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것만 같았던 14일이 이제 그 끝을 향하고 있다. 내일이면 나는 파리로 친구는 뮌헨을 들렀다 한국으로 돌아간다. 14일의 여행동안 마을이나 도시를 방문한 적이 손에 꼽힌다. 그동안 머물렀던 지역에 큰 도시가 없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도시 여행이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을 만큼 산행과 자연의 매력이 커서 이기도 하다. 참, 예정 없이 돌로미티가 속해있는 행정구역인 트렌티노알토아디제주의 대표 도시인 “볼자노”를 방문(?) 한 적은 있었지만 (4일 차 - 세체다 편 참고), 사실 그때 방문한 볼자노도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아마도 우리가 갔던 곳은 도시의 뒷골목(?) 같은 곳 이어서 건물들도 낡고 거리도 지저분했다)
그래도 동 돌로미티의 거점 도시, 곧 열리게 될 2026 동계 올림픽 개최지 (이 도시는 이미 1956년에 동계 올림픽을 치른 적이 있다)로 유명한 코르티나 담페초(Cortina D'ampezzo)는 방문해야 할 것 같아 마지막 일정으로 넣어 두었다. 오늘 코르니타 담페초에서는 마을 방문 외에 중요한 일정이 하나 더 있다. 바로 20년 지기 절친이 쥐어준 용돈으로 근사한 외식을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14일 동안 외식을 한 적이 손에 꼽힌다. (둘째 날 피제리아, 그리고 카나제이에서 맛본 돌로미티 전통 음식)
점심때에 맞춰 가야 해서 아침을 먹고 일찌감치 길을 나섰다. 캠핑장에서 코르티나 담페초까지는 약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친퀘토리와 라가 주오이 산장 그리고 세계대전 전쟁 박물관을 지나는 루트라 오는 길에 시간이 되면 전쟁 박물관을 보기로 했다.
코르티나 담페초에서는 주차가 걱정이었다. 그동안 큰 마을에 들를 때는 슈퍼마켓의 주차장을 주로 이용했던 터라 우리도 코르티나 담페초에서 꽤 커 보이는 코나드 (Conad) 슈퍼마켓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마침 슈퍼마켓에서 귀국 전 한국에 가져갈 것들을 이것저것 사야 해서 딱이다 싶었다. (특히 알베르토가 추천해 준 서양 와사비!!!)
하지만 코나드 슈퍼마켓의 주차장은 우리가 생각한 대형 마트의 주차장이 아니었다. 차 두대가 한꺼번에 들어가면 나오지도 들어가지도 못할 만큼 비좁고 크지 않았다. 차가 한대 겨우 빠져나갈만한 좁은 통로에서 친구는 차를 아마 백만 번쯤 앞뒤로 돌렸다 뺐다 하며 겨우 구겨 넣었다. 브라보!
주차를 하고 슈퍼에 들어갔는데 우리가 사려고 하는 서양 와사비가 없다. 아니 있긴 있는데 우리가 찾는 브랜드가 아니다. 빈손으로 나오긴 머쓱해서 일단 오늘 저녁에 먹을 맥주만 두어 병 사서 슈퍼에서 나왔다.
슈퍼에서 산 것이 많이 없던 터라 하루 종일 주차를 해도 되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뭐 그래도 일단 그 고생을 하고 주차를 했으니 우리는 일정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코르티나 시내로 들어가 기념품 가게는 눈에 보이는 대로 들어갔다. 일단 친구는 오르티세이에서부터 봐둔 “알핀스타일” 양말이다. 나는 최근에 양말을 많이 사두었던 터라 양말을 괜찮고 뭔가 기념할 만한 것이 있으면 사야겠다 싶었다.
첫 번째로 눈에 띈 기념품 가게, 코르니타 담페초 대표 “백화점” 같아 보이는 곳도 들르고, 혹시 몰라 이탈리아의 대표 패션 브랜드 “베니통”도 가보고, 아무튼 샵이라는 샵은 닥치는 대로 들렀다. 그런데 딱히 맘에 드는 것이 없다.
오늘 투두리스트를 하나도 완수하지 못했는데, 시간을 보니 벌써 한시가 넘어간다. 유럽에서는 12시에서 2시까지 점심시간을 놓치면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없다. 맘이 급해졌다. 일단 쇼핑은 식사 후에 하기로 하고, 오늘의 중요 일정인 점심 외식을 위한 근사한 레스토랑을 찾아야 한다.
레스토랑은 친구가 구글로 급하게 찾았는데 모던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이었다. 전식으로 수박과 페타치즈가 들어간 샐러드를, 본식으로 친구는 크림 버섯 파스타를 나는 토마토소스 오징어 파스타를 주문했다 맛이 일품이다.
식사를 하고 나와서 나와 친구는 누가 먼저라고도 할 것 없이 주차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혹시라도 슈퍼마켓 주차장에 주차한 차량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 하고 (둘 다 극 소심좌다) 신기하게도 둘 다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아무래도 주차장이 크지 않고 입구에서 바로 보이는 터라 한 차량이 오래 주차에 있다면 눈에 띌터이다. 우리는 마음 졸이며 쇼핑을 하느니 차라리 주차비를 내야 하더라고 제대로 된 주차장에 주차를 하자고 하며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다행히 차는 그 자리에 아무 문제 없이 서 있었다.
차를 옮겨 조금 멀지만 버스 정류장 근처의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마음이 한결 편하다.
코르티나 담페초는 2026년 동계올림픽을 준비 중이다. 그래서 그런지 도시가 벌써부터 분주하다. 주요 광장에는 올림픽 오륜기 설치물이 설치되어 있고, 시계탑이 올림픽 개막일까지 며칠이 남았는지 보여주며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리고 있었다.
공사도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올림픽이 개막하면 이 시내 곳곳이 전 세계의 티브이를 통해 방송되겠지. 그것을 보고 있자면 우리의 추억도 새록새록 피어오르겠구나 하는 생각에 벌써부터 설렌다.
자 이제 다시 쇼핑을 시작해야 한다. 아뿔싸. 그런데 돌로미티에서는 상점이 오후 4시까지 문을 닫는다는 것을 깜빡했다. 점심을 먹고 나왔는데도 아직 4시까지는 한참이다. 그 사이에 문이 연 상점을 들리거나 젤라토를 먹거나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직도 우리가 사고자 하는 맘에 딱 드는 기념품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아!! 이래서 여행 시에 맘에 드는 것이 있으면 그때그때 사야 하는 것을. 우리는 코르티나 담페초가 아무래도 이 지역에서 큰 도시이다 보니 많은 물건이 더 싼 가격에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갑자기 포사디파사에서 지나친 시장이 생각났다. “거기서 본 손수건 꼭 살걸 그랬다고,,,”
일단 돌로미티를 맘에 담아 갈 기념품 하나는 사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친구가 여행 초기부터 맘에 둔 양말을 기념품으로 선물했고, 우리는 사이좋게 냉장고 자석도 하나씩 샀다. 훗날 추억이 되겠지. 이렇게 우리는 기념품 쇼핑을 마쳤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코르니타 담페초를 떠났다. 올 겨울 올림픽 때 열심히 티브이를 봐야겠다. 이곳 어딘가가 티브이 속에 비치겠지..
시간은 거의 5시가 다 되어간다. 돌아가는 길에 세계대전 박물관을 들러볼까 했는데, 이 박물관은 4시 30분에 문을 닫는다. 돌로미티에서는 시간 확인 필수!
기념품 쇼핑은 대충 마쳤지만 아직 중요한 미션을 완수하지 못했다. 바로 서양 와사비 구매! 캠핑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슈퍼마켓을 들렀다. 그곳에는 우리가 찾는 브랜드의 서양 와사비가 있었지만 수량이 많지 않다. 친구는 고민하다 내일 뮌헨으로 올라가는 길에 더 큰 슈퍼에 들러보겠다고 하고 돌아섰다.
오늘 우리의 미션을 완벽하게 완수하진 못했지만, 코르티나 담페초 방문은 의미가 있었다. 우리 둘 다 도시 여행은 우리 취향이 아니라는 중요한 공통점을 발견했다.
해가 뉘엿뉘엿 저가는 시간에 캠핑장에 도착했다. 우리 숲 속텐트로 걸어가는데 숲 속텐트 한가운데서 어제 본 한국인 중년 여성 4명이서 거하게 바비큐파티를 하고 있다. 우리는 조용히 지나치려는데 그중 한 명이 손을 흔들며 와서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한다. 아뿔싸. 아주 고맙기는 한데… 이건 좀. 우리는 황급히 저녁을 먹었다 둘러대고 방으로 들어왔다.
밤이 깊어가고 우리는 우리만의 조용한 마지막 저녁을 즐겼다. 밤에 별이 한가득이다. 우리의 추억도 하늘의 별만큼 가득 채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