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기억하기
수십마리의 아름다운 새가 날아다닌다.
아름답고 다양한 새의 나라 y에 와있다.
y 나라에 온 것은 물론 일 때문이다.
y 나라의 산업 현황이며 GDP며, 사람들이 무엇을 주로 먹고 무엇을 수출하는지는 빠삭하게 알지만, 정작 이 나라가 아름다운 새들이 사는 나라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y 나라의 국기에는 아름다운 왕관을 쓴 황새가 있다. 실제 이 나라에 사는 종이라고 한다.
y나라에는 참 다양하고 아름다운 새들이 산다.
불현듯 오래 전 돌아가신 중학교 선생님이 생각났다.
선생님은 새를 참 좋아해서 학교 캠퍼스 안의 새들을 사진 찍는 것이 취미였다.
가끔 수업 전 선생님이 직접 찍은 새 사진들을 보곤 했다.
어린 우리는 그게 무슨 재미냐며 대놓고 하품을 찍찍 했는데 선생님의 소박하고 귀여운 취미를 왜 이해 못했나 참 그렇다.
선생님은 고인이 되셨다.
선생님의 죽음을 알게 된 건 대학교 신입생, 젊은과 삶이 넘치는 1학년 OT때다.
삶은 이렇게 충만한데
이렇게 화려하고
생기넘치는데
누군가는 죽었다니.
한창 술고래가 된 늦은 밤, 선생님의 부고를 전해듣고 참 많은 감정이 몰려왔다.
내 삶의 정점에서 죽음을 듣는 그 아이러니.
인기 있는 선생님은 아니었다.
그래도 우리 모두가 선생님을 배웅했다.
눈물 흘리는 이는 드물었으나
나는 왠지 모르게 눈물을 많이 흘렸다.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9년이 흘렀다.
나는 아득바득 살기 위해
삶을 즐기기 위해
마치 죽지 않는 것처럼
일하고 먹고 마시고 울고 웃고 춤추고 사랑하고 낭비하고
삶을 마치 100m 스프린터 뛰듯 살았다.
죽음은 늘 우리곁에 있음에도
죽음은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옆집에서 땅을 샀다느니 외국에 갔다느니
흘려듣는 이야기처럼
그렇게 흘려버렸다.
y나라에 오니 아름다운 새들이 많다.
선생님이 이곳에 오셨으면 얼마나 행복해하셨을까 불현듯 생각이 난다.
죽음은 늘 곁에 있음에도
받아들이는 법도
애도하는 법도
제대로 배운 적 없는 나는
그냥 막연히 선생님을 떠올린다.
이만큼 씨름하듯 삶을 살아보니
선생님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된다.
돌아가시기 전에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공허했을까.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그는 얼마나 고민했을까.
선생님이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서른이 되어보니 어른이란건 영원히 없구나.
늘 고민하게 되는구나, 늘 확신이 없는거구나.
갑자기 느낀다.
죽음이 두려운 한 가지 이유는
잊혀질까봐이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을 기억해요.
먼 타국에서 선생님이 생각나네요.
천국에서 평온하시길, 행복하시길 기도할게요.
- y나라에서, 서른을 한 달 앞둔 옛 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