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다 Feb 08. 2024

무엇으로 사는가?

장조림을 간식으로 먹는 아이.

자기 전.

가을이가 묻는다.

"엄마 내일 아침 메뉴는 뭐야?"

그리고 아침을 먹은 후 묻는다.

"점심하고 저녁메뉴는 뭐야?"

도돌이표.

요즘 진절머리 나게 듣기 싫은 소리다.

할 수만 있다면 녹음해서 물어볼 때마다 재생해주고 싶은 메뉴리스트.

엄마도 아침 메뉴가 뭔지 저녁 메뉴가 뭔지 모르는데 어떻게 알려주랴.

항상 밥 준비 하기 전

"뭐 먹고 싶어?, 뭐 먹을까?"

물어보면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는다.

나 혼자만의 심오하고 고독한 싸움.


오늘 아침은 너무나도 피곤했다.

축구로 잠은 별로 자지 못했고, 한 달에

한 번 오시는 손님이 오셨다.

이름하여 월경.

배가 너무 아프다.

가만히 있어도 누군가 배에 어퍼컷을 날리는 느낌.

배 따듯하게 하고 누워 자고 싶다.

하지만 그의 돌림노래는 시작된다.

"아침 뭐야?"

"나 배고파."

그럼 그렇지 오늘을 알리는 멘트가 왜 안 나오나 했다.

아픈 배를 부여잡고 냉장고를 열어본다.

"아휴"

음식을 할 때마다 한숨만 나온다.

챗 GPT가 메뉴도 알려주려나?

괜한 생각을 하다 말고 가을이의 닦달에 아침준비를 시작한다.


냉장고에 보이는 양파와 당근

음식 어디에 넣어도 내 형편없는 음식솜씨를

눈 감아줄 스팸을 볶는다.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하고

하얀 밥과 야채를 열심히 볶다가

계란을 스크램블해 볶음밥의

색감을 살려준다.




육류 좋아하는 가을이는 다행히 맛있게 먹어준다.

하지만 그는 2~3시간 지나면 또 나를 들볶을 것이다.

"점심 메뉴는 뭐야?" 하면서.


아침을 하며 점심 메뉴를 생각하는

참으로 일차원적이면서 고된 밥 준비.

가을이는 그런 정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순식간에 그릇 안에 있는 음식을 해치운다.

밥 잘 먹는 아이는 자고로 예쁘다고 들 한다.

하지만 우리 집 가을이가 밥을 잘 먹으면

요즘의 나는 걱정이 앞선다.

작년부터 비만으로 병원에 다니고 있는 아이.

뼈 나이가 또래보다 2년 빠르다.

그 원인이 비만으로 진단됐다.

의사는 아이에게 겁을 줬다.

"엄마랑 오래 살고 싶으면 하루에 30분 이상씩

무조건 걸어, 안 그러면 너 인슐린주사 하루에 3번씩 맞아야 돼."

그 뒤로 4개월에 한 번씩 뼈 사진을 찍으러

병원에 가고 있다.

엄마의 피곤함에 스팸을 넣은 볶음밥을 준 게

마음에 걸린다.

점심은 되도록이면 건강한 식단을 준비하려고 마음먹는다.

하지만 나는 왜 이리 음식 솜씨가 없을까 한탄하고 또 개탄한다.

분명히 야채만 주면 안 먹을 아이.

육류를 달라고 머리띠를 묶고 투쟁할 아이.

뭐든 잘 먹을 거 같은 외모에

까탈스럽고 예민한 미각을 가진 아이.

학교선생님도 인정하신다.

" 가을이가 맛있으면, 모두 다 맛있을 거야"

라고 확신하시던 선생님.


기껏 생각해 낸 메뉴는 장조림이다.

일단은 점심 한 끼 해결하자.

부드러운 양지를 끓여낸다.

간장과 설탕을 넣어 끓여주고 불순물을 걷어준다.

고기에 양념이 좀 배었다 싶으면 메추리알을

넣어 끓여주면 끝이다.

불을 끄기 몇 분 전 꽈리고추가 있으면 넣어서 마무리.


장조림의 냄새에 가을이는 부엌으로 이끌리듯

다가온다.

그리고 나를 빤히 쳐다보며 웃는다.

저 표정을 나는 안다.

"나 장조림 조금만 주면 안 될까?"

하는 눈빛.

그 왕방울만 한 눈빛에 장조림을 내어준다.

그리고 가을이와 단풍이는 사이좋게

장조림을 간식으로 먹는다.

"맛있다 그렇지."

"응 맛있다."

저럴 때만 사이좋은 그들이다.


그들은 그렇게 장조림을 간식으로 반 이상을 먹어 치웠다.

나는 개의치 않는다.

어차피 밥반찬으로 두 번 이상 먹지 않는 효자들.

하지만  그날 장조림을 간식으로만 줄 수 없다.

저녁은 버터 장조림밥이다.

가을이의 다이어트는 물 건너 간 하루지만

엄마의 정신건강은 지켰냈다.

뭐 내일 하루는 더 가볍게 주고

더 열심히 걸으면 되지 않을까.

하고 정신승리를 해본다.

육류러버 가을이는 지방과 맞바꾼 오늘의

메뉴에 만족해한다.

그 표정이 죄책감을  덜어준다.


게임보다, 유튜브보다 먹는 게 좋다는 가을이.

먹는 즐거움을 알아버린 아이에게

다이어트는 힘든 고행의 길이다.

하루하루를 먹는 재미로 사는 아이.

힘든 고행의 시간에 

이런 날 하루,

가득 쌓인 행복의 축적이

힘든 날의 에너지원으로 쓰이지 않을까.

양심에 찔린 엄마는 그럴 거라고 

낙관의 하루를 마무리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