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받지 못한 손님.
일상의 소중함에 대하여.
“쾅 쾅”
내 가슴이 두 방망이질 치기 시작한다.
불청객이 부지불식간에 집 한가운데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이틀사이에 이 불청객은 우리 집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의 낌새를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생각해 보면 토요일부터였다.
단풍이가 토요일에 갑자기 토하고 미열이 올라 소아과에서 수액과 영양제, 해열제를 맞추고 집에 왔었다.
의사는 노로 바이러스 같다고 했다. 의심의 여지없이 수액을 맞은 후 단풍이의 컨디션은 괜찮아 보였다.
저녁도 아픈 애 같지 않게 든든하게 먹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새벽에 몸이 따끈함을 느꼈다. 체온을 재보니 38.9℃
해열제를 먹이고 다시 잠을 재웠다.
다행히 열은 금세 떨어졌고 아침에 좋은 컨디션으로 일어나 TV를 보고 있었다.
아이가 다급하게 나를 부른다.
“엄마, 아빠가 꿈틀꿈틀 기어 나오고 있어.”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몰골이 말이 아니다.
어제 단풍이가 아파서 남편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몸살기가 있다고 했고 약을 먹고 작은 방으로 일찍 들어가 잠을 청했던 남편이었다.
얼굴을 보고 그냥 몸살이 아니 구나를 직감했다.
바로 코로나 자가진단 키트로 검사를 했다.
선명한 두 줄. 아닐 거야. 믿을 수 없다.
다시 하나를 꺼내 들어 검사한다.
역시나 두 줄.
“오 하늘이시여”
나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고 눈은 단풍이를 향한다.
단풍이도 분명히 열이 났었다. 의심해봤어야 했다.
다급하게 소리친다.
“모두 마스크 써” “그리고 단풍이는 엄마한테 와”
단풍이에게 미안하지만 코를 쑤셔 확인해야만 했다.
이런 제길 두 줄이다.
가을이와 나도 검사를 시행한다. 별다른 증상이 없던 우리 둘은 음성.
코로나 전 나에게 두 줄은 희망의 줄이었는데, 임신할 일 없는 나에게 두 줄은 고통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다.
두 줄을 확인하고 남편과 단풍이는 화장실 딸린 안방으로 격리를 고했다.
한 번 경험해 봤다고 군 말없이 아빠를 따라 들어가는 단풍이의 뒷모습이 물에 젖은 생쥐 꼴 마냥 처량하다.
일요일의 정오를 넘긴 시간에 신속항원 검사를 해주는 곳은 없다.
일단은 불청객의 투숙을 받아들이고 할 일들을 신속정확하게 처리해야 한다.
바빠지는 뇌와 손놀림.
어제 남편이 잤던 방과 화장실에 소독제를 뿌린다.
덮고 잤던 이불을 세탁하고 고온으로 건조기를 돌린다.
텅 빈 냉장고를 들여다보며 격리기간의 비축할 식량을 단백질 위주와 군것질거리들로 빠르게 주문한다.
점심부터는 양성자와 음성자의 식사를 따로 실시한다.
아픈 사람들에게 성의 없는 식사는 줄 수 없기에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두 명의 환자는 벽 하나를 앞에 두고 수천 번을 호출하기 시작한다.
정신이 없다. 내 손이 2개가 아니라 4개였으면 좋겠다.
물 좀 달라. 간식 좀 달라. 장난감 좀 넣어 달라.
요구가 여러 번 지속되다 보니 뭘 달라고 요구하면
“싫어”란 말이 먼저 나간다. 한 번에 얘기하든지.
한 숨을 쉬며 문 앞에 필요한 것들을 놓아둔다.
해줄 거면서 말은 왜 모질게 나가는 건지 원.
어쩌면 이 불청객이 나를 시험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있다고 믿는 나에게 너의 성장이 어느 정도인지 보아야겠다는 듯.
단계별로 테스트를 받고 있는 듯하다.
어려운 상황을 주고 이번엔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볼까 하는 음흉한 마음을 품은 채.
이대로 이 놈이 원하는 데로 끌려갈 수는 없다.
그래.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스스로를 다독이며 그날 저녁 가을이와 쓸쓸한 저녁식사를 시작했다.
식사를 하던 도중 가을이가 속마음을 내보인다.
“엄마, 단풍이는 왜 하루 종일 게임하고, 휴대폰 보는 거야? 나도 확진되면 할 거 안 하고 하루 종일 놀 수 있는 거야?.”
아고 두야. 너 때문에 웃는다.
너도 게임만 안 했을 뿐 오늘 하루 종일 놀았거든.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마음과 다른 말을 해주었다.
“아빠가 아프니까 게임하고 휴대폰 하라고 허락해 주는 거 같아.
저 방안에서는 TV도 없고 아무것도 할 게 없잖아.
그리고 엄마가 봤을 때 아프면 식욕이 떨어지는데 너의 넘치는 식욕을 봐서는 너는 확진이 아닐 거 같아.”
가을이는 앉은자리에서 두 그릇을 비운 뒤였다.
다음 날 병원에 가서 아빠와 단풍이는 확진판정을 받았고 가을이와 나는 PCR검사를 받았다.
1월 30일, 실내 마스크 의무착용이 해제된 날.
본인의 소망대로 가을이도 확진이 되었고 그 가운데 나만 살아남았다.
우리 집의 일주일간 마스크 의무착용이 확실시된 날이다.
코로나격리를 겪으며 항상 느끼는 건 이 부정적인 마음들을 나 스스로 어떻게 정화처리 하느냐이다.
불만과 짜증을 토해내며 아픈 이들을 모두 불편하게 만들건 지 탓하지 않고 하루하루 현실에 적응하며 할 수 있는 일을 무리하지 않고 처리해 나갈 건지를 정해야 한다.
어쩌면 어른이란 오는 고통과 기쁨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그 하루를 내가 살아 낼 수 있는 만큼만 잘 살 아 내는 게 진정한 어른의 자세이지 않을까 싶다.
작년에 격리 생활을 끝내고 바깥에 나갔을 때 내 코끝에 불어오던 바람을 잊을 수 없다.
온 가족이 벚꽃 비를 맞으며 행복해하던 미소가 아른거린다.
코로나는 우리가 일상의 소중함을 잊어버릴 만할 때 일상의 작은 행복을 다시 한번 느껴보라고 찾아오는 거 같다.
격리가 끝나면 겨울의 끝자락을 느끼며 온 가족이 손잡고 산책해야겠다.
바람의 달콤함을 함께 느끼며 그 장면을 추억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