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다 Mar 27. 2024

이제 고백할게요.

우리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자.

금요일 오전.

단풍이를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다 인스타그램 로그아웃이 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순간 멈칫,  '다시 로그인하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손가락을 다시금 움직인다.

"비밀번호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어, 왜 그러지 이게  아닌가.' 신중을 기해 다 시 한 번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비밀번호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당혹을 금치 못했다.

 

집으로 올라와 마음을 가다듬고 비밀번호를 다시 누르기 시작한다. "비밀번호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짜증이 솟구쳐 오른다. 열댓 번의 도전을 했지만  열리지 않는 인스타그램의 대문. 내가 사용하는 비번의 폭이 그리 넓지 않을 텐데 도대체 뭐란 말인가.  

예전에도 비밀번호를 재설정 한 경험이 있기에 차분히 심호흡을 해본다. 그리고 비밀번호 재설정버튼을 누른다.  sms코드를 넣으니 다음 화면으로 넘어간다. 즐거운 마음도 잠시 좌절모드 진입.  백업 코드를 입력하세요. 백업 코드? 이건 또 뭐야. 되는 일이 없다.  다른 방법으로 시도버튼을 눌렀다. 이메일 인증.

아, 순간 인스타그램에 이메일인증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아연실색했다. 인스타그램에 이메일인증 메일을 받은 적이 있었다. 다음에 하자라는 마음으로 넘겼었다. 이런 후회가. 게으른 나 자신에게 화가 난다. 그 대가로 인스타그램에 나를 인증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이 사라졌다.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짜증, 분노, 역정, 신경질이 났다. 내가 알고 있는 나쁜 감정들이 몰려들었다.


요가를 가야 할 시간이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오기가 차오른다. 내 오늘 기필코 로그인을 하고 말리라. 요가를 제끼고 노트북과 휴대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들을 궁리해 낸다. 네이버에 sms가 안 와요, 인스타그램 비밀번호 바꾸는 법등을 조회했다. 중요한 논문을 찾아 읽듯이  수많은 글을 눈이 빠지도록 읽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시도했다. 페이스북에 가입했다. 하지만 페이스북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인증 실패. 중간중간  계속된 비밀번호 찾기로 인스타그램의 sms가 수십 통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것도 몇 시간이 지나자 sms가 오지 않는다. 오 마이 갓.  다시 검색.  WhatsApp을 다운로드하면 sms가 온다는 기쁜 소식에 가입한다. 이내 다시 절망. sms를 받으면 뭐 하나 백업 코드, 이메일 인증, 페이스북 인증 모두 실패인걸. 패잔병처럼  맥이 풀리기 시작한다. 금단현상이 나타난다. 불안하다. 초조하다. 해결이 안 되니 다른 일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습관처럼 인스타그램에 접속하곤 했다.  별로 많이 본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로그인할 수 없자 좌불안석인 내가 보인다. 중독이구나. 습관의 힘이  무서움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매일 드나들던 곳에 못가니 안달복달 난리도 아니구나. 아이들에게 휴대폰 좀 그만 보라던 내가 떠오르며 얼굴이 벌게진다. 책을 집어 들어본다. 인스타그램에 관심을 꺼보자.

얼마가지 않아 인스타그램 비밀번호 찾기를 누르는 나를 본다. 그리고 타협한다. 그래 로그인까지만 해결 하자. 심기일전해 다시금 방법을 찾아본다. 그리고 최후의 방법 얼굴인증 버튼을 눌렀다. 얼굴을 다 각도로 셀카로 찍어 제출했다. 메일로 검토한 후 며칠이 걸릴 수도 있다는 양해의 답장이 왔다.

그렇게 오매불망 기다리기를 이틀. 일요일 오전 답장에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귀하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울고 싶었다. 이런 문제로 며칠을 고민하는 내가 처량했다.

'페이스북이랑 연동해 놓을걸, 아이디랑 패스워드 메모 해 놓을걸, 이메일 인증  미루지 말고 할 걸, 인스타그램에 내 사진 좀 많이 찍어둘걸."

좌절, 헛웃음, 자포자기 제정신이 아니었다.  폭주하기 시작했다. 새 계정으로 내 인스타에 내가 나온 장면들을 메모해 메일을 보냈다.. 21년 3월 29일 사진확인해 봐, 22년 4월 17일 동영상 확인해 봐, 22년 7월 9일 오른쪽 두 번째 줄에 검은색 옷 입은 여자가 나야. 그리고 나의 고통에 생각해 보라며 메일로 그들에게 읍소했다. 이것도 안되면 내가 인증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제발 가르쳐줘.


나를 인증하기 위해 처절했다. 간절했다. 주말 내내 새 비밀번호 설정법을 수도 없이 검색했다. 답장 메일을 보내고 해결책이 생기기를 기도했다.

월요일 오전, 드디어 그 들에게 답장이 왔다.

"귀하의 정보를 성공적으로 검토하여 귀하임을 확인하여 이제 귀하의 계정으로 돌아가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착하신 분들 복 받으실 거예요.

최근 받았던 편지 중에 가장 감동적이었다. 저 멘트를 듣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3일나 나는 그리 울었던건가. 현타가 왔지만 정신을 붙잡아 본다.

다시는 실수 안 해야지. 비밀번호를 재빠르게 재설정했다. 다이어리에 꼼꼼하게 비밀번호도 메모해 뒀다.

3일간의 밀린피드를  보며 행복감을 만끽했다.   그것도 잠시  3일간 처절했던 내가 떠오른다. 이대론 안돠겠다.  습관처럼 인스타에 바치는 시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라는 하늘의 뜻이었을까.

인스타와 거리 두기를 결심한다.


널 보는 건 소소한 행복이지만 접속할 수 없을 때의 나는 형평 없었어. 그래서 너와 거리를 두려고 해.

이런 날 이해해 줘.

너의 노예였던 걸 고백할게. 하지만 이제 달라질래. 우리 시간을 정해서 만나도록 하자.

그 시간이 더욱더 소중하고 행복하도록.


이미지출처:언스 플래쉬

작가의 이전글 영화로 시작해 책으로 끝나는 서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