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의 공공질서 1.

목욕탕 속의 세상.

by 주다

영하 15℃.

연휴의 끝자락,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날씨다.

우리의 계획은 썰매장이었으나 국가가 안전 안내 문자를 매일매일 정성스럽게 보내고 있지 않은가.

영하의 날씨에 눈까지 내려 결빙이 우려되니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운전 시에는 감속운행 바랍니다.라고

올 겨울 감기한 번 걸리지 않아 기특해 마지않은 아이들을 이 영하의 날씨에 썰매를 태운다는 건

감기야 어서 와 나랑 놀자 하고 불을 지피는 꼴.

걱정도 팔자인 엄마는 가까운 온천탕으로 발걸음을 옮기기로 했다.

코로나 터지고 만 3년이 넘도록 한 번을 가지 못했으니 아이들을 설득하기도 쉬울 터.

묵은 때를 벗겨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새해를 시작한다는 나름의 의미부여도 해보며 아이들을 이끌었다.



그리고 나는 3년 전 과는 다른 자유를 얻지 않았는가.

둘째가 만 4세가 넘기를 그렇게 고대했건만 만 4세가 되고 코로나로 인하여 온천을 갈 수 없었다.

3년의 한을 품고 오늘 당당히 자유롭게 여탕으로 혼자 입장하는 날.

아들 둘이라면 다들 안타까워하는 눈빛을 보내지만 오늘만은 내가 위너다.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타이밍.

아이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다 온천을 한 건지 잡기 놀이를 한 건지 알 수 없는 그날들이 떠오른다.

그래서 오늘의 콘셉트는 유유자적.

설레고 들뜬 마음을 안고 두 아이를 아빠에게 넘겨주며

“아빠 말 잘 들어”

라는 말과 함께 가벼운 총총걸음으로 여탕에 입장했다.




하지만 간과했다.

아 여기는 여탕이었지.

여탕이라 함은 씻을 자리 하나 차기하기도 힘든 전쟁 터.

사람은 없는데 씻을 자리마다

“여기 사람 있어요”를 외치는 물건들.

줄을 서서 모든 볼 일을 끝마친 사람이 나와야만 앉아서 씻을 수 있는 곳.

매의 눈으로 자리를 빠르게 스캔한다.

운 좋게 목욕재계를 끝내시고 나가시는 아주머니를 발견.

얼른 가서 다 씻으셨어요를 묻는 나의 신속함에 찬사를 보낸다.

역시 오늘은 되는 날이야를 외치며 자리에 앉아 목욕재계를 시작했다.

하지만 씻으면서도 나의 눈은 씻을 자리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에게로 시선이 옮겨갔다.

샴푸하나 수건하나 던져 놓고 여기는 내 자리니 사용하지 마시오라는 소리 없는 외침을 던지는 사람들.

탕에 들어가 있는 시간, 사우나를 하는 시간은 그나마 양반, 물건으로 자리 있음을 표현하고 찜질방에도 다녀오는 사람들.

법적으로 씻는 곳은 자리 맡음 안 돼요.라고 정해줬으면 좋겠다.



탕이나 사우나에 들어갈 거면 간단하게 샤워 후 내 물건은 잠시 위쪽에 정리해서 올려두고 다른 사람이 쓸 수 있게 하면 안 되는 건가.

물론 센스 있는 분들은 물건이 있어도 얼른 씻고 자리를 비우시긴 하지만 나 같은 소심쟁이들은 다른 사람의 물건이 있는 자리에서 씻으면 도둑질하는 거마냥 불안한 마음에 긴 줄의 기다림을 택하게 된다.

나부터라도 달라져 보자라는 생각에 얼른 씻고 내 물건을 정리해 한쪽에 올려놓는다.

두리번두리번 자리를 찾는 아주머니에게 여기 쓰세요.라고 말씀드렸더니,

너무나 환한 웃음으로 감사인사를 하는 아주머니.

그 아주머니도 기분 좋은 선순환의 길에 동참하시길 기원하며 따뜻한 탕 안으로 몸을 담갔다.

탕 안에 혼자 있으니 신선이 따로 없구나. 그 따뜻함이 나를 좀 더 너그러운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만 같다.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도 들려왔다.

여유란 게 이런 거구나. 다른 사람의 세상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지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쯤



시선을 잡아끄는 할머니와 아기가 보였다.

할머니가 돌도 안 지난 아이를 안고 탕으로 들어오셨다.

오동통한 소시지 같은 팔다리에 눈이 안 갈 수가 없는 존재감.

거기에 어쩜 그렇게 얌전한지 찡찡거림 한 번 없는 무념무상의 눈빛.

할머니가 뜨거운 온탕에 데리고 들어와도 가만히 여유를 즐기는 교만함.

저온탕, 냉탕에 데리고 들어가도 우는 법이 없다.

그 나태함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온천탕의 붙박이 신들인 삼총사 아주머니들께서 하는 소리들이 내 귀에 박힌다.

“아니 돌도 안 지난 애를 뜨거운 물에 한참 데리고 있는 것도 모자라 냉탕에까지 데리고 들어 가네”

“아고 몇 개월 이래, 뜨거운지 차가운지 표현도 못하는 애를 쯧”

“저렇게 안고 다니면 애가 목욕탕 물을 먹어도 모르겠네 원”

지나친 걱정, 관심.

정 걱정이 되면 아이 할머니에게 이러저러해서 걱정이 되네요 하면 될걸.

지나친 관심이 싫어 사우나로 몸을 옮겼다.



사우나에 앉아 그 무거운 공기를 주입하며 앉아있을 때 여기에도 탕 속에 있던 분들과 같은 느낌의 아우라를 뽐내시는 몇 분이 있음을 깨닫는다.

사우나를 제대로 즐기려면 필수품이라는 듯 화려한 땀복으로 중요 부위만 가려 입으시고 텀블러를 하나씩 들고 앉아계신 여유로운 포스.

그 구역을 호령하는 신들 같아 보였다.

그분들은 낯선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고 그분들만의 대화를 이어가셨다.

누구네 남편 정년퇴직했데. 누구네는 차를 제네시스로 바꿨데.

명절연휴에 여기 떼 돈 벌었겠어. 월요일 날 왔는데 줄이 줄이 끝이 없더라.

여탕 정수기 저번에도 고장 이더니 또 고장 났어. 일부러 생수 사 먹으라고 안 고치는 거 같아.

사소하고 소소한 남들의 이야기들. 정작 대화에 나의 이야기는 없다.

개방된 장소에서 나의 이야기는 껄끄러운 걸일까. 부담스러운 걸일까.

나도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본 남들의 이야기는 가히 편치만은 않았다.

그냥 흘러 넘기면 될 말 들이지만 과연 남들 입에 내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안주거리가 된다면 그리 유쾌하진 않을 거 같다.



나의 여유로움에서 생긴 호기심들은 다른 사람들을 통해 나를 되돌아보게 했다.

나 편하고자 그릇된 공공질서를 아이들에게 교육시키고 있진 않은지.
별 거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남의 이야기를 너무 쉽게 세상에 내보이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소식들과 생각들이 들어오니 허기가 몰려왔다.

일단 뭐라도 먹고 생각하자.



목욕탕의 공공질서 2. 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