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평화로운 휴일에...
평화로운 휴일 아침.
코로나 이후로 평일과 휴일의 구분이 없이 살고는 있지만 그래도 휴일은 왠지 좀 더 여유로운 느낌이다. 글을 쓰는 재미에 푹 빠진 요즘 평일보다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그래도 느지막이 일어나 커피 한 잔 손에 들고 소파에 앉아 간밤에 올라온 따끈따끈한 글들을 읽고 있는데 아이들 방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귀를 기울이려는데 작은 녀석이 씩씩대며 나에게 온다.
- 아빠, 엄마 때문에 죽겠어요!
이게 뭔 소린가 하고 들어보니, 방 안에 늘어놓은 책들이며 장난감들을 보며 누가 이렇게 어질렀느냐고 닦달하는 엄마가 평소 작은 녀석이 자주 그랬으니 오늘도 그러려니 하고 잔소리를 쏟아 붇는데 작은 녀석이 자기가 아니라 형이 그런 거라고 온 힘을 다해 항변을 해보는데 엄마가 믿어주지를 않는다는 것. 장난감을 놓고 툭하면 싸우는 바람에 장난감마다 주인이 누구인지 표시를 해놨는데 이것들이 지들끼리 쑥덕쑥덕하고는 바꿔서 노는 바람에 엄마가 헷갈렸나보다. 표시된 주인 이름을 부르며 화를 내는데 정작 그 주인이 바뀌어 엉뚱한 놈이 야단을 맞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서 중요한 관전 포인트는 그 표시를 아내가 해주었고 서로 합의하에 바꾼 것을 아내도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작은 녀석 뚜껑이 열릴 만도 하다. 잠시 후 큰 녀석이 온다.
- 아빠, 엄마 좀 뭐라고 해 주세요. 놀고 있는데 자꾸 치우라고 해요.
헉, 그런 미션을 내게... 아직은 어린 두 녀석은 난감해하는 내 표정을 전혀 읽지 못하고 엄마를 혼내 주는 아빠의 모습을 상상하나보다. 다행히 아내가 나온다.
- 여보, 애들 좀 야단 쳐줘요.
잉? 이건 또 뭔 씨추에이션? 하루에도 열두 번을 깜빡깜빡하는 엄마를 아이들이 놀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내가 씩씩대며 미션을 내린다. 야단을 치기 위해서는 내막을 살펴야 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99% 엄마의 잘못이라는 게 드러날 텐데 그 후에 벌어질 상황을 나 보고 어찌 감당하라고.
만만한 게 아이들이니 두 녀석을 세워두고 일장연설을 펼쳤다. 어쨌든 엄마의 말은 니들이 어지럽힌 것은 니들이 정리하라는 것이고 같이 놀았으면 같이 정리하는 것이 맞으니 니꺼 내꺼 따지지 말고 같이 정리해라 하며 주먹을 불끈 쥐어 아이들 얼굴에 바싹 가져다 대고는 평화롭게 마무리 해주었다.
잠시 후 주방에서 또 싸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번엔 큰 녀석과 아내. 큰 녀석이 설탕을 잔뜩 묻힌 젤리를 먹으려 봉지를 뜯었는데 그만 힘 조절에 실패하여 바닥에 몇 개 떨어졌다. 간호사 출신의 아내는 바닥이 더러운 건 결코 참지 않는 성격이다. 아이들이니 그럴 수도 있으련만 예전 일까지 들추어내며 잔소리를 시공하는 엄마에게 사춘기 초입의 큰 녀석도 한 마디 한다.
- 닦으면 되잖아요.
- 지금 닦아.
- 먹고 닦을게요.
- 지금 하라고.
어차피 먹다보면 설탕 가루가 또 떨어질 테니 먹고 닦겠다는 아이의 주장에 한 표 던져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내 처지가 고달프다. 설탕 묻은 젤리를 사온 내 잘못이다. 곧 날아올 화살을 피해 슬그머니 서재로 피신을 시도해 보지만 아뿔싸 이미 늦었다. 아내가 나에게 온다.
- 당신은 왜 가만히 있어요?
왜... 나한테... 나보고 어쩌라고...
다행스럽게도 점심 식사를 위해 잠시 휴전. 다들 맛나게 점심을 먹고는 다운 받아놓은 영화를 보는데 세 사람의 집중력이 장난 아니다. 스토리 진행에 따라 세 사람의 자세가 수시로 바뀌면서 움찔움찔하는데 보는 내 손에 땀이 날 정도다.
- 어머, 어떡해. 어떡해.
- 엄마, 좀 조용히 보죠?
- 아, 나 몰라. 재 어떡해.
- 아, 엄마 좀.
- 형이 더 시끄럽거든.
- 아니거든. 엄마거든.
- 니네 조용히 안할래? 안 들리잖아.
세 사람이 서로를 공격하며 싸우기 시작한다. 나는 슬그머니 일어나 주방으로 가 과일을 깎는다. 순전히 도피를 위한 행위다. 과일이 도착할 때까지 세 사람은 그렇게 싸울 것이다. 중요한 장면마다 싸우는 통에 어차피 영화를 제대로 보기엔 이미 글렀다.
저녁 먹고는 다 같이 둘러 앉아 새로 장만한 1,000 피스짜리 퍼즐을 맞추기 시작했다. 일단 색깔별로 구분하고는 조금씩 맞춰가고 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 엄마, 좀 가리지 좀 마요.
- 어머, 내가 언제.
- 가렸거든요.
- 알았어. 미안.
- 야, 그거 좀 이리 줘봐.
- 엄마, 맞춰 놓은 걸 가져가면 어떻게 해요.
- 내가 뭘.
- 엄마 손 밑에...
- 어머, 이게 왜 여기 있지? 근데... 이것들이 왜 나만 갖고 난리야.
사내 아이 둘이라 많이 힘들겠다는 소리를 자주 듣긴 하지만, 난 늘 감사하다. 사내아이가 둘만 있어서.
오늘도 우리 가정은 평안하다.