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차 "돌로미티로 출발"

by Ju de Pomme

1일차 "돌로미티로 출발"

약간 늦은 여름휴가가 시작됐다. 한국에서는 처서가 지났나? 입추와 말복이 2주 전에 지났으니 곧 처서가 오겠다 싶다. 희한하게도 이 절기는 기가 막히게 딱 떨어진다. 날씨가 선선해지기 시작해서 곧 처서가 올려나 하면 정확하게 하루 이틀 차이로 처서다. 말복이 지나면 여름이 한풀 꺾인 다고 하는데 꼭 그렇다. 영원할 것 같은 떼양볕과 더위도 서서히 식어간다.


프랑스인들은 보통 7월 14일 (혁명 기념일)과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을 기준으로 휴가를 떠난다. 이 시기에는 회사도 거의 "개점휴업" 상태다. 직원의 반 이상이 휴가를 떠나서이다. 그래서 이 시기에 굳이 휴가를 쓰지 않고 일을 하는 젊은 사람들도 많다. 여유롭게 즐기며 일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9월 본격적으로 업무가 시작될 때 휴가를 쓰면 일석이조이기 때문이다. (가능한 적게 일하고 많이 노는 법을 찾는 게 프랑스인의 삶의 모토인듯하다. 사실 뭐 이건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도 싶고...) 보통 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있는 가족들은 아이들의 방학기간에 맞춰서 휴가를 써야 하므로 이 기간에 맞춰 휴가를 쓰지만 그렇지 않은 싱글이나, 아이가 없는 젊은 커플들 혹은 아이를 다 키운 커플 (Empty nester)은 이 “개점휴업” 상태의 8월을 즐기며 일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시기에 휴가를 떠나면 어딜 가도 사람이 많을뿐더러 가격도 평소의 1.5배에서 2배가량 되니 아이가 없다면 굳이 이 시기에 휴가를 떠날 필요가 없다.


나는 올해 딱히 여름휴가 계획이 없다가 올해 초쯤인가 한국에 있는 친구가 이탈리아 돌로미티로 여행을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계획했다며 혹시 시간이 되면 조인하라고 연락이 왔다. 마침 계획이 없던 차에 좋다고 했다.


그렇게 늦은 여름휴가를 기다리며 8월 사무실을 홀로 지켰다. 속으로는 내심 “8월 즐기면서 여유롭게 일할 수 있겠군” 하는 기대로 이 기간 등에 미뤄뒀던 폴더나 이메일 정리도 좀 해야겠다 생각했는데 왜인 걸 정 반대였다. 특히 9월 초 출시하는 새로운 제품이 있는데, 그 제품 출시에 맞춘 프로젝트 매니지먼트로 매일매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더욱이 팀원들은 다 휴가를 떠나고 나 혼자밖에 없으니 하루 종일 저글링이다. 그렇게 휴가를 앞둔 마지막 근무일까지 불태우고 이제 이탈리아 베로나(Verona)로 향하는 공항에 앉아 있다. 여행은 늘 설렌다. 더욱이 오랜 친구와 함께 하는 여행은. 앞으로 열흘 동안 경험할 일들이 기대된다. 출발!


비행은 1시간 정도 걸렸다. 베로나 공항은 우리 고향 동네 터미널만 한 아담한 공항이다. 비행기가 만석이라며 혹시 모르니 짐을 부치라는 메시지를 아침에 받았던 터라 짐을 붙였는데 (한국인은 말을 참 잘 듣는다. Good Student!) , 왜인 걸 짐이 한참 늦게 나와 먼저와 있는 친구를 기다리게 했다.


베로나 공항: 암벽 등반 이미지가 눈에 띈다

한국에서 오는 친구는 뮌헨에서 차를 빌려 베로나에서 나를 픽업하기로 했는데, 마침 빌린 차가 닛산이라며 사진을 찍어서 보냈다. 좁은 산길 운전이 걱정되고 또 두 명이 이동하는 것이니 작은 차가 적당하겠다 싶어 작은 차로 빌렸는데 렌터카 회사에서 더 큰 차로 알아서 업그레이드를 시켜줬단다. 마침 4륜 기능이 제공되는 차여서 든든했다.


이렇게 베로나 공항에서 1년 만에 친구를 만나 돌로미티로 향했다. 베로나에서 돌로미티는 차로 두시간 정도 걸리는데 고속도로를 약 1시간 20분 정도 타고 그 외에는 산길을 가야 한다. 그런데 산길이 생각보다 그리 좁지 않고 잘 닦여 있었다. 돌로미티에 들어서자 “이탈리아 국립공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돌로미티”라는 커다란 간판이 많은 관광객을 맞이하며 설렘을 더했다.


이 간판을 본 후 한 10여 분 정도 운전하면 Seiser Alm 캠핑장 (www.camping-seiseralm.com)에 도착한다. 캠핑장 입구에 리셉션과 간단한 먹거리를 살 수 있는 숍이 있다. 리셉션과 숍이 있는 건물은 소나무와 철제를 사용해 지어진 모던한 건물로 꽤 고급스러워 보였다. 남자 직원 두 명이 체크인을 도와주고 있었는데, 훈남에 아주 친절했다. 간단한 체크인 설명을 마치고 직원은 자전거를 타고 우리를 6일 동안 머무를 포레스트 텐트로 안내해 줬다.

세이저 알럼 캠핑장 리셉션

캠핑장은 장엄한 돌로미티 만큼이나 크고, 잘 관리되어 있었다. 우리가 머무를 포레스트 텐트는 모두 3동뿐이어서 예약을 한 친구에게 이 성수기에 어떻게 이런 꿀 숙소를 잡았느냐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리셉션과 비슷한 모던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으로 소나무와 철제를 적절하게 섞어 고급스러우면서도 미니멀했다. 보통 캠핑을 하면 요리를 할 때 물 사용이 꽤 번거로운데, 테라스에 스톤으로 만든 개수대가 있어 물 사용이 용이한 점은 큰 장점이다. 다만 이 포레스트 텐트도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용으로 사용해야 하는 점은 아쉬웠다. 만약 별도로 된 샤워실과 화장실이 구비되어 있다면 비용이 여기서 2배는 족히 넘을 것 같아 이대로 만족했다. 아침에 눈을 떠 문을 열고 나가니 눈앞에 돌로미티의 절경이 펼쳐지는 것보다 더 큰 럭셔리가 어디 있으랴.

4.jpg 숲속 텐트 3동 입구

저녁은 리셉션 옆에 있는 숍에서 구매한 소시지와 토마토, 모차렐라 등으로 간단하게 해결했다.

1년 만에 만난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들로 새벽 1시까지 회포를 풀고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