에서는 서사를 뒤흔들 만한 엄청난 '사건'은 없다. 그 '사건'을 만드는 대신 제작진은 대화의 티키타카를 보여주는 데 연출력을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정말 재미있고 신선한 장면들이 눈에 띄는 드라마다. 하지만 그 대화의 티키타카는 모든 시청자에게 보기 편하게 다가오는 장면은 아닐 것이다. 특히 '가구 시청률'의 성패를 좌우하는 기성세대에게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막 청춘을 통과한 서른 살의 이야기라는 점도 기성세대에게는 부담이 되었을 법하지만, 드라마의 독특한 연출도 그 부담을 더했을 뿐 덜어내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이 드라마의 최대 장점인 아포리즘적 대사들도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드라마의 약점일 지도 모른다.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서는 조금 직설적이고 가르치는 느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본래 아포리즘이 지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오글거린다며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물론 이 대사들이 <멜로가 체질>을 누군가의 '인생 드라마'의 반열에 올려놓게 만든 건 분명하지만 말이다.




도전적인 시도를 한 작품은 대중들에게 소외되기 쉽다. 드라마를 제작하는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이성애적 연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다루는 멜로, 자극적인 사건이나 클라이맥스에 집중하기 보다는 보편적인 인생과 연애에 대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대사. <멜로가 체질>이 보여주는 작품의 요소들은 그야말로 도전적이었고 '가구 시청률'로만 보면 아쉬운 결과를 남겼다.


다만 그 진가를 알아주는 열렬한 팬이 생기기도 한다. <멜로가 체질>의 마지막화 클립을 보다가 이런 댓글을 발견했다. "이 드라마를 마지막까지 본 우리가 승자입니다." 이른바 컬트적인 작품을 향유하는 팬들 사이의 고정 레파토리 문구와 같은 저 문장에서 진한 팬심이 느껴졌다. 어쨌든 마지막화가 끝난 지 반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멜로가 체질>은 넷플릭스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듯 하다. 드라마의 진가를 알아주는 이들은 점차 늘어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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