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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싼타페 Apr 20. 2021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우연이 주는 유익

  돌아다니기 좋아하고, 사람들 만나기 좋아하고,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는 내가 코로나 사태로 인해 집에만 머물러 있다.  이전에는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던 모습이다.  한 두 달도 아니고 일 년을 넘게 이러고 있으니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마음껏 뛰어놀지 못하고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니 답답해 죽을 지경이니 나름 해소를 해본다고 하는 게 언제나 집에서 사고를 치는 결말을 초래한다.  부모는 부모대로 쌓일 대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아이들이 저지른 사고들을 핑계로 가차 없는 응징을 가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로 부모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를 지들끼리 치고 받는다든지 혹은 얌전한 가구들에 화풀이를 하곤 한다.  그러다보니 관계가 시나브로 어긋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봉쇄조치가 많이 완화되었지만 감염률이 낮아지거나 안전성이 확보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경제적 붕괴를 피하기 위해 내린 조치일 뿐이다.  특히 이곳 브라질은 평생의 숙적 미국을 제치고 1위에 등극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듯하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험성은 여전히 높고 우리는 조심해야만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무기력에 빠져 우울증에 걸린 이들이 적지 않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우연 속에 살아가는 연약한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신이 아니기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다.  인간이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을 때 우리는 우리의 능력을 착각하고 훨씬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다.  인간이 위대하다는 말은 어떤 상황도 통제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일지라도 극복해내는 것에서 기인한 말이다.  우리는 성공보다 실패가 많고, 만족보다 불만이 많다.  실수하고 착각하고 말을 바꾸고 마음을 바꾼다.  그렇게 우리는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되기를 바라면서 신처럼 모든 것을 통제하고 조정하는 존재가 되기를 기대한다.     


  모든 수험생은 좋은 점수를 받아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라며, 모든 취준생들은 원하는 회사에 입사하기를 바란다.  또한 수많은 이들이 많은 돈을 벌 것이라는 기대를 하며 창업을 한다.  그 누구도 대학에 떨어질 것을 꿈꾸며 공부하지 않고, 실패할 것을 원해서 도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창업 성공률이 1% 이하라는 사실은 자신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여긴다.  항상 건강하기를 바라지만 감기에 걸리는 일은 너무도 흔하고, 수많은 질병에 노출되어 있지만 여전히 나는 상관없다는 듯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아무도 사고를 원치 않지만 사고의 위험은 우리 주변에 너무도 가까이 자리 잡고 있다.  사고를 당하면 우리는 늘 이렇게 말한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어쩌면 마음 한편에 있는 불안감을 가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부정을 가리고 긍정을 극대화하는지도 모르겠다.  점쟁이를 찾아가거나 복을 비는 종교를 찾는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우연이 주는 두려움을 해소하려는 시도가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성공하려는 욕심 때문에 실패의 가능성을 가리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성공할 확률이 낮다.  그러면 이 모든 일이 우연처럼 느껴진다.  우연이 주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다시 현실을 부정한다.  나이 들면 주름이 생기는 것이 필연적인데도 성형수술을 해서라도 주름을 없앤다.  그러나 효과는 잠깐일 뿐 결국 나이 드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이게 아닌데 하며 실망하면서도 현실을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하는 우리는 모두 고집쟁이다.     


  우리는 초월적인 신이 되기를 꿈꾼다.  아니라고?  나에게 초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단 한번이라도 상상하지 않은 이가 있을까?  했다면 신을 꿈꾼 것이다.  나 역시 반백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초능력을 갖게 되어 마음껏 세상을 날아다니고 약한 이들을 돕고 악당을 물리치는 상상을 종종 한다.  반백년을 상상했지만 여전히 나는 어떠한 초능력도 발휘하지 못하는 연약한 인간일 뿐이다.  코로나 덕분에 집에만 있다 보니 별의별 상상을 다 하게 된다.  그러다 정말 우연히 신이 되는 방법을 찾았다.  아니 신이 되는 방법이라기보다 신을 흉내 내는 방법이라는 게 훨씬 정확하겠다.     


  신은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생과 사를 관장하며, 모든 것을 다 알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  이러한 신의 능력 가운데 대표적으로 손꼽는 것이 있으니 바로 '창조'의 능력이다.  그 가운데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겠지만 우리도 창조할 수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목적'이다.  목적을 가지고 무엇을 만들 능력은 전혀 없지만 목적 하나만 놓고 말하자면 우리는 목적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살아오며 무수히 많은 목적을 만들어오지 않았나.


  코로나가 신에게는 하나의 계획에 불과할 지 몰라도 최소한 나에게는 우연이다.  이 우연으로 인해 평소 깊이 있게 생각치 않았던 '삶의 목적'을 깊이 있게 되뇌일 수가 있었다.  삶에 쫓겨 대충 생각하고 대충 행동했던 것이 이제 한 걸음도 아닌 서너 걸음을 뒤로 하고 보니 참 많은 것들이 보였다.  


  삶의 목적, 나의 정체성, 가족의 의미와 가치, 삶의 여유로움, 자연의 아름다움 등등...


  지금 보고 있고 느끼고 있는 것들을 소중하게 간직한 채 살아가고 싶다.  혹, 서두르다가 놓치는 것들이 있을지라도, 주변을 둘러보느라 방향이 틀어질지라도 괜찮다.  지금 내가 보고 느끼고 있는 이 순간이 더 소중하고 가치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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