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찾기 위한 여정.
가을이가 다니는 영재원에서 공지가 떴다. 과제였다.
"인공지능, SW 진로에 관심 있는 학생은 고등학교, 대학교등 자신에게 도움이 될만한 상급 교육기관, 입학전형, 그 교육기관을 가기 위해 자신이 지금부터 해야 할 일 설계해 보기"
여기서 나의 할 일은 아이에게 전달하는 일.
짧은 문자가 커져서 점점 실체화가 되어가는 일을 아이에게 전달한다는 건 기쁜 일이다. 아직 어리고 구체적인 꿈이 없다고 해서 아이와 대화를 미뤄왔었다. 거창하지 않게. 심플하고 가볍게, 전달한다. 문자는 작은 실마리가 되어 구체적인 계획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작은 씨앗에 거름을 주고 물을 주며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얼마나 힐링되고 아름다운 모습일까?
하지만 현실은 드라마와 다르다. 씨앗을 심기도 전에 원천 차단. 그 짧은 문자를 전달하는 대목부터 삐그덕 덜컹 인다. 같은 문장을 읽지만 아이와 나의 시선은 다르다. 전혀 다른 단어에 의미를 부여한다. 나는 '지금부터 해야 할 일 설계해 보기'에 주목하는 반면 가을이는 '진로에 관심 있는 학생'에 시선을 준다. 나는 부풀어 오르는 꿈을 상상하지만 가을이에게 그 문자는 쓸모없는, 지나가는 언어일 뿐이다.
"나는 관심 없는데? 진로에 관심 있는 학생만 하라는 거잖아."
"너 로봇 만드는 거 좋아하잖아, 2년 동안 영재원을 왜 지원했어"
"학생기록부에 남으라고, 과학고 갈 거거든."
"과학고? 과학고는 왜 가고 싶은데?"
"과학고 가야 좋은 대학 갈 수 있는 거 아니야?"
" 일반고가도 좋은 대학은 갈 수 있어."
"그럼 너의 꿈은 뭔데?" "의사"
" 의사는 왜 되고 싶은 건데?" " 진짜 몰라서 물어? 돈을 제일 많이 벌잖아."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은 많아, 그 많은 직업에서 왜 의사가 되고 싶은 거냐고?"
"그나마 쉬워 보여서."
"의사가 쉽다고? 의사가 되려면 대학 4년에 인턴, 레지던트, 전공의시험까지 너의 20대를 , 최소 10년은 죽어라고 공부해야 하는데, 너 10년 동안 공부만 열심히 할 수 있어?"
가을이의 동공이 흔들린다. 거기까지 생각은 해보지 못한 모양이다.
"너 로봇 만드는 거 좋아서 했던 거 아니야 그래서 영재원도 sw 지원했던 거고?"
"로봇 만드는 직업은 내가 조회해 봤는데 연봉이 6천만 원밖에 안 돼."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웃어넘기는 게 승자라지만 그러기엔 어이가 없어서 귀가 막히고 코가 막힐 지경이다.
지금껏 가을이는 물건이 귀한 줄 몰랐다. 그런 모습들이 커가면서 괜찮아 질거라 믿었지만 6학년이 된 지금도 여전한다. 뭐든 그저 주어지는 건 줄 아는 아이. 학용품, 생활용품, 물, 전기등 아껴 쓸 줄 모른다. 내가 편하면 써야 하고 연필이나, 화장지가 그냥 집에 당연히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모습이 걱정되어 반복적인 잔소리를 해왔다.
"세상에 공짜가 있는 줄 알아. 다 돈 내고 치르는 거야."
돈도 아낄 줄 모르는 아이에게 덧붙였다.
"엄마, 아빠 부자 아니야, 20살 이후부터 네 인생은 네가 책임지며 살아야 돼."
이런 말들이 악영향을 끼쳤을까. 가을이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즐거움보다 돈 많이 버는 직업을 벌써부터 희망한다.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사이언스 과학책을 즐겨 읽던 아이가 의학책을 찾아 읽길래. 그래 꿈꿀 수 있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어릴 때 꿈은 자주 바뀌고 관심 있는 쪽을 상상하곤 하니까. 하지만 의사를 꿈꾸는 이유가 단순히 돈 일 줄이야? 사명감을 가지고 임해도 버틸 수 있을지 미지수인 직업이다. 아니. 꿈이 문제가 아니라 13살 어린이가 직업을 돈의 수치로 계산하는 것에 적잖이 충격이 온다.
가을이에게 진지하게 다시 질문을 해본다.
"쉬운 직업이 어딨어? 다 어렵지 지금도 공부는 하기가 싫은데 20대 내내 죽어라 공부해도 의사 되기 쉽지 않아. 진짜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지, 즐거운 일, 내 적성에 맞는 일"
"그럼 일반고등학교 가서 좋은 대학 가고 평범한 직장 다니지 뭐."
대답은 너무나 쉽다. 간결해서 진짜 저렇게 살면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뭐가 저리 다 쉬울까. 오늘 할 일도 차일피일 미루면서 미래도 당연히 주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아이의 모습에 실망감이 차오른다.
"야, 하고 싶은 걸 생각해야 그에 맞춰서 고등학교도 준비하고 대학교도 준비하는 거지, 그냥 상황에 맞춰서 그때그때 정하면 되는 거야? 요즘은 어려서부터 진로 설정해서 착착 준비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뱉고 보니 후회되는 말이란 걸 바로 알았다. 황당한 얼굴로 가을이가 날 쳐다본다. 수습 아닌 수습.
"그러니까 생각해 보라고, 내가 뭘 할 때 재밌는지 뭘 하면 좋을지."
어쩜 나란 사람은 이렇게 한결같을까. 현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악까지는 가지 말았어야지. 결국 비교로 끝나는 나의 대화. 유튜브나 tv를 끊어야 할까. 아이친구 엄마들과 단절을 해야 할까. 다른 집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어쩜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걸 잘 캐치해서 대학까지 잘 가는 건지. 내 자식들은 왜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내 시선에 잘하는 애들의 정보는 넘치도록 들어오고, 꿈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정보는 없다. 대학을 잘 못 갔다더라, 취업을 못했다더라는 들려도 그 뒤의 성공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베이스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이 깔려있으니 하고 싶은 걸 , 즐거운 일을 빨리 찾으라고 닦달하는 나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나부터도 마흔이 넘도록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찾지 못했다. 뭘 하면 좋을지를 아직도 생각하고 내가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를 찾아 여러시도를 한다. 그런 나여서 내 아이는 재능을 일찍 찾았으면 하는 욕심이 앞서는 걸까.
일찍 재능을 찾으면 땡큐지만. 못 찾는다고 문제는 아닌 것이다. 이제 13살. 이제 찾으면 된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 여러시도, 재밌는 일, 잘하는 일, 못하는 일 모두를 경험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다. 세상에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아갈 시간이 아직은 넉넉하다. 늦다고 실패하란 법 없고, 빠르다고 성공하란 법은 없다. 적어도 나는 그걸 알고 있다. 알고 있는 이 진실을 가을이에게 어떻게 전할지,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때.
꿈은 돈이 아니라, 내가 힘들어도 버틸만하다고, 할만하다고 느낄 수 있는 직업이 되어야 한다. 그 진리를 가을이에게 전하기 위해 성공한 사람들의 실패담을 담은 책을 선물해야겠다. 그리고 나 먼저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찾은 일에 적극적으로 임해야겠다. 이번 여름방학은 꿈에 대한 의미를 재정립하는 시간들로 채워야겠다.
나의 포부는 원대하지만 이 문장들이 가을이에게 어떻게 다가갈지는 여전히 미지수. 변수들을 잘 헤아려 정답을 찾으려 하기보다 오답을 즐기는 시간이 되길. 그러기 위해 나부터 힘을 좀 빼야겠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무한도전짤
챗 지피티 지브리스타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