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하다면 신중하게.
느지막한 오후.
벌써 12시다.
아이들은 부스스한 얼굴을 비비며 하나 둘 거실로 나온다.
"벌써 12시야?"
아이들이 이렇게 늦게 일어난 이유.
어제 처음으로 아이들과 아시안 컵 4강전을 함께 시청했다.
16강전과 8강전은 너무나 늦은 시간이었기에
나 혼자 시청했다가 어제는 큰맘 먹고 아이들에게 시청을 허 했다.
아이들은 늦게 잘 이유가 생겨서 너무나 신나 했다.
9시 넘으면 간식을 안주는 엄마가
오징어를 구워주고 팝콘과 음료수를 준다.
그것만으로 아이들은 힘차게 한국을 응원해야 할
의미가 생긴다.
경기 시작된 후 응원에 열을 올리던 둘째가
전반전이 끝나가자
힘든 잠과의 사투에서 패하고 말았다.
새록새록 아이의 숨소리가 배경음으로 깔린다.
그런 둘째를 뒤로하고 첫째와 나는
우리의 마음을 그러모아 한국을 응원한다.
생각만큼 경기력이 나오지 않았던 전반전 경기
우리는 구슬땀을 흘리는 선수들을 보며 마음을 다 잡는다.
"괜찮아, 한국은 집중력이 좋으니까 후반전엔 잘할 거야."
하지만 연속 실점이 이어진다.
"괜찮아, 괜찮아 집중해서 한골만 넣자."
경기가 이어질수록
간절한 마음을 담아 신중하게 말을 고른다.
보는 입장에서도 이렇게 풀리지 않는 경기에
답답하고 피가 마르는데 뛰는 선수들은 오죽할까.
예전에 나 같으면 하는 말이 달랐을 것이다.
"아, 거기서 찼어야지."
"옆 공간 비었잖아."
"왜 이렇게 못해."
듣는 이 없는 공허한 의미 없는 말 들.
말로는 뭘 못하랴.
말로는 나도 메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말들이 누구를 위한 말이 아닌
나 혼자 말이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내뱉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무심코 던진 말들을 따라 하는 아이들을 보게 되면서
아차 싶었다.
내가 부정적인 마음을 가르치고 있구나.
누군가를 탓하는 마음을 아이들은 배우고 있었구나.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현실의 엄마는
그런 행동과 말을 서슴없이 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새삼 말의 힘을 실감한다.
누군가를 평가절하하는 말,
남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쉽게 하는 가벼운 말.
내가 당사자가 되면 너무나 아프다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멈추지 못한다.
그것이 상대방을 위한 말이라도 되는 듯이.
아쉬운 마음을 표현하는 말이지 상대방을 비하할
목적은 없었다는 듯이.
나조차 그랬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키우며 나는 그것이 잘못된 말임을 느낀다.
아이들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나에게 되돌아와 박히기 때문이다.
내가 저렇게 말을 했었구나.
부정적인 사람이었구나.
그리고 내 아이들 입에서 그런 말들이 나오지 않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조심하고 반성한다.
2대 0으로 힘들었던 경기가 마무리 됐다.
나는 아쉬운 마음을 표현한다.
"아쉽지만 저 정도면 잘 싸웠다."
이 말을 들은 첫째는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그래 잘 싸웠다, 지긴 했어도."
"얼마나 힘들까 땀 흘리는 것 봐."
우리는 최대한 마음을 표현하 돼 말을 아낀다.
그리고 그래도 즐거웠던 마음을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졌어도 재밌었지? 얼른 자자."
"응 이겼으면 좋았겠지만, 이렇게 늦게까지 축구 보는 거 처음이었어."
늦은 시각에 처음 본 축구가 진 경기여서
아쉬웠겠지만
아이들은 기분 좋게 기억할 것이다.
늦은 시각 함께 간식을 먹으며
누군가를 응원하고
안타까워했던 마음을.
때론 비난하는 마음보다 그저 바라보며
가만히 바라봐 주는 것만으로
누군가에게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에필로그
축구를 본 그 다음날의 여파는
실로 굉장했다.
12시에 일어난 아이들은
연신 하품을 해댔으며 그 날의 일과를 거부했다.
첫째는
"엄마 할 거 하나만 빼주면 안돼?."하고
양심껏 협상을 했고
세상 태평한 둘째는
시간을 보며
"오늘 할 거 빼주면 안돼?"라고 당당히 요구한다
그런 둘째를 보며 첫째가 어이없다는 듯 한 마디 던진다.
"어림없는 소리하네."
하하하 나는 나의 말을 반성하며 조용히 아점을 준비한다.
사진출처:스포츠tv뉴스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