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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다 Feb 08. 2024

무엇으로 사는가?

장조림을 간식으로 먹는 아이.

자기 전.

가을이가 묻는다.

"엄마 내일 아침 메뉴는 뭐야?"

그리고 아침을 먹은 후 묻는다.

"점심하고 저녁메뉴는 뭐야?"

도돌이표.

요즘 진절머리 나게 듣기 싫은 소리다.

할 수만 있다면 녹음해서 물어볼 때마다 재생해주고 싶은 메뉴리스트.

엄마도 아침 메뉴가 뭔지 저녁 메뉴가 뭔지 모르는데 어떻게 알려주랴.

항상 밥 준비 하기 전

"뭐 먹고 싶어?, 뭐 먹을까?"

물어보면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는다.

나 혼자만의 심오하고 고독한 싸움.


오늘 아침은 너무나도 피곤했다.

축구로 잠은 별로 자지 못했고, 한 달에

한 번 오시는 손님이 오셨다.

이름하여 월경.

배가 너무 아프다.

가만히 있어도 누군가 배에 어퍼컷을 날리는 느낌.

배 따듯하게 하고 누워 자고 싶다.

하지만 그의 돌림노래는 시작된다.

"아침 뭐야?"

"나 배고파."

그럼 그렇지 오늘을 알리는 멘트가 왜 안 나오나 했다.

아픈 배를 부여잡고 냉장고를 열어본다.

"아휴"

음식을 할 때마다 한숨만 나온다.

챗 GPT가 메뉴도 알려주려나?

괜한 생각을 하다 말고 가을이의 닦달에 아침준비를 시작한다.


냉장고에 보이는 양파와 당근

음식 어디에 넣어도 내 형편없는 음식솜씨를

눈 감아줄 스팸을 볶는다.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하고

하얀 밥과 야채를 열심히 볶다가

계란을 스크램블해 볶음밥의

색감을 살려준다.




육류 좋아하는 가을이는 다행히 맛있게 먹어준다.

하지만 그는 2~3시간 지나면 또 나를 들볶을 것이다.

"점심 메뉴는 뭐야?" 하면서.


아침을 하며 점심 메뉴를 생각하는

참으로 일차원적이면서 고된 밥 준비.

가을이는 그런 정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순식간에 그릇 안에 있는 음식을 해치운다.

밥 잘 먹는 아이는 자고로 예쁘다고 들 한다.

하지만 우리 집 가을이가 밥을 잘 먹으면

요즘의 나는 걱정이 앞선다.

작년부터 비만으로 병원에 다니고 있는 아이.

뼈 나이가 또래보다 2년 빠르다.

그 원인이 비만으로 진단됐다.

의사는 아이에게 겁을 줬다.

"엄마랑 오래 살고 싶으면 하루에 30분 이상씩

무조건 걸어, 안 그러면 너 인슐린주사 하루에 3번씩 맞아야 돼."

그 뒤로 4개월에 한 번씩 뼈 사진을 찍으러

병원에 가고 있다.

엄마의 피곤함에 스팸을 넣은 볶음밥을 준 게

마음에 걸린다.

점심은 되도록이면 건강한 식단을 준비하려고 마음먹는다.

하지만 나는 왜 이리 음식 솜씨가 없을까 한탄하고 또 개탄한다.

분명히 야채만 주면 안 먹을 아이.

육류를 달라고 머리띠를 묶고 투쟁할 아이.

뭐든 잘 먹을 거 같은 외모에

까탈스럽고 예민한 미각을 가진 아이.

학교선생님도 인정하신다.

" 가을이가 맛있으면, 모두 다 맛있을 거야"

라고 확신하시던 선생님.


기껏 생각해 낸 메뉴는 장조림이다.

일단은 점심 한 끼 해결하자.

부드러운 양지를 끓여낸다.

간장과 설탕을 넣어 끓여주고 불순물을 걷어준다.

고기에 양념이 좀 배었다 싶으면 메추리알을

넣어 끓여주면 끝이다.

불을 끄기 몇 분 전 꽈리고추가 있으면 넣어서 마무리.


장조림의 냄새에 가을이는 부엌으로 이끌리듯

다가온다.

그리고 나를 빤히 쳐다보며 웃는다.

저 표정을 나는 안다.

"나 장조림 조금만 주면 안 될까?"

하는 눈빛.

그 왕방울만 한 눈빛에 장조림을 내어준다.

그리고 가을이와 단풍이는 사이좋게

장조림을 간식으로 먹는다.

"맛있다 그렇지."

"응 맛있다."

저럴 때만 사이좋은 그들이다.


그들은 그렇게 장조림을 간식으로 반 이상을 먹어 치웠다.

나는 개의치 않는다.

어차피 밥반찬으로 두 번 이상 먹지 않는 효자들.

하지만  그날 장조림을 간식으로만 줄 수 없다.

저녁은 버터 장조림밥이다.

가을이의 다이어트는 물 건너 간 하루지만

엄마의 정신건강은 지켰냈다.

뭐 내일 하루는 더 가볍게 주고

더 열심히 걸으면 되지 않을까.

하고 정신승리를 해본다.

육류러버 가을이는 지방과 맞바꾼 오늘의

메뉴에 만족해한다.

그 표정이 죄책감을  덜어준다.


게임보다, 유튜브보다 먹는 게 좋다는 가을이.

먹는 즐거움을 알아버린 아이에게

다이어트는 힘든 고행의 길이다.

하루하루를 먹는 재미로 사는 아이.

힘든 고행의 시간에 

이런 날 하루,

가득 쌓인 행복의 축적이

힘든 날의 에너지원으로 쓰이지 않을까.

양심에 찔린 엄마는 그럴 거라고 

낙관의 하루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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